"다치고 일주일 뒤에 축구 대회도 신청했어요."
2012년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입었다. 앞으로 걷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이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탁구 라켓을 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도전은 16년 뒤 아시안패러게임(APG) 금메달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사회복지사를 꿈꾸던 청년은 이제 국가대표 선수로서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장애인탁구 김현욱(31·경기도장애인체육회)의 이야기다.
김현욱은 20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스카이홀 도요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APG 탁구 남자 단식(스포츠등급 CLASS 1) 조별리그 최종 4차전에서 라칸 알살미(사우디아라비아)를 게임 스코어 3-0(11-2, 11-2, 11-7)으로 완파했다. 풀리그로 진행된 이 종목에서 단 한 게임도 내주지 않고 4전 전승을 거두며 생애 첫 APG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후 만난 김현욱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열심히 한 만큼 보답이 나온 거라 생각한다"며 "남은 경기가 있어서 그런지 계속 다음 경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협적인 상대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CLASS 1은 비장애인 스포츠로 치면 양궁 같은 느낌이다. 국내 경기가 더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는 같은 한국 선수인 주영대(53·경남장애인체육회)와 결승에서 만나 은메달을 수확한 바 있다.
그의 의연한 모습은 선수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남달랐다. 김현욱이 장애를 갖게 된 건 2010년이었다. 당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친구들과 동네 놀이터에서 놀던 중 사고를 당했다. 미끄럼틀 위로 장난삼아 올라갔다가 하필 비가 내려 미끄러운 탓에 발을 헛디뎌 뒤로 떨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수술만 받으면 다시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워낙 활동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사고 일주일 뒤 축구대회까지 신청했다. 그러나 두 달 반가량이 지나서야 앞으로 걷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충격적인 진단이었지만 김현욱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서둘러 퇴원해 학교로 돌아갔다.
그를 움직인 건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김현욱은 "얼른 사회복지를 공부해서 내가 어떤 상황이고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직접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병원에 있어도 달라질 게 없겠다 싶어 겨울방학이 끝나자 다시 학교에 다녔다"고 돌아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인연도 찾아왔다. 2013년 무렵 탁구 라켓을 처음 잡은 김현욱은 운동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결국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2020 도쿄 패럴림픽 은메달에 이어 이번에는 아시아 정상에 오르며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김현욱은 대회 사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었으면 하는 수식어로 '만들어진 영웅'을 꼽았다. 스스로 노력해 이뤄낸 성과에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운동으로 이뤄 놓은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편"이라며 "중도 장애를 입었거나 선천적인 장애가 있는 분들이 운동을 시작할 때 저를 롤모델로 삼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썼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현욱을 보고 운동을 시작한 이들도 있다고 한다.
금메달을 확정한 순간에는 가족과 여자친구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김현욱은 "형식적인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사실 집에 있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여자친구를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 여자친구가 경기장으로 오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 남자 복식(MD4)과 혼합복식(XD4)에도 출전해 3관왕에 도전한다. 하지만 메달만큼이나 김현욱에게 중요한 목표가 있다. 자신을 보며 누군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것이다.
김현욱은 "그런 쪽의 일을 좋아하나 보다"라며 "운동을 망설이는 분들이 그걸 꼭 한 번 느껴보고, 삶의 동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때 사회복지사를 꿈꿨던 청년. 이제 그는 탁구대 앞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의 삶에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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