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위한 LA 경찰은 없었다…아픔 속 빚어진 '한국계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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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위한 LA 경찰은 없었다…아픔 속 빚어진 '한국계 미국인'

이데일리 2026-10-21 05:00: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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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유준하 기자] “1992년 LA폭동은 미국 내 한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간의 갈등이 극에 치달은 사건입니다. 한국 사회 역시 점차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만큼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서로 다른 이웃이 더불어 사는 상생의 중요함을 일깨우길 바랍니다.”

진구섭 미국 맥퍼슨대 사회과학부 명예교수(사진=본인 제공)
진구섭 미국 맥퍼슨대 사회과학부 명예교수(사진=본인 제공)


지난 1992년 4월29일부터 같은 해 5월까지 미국 로스앤잴러스 폭동(LA폭동)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담은 ‘지붕 위의 한인들’을 펴낸 진구섭 미국 맥퍼슨대 사회과학부 명예교수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LA폭동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약 34년 전 미국 LA에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폭동으로 한인 1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2300여 곳의 한인 업소가 불타거나 파괴된 비극이 벌어졌다. 최근 출간된 ‘지붕 위의 한인들’은 이른바 LA폭동으로 불리는 해당 사건을 단순한 폭동이 아닌 미국 내 첨예했던 인종 갈등의 충돌로 새롭게 조명한다.

◇생계 지키고자 총 들고 지붕에 올라간 미주 한인들

저자는 LA폭동 발생에 앞서 1960년대 미주 한인 사회의 가발 사업 열풍부터 LA폭동의 잠재적 도화선 역할을 한 1991년 두순자의 15세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녀 총격 사건, 나아가 폭동의 직접적인 발단이 된 로드니 킹 사건까지 상세히 담아낸다. 로드니 킹 사건은 당시 과도한 LA경찰의 진압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로드니 킹이 원고로 재판정에 섰지만, 불공정한 재판 과정과 경찰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LA폭동의 방아쇠가 된 사건이다.

진 교수는 LA폭동이 일어날 당시 대학원생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대학원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미국인 교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LA에서 일어난 사태가 점차 심각해 지고 있다’고 말한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면서 “자동차로 1시간 달리면 닿는 곳에서 무간지옥의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말이 마치 ‘너의 집이 불길에 휩싸였다’라는 폭탄 선언처럼 들렸다”고 회고했다.

책은 폭동이 일어난 그 당시의 긴박한 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상세히 서술한다. 사건의 무게에 비해 전후 맥락을 깊이 있게 짚는 책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본인이 직접 저술 작업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인터넷 상에선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보가 난무했다”면서 “사건의 무게에 비해 사건 전후 맥락을 깊이 있게 짚는 책도 찾아보기 어려워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앞서 2020년엔 ‘누가 백인인가?-미국 인종 감별 잔혹사’를 펴내는 등 오래 전부터 인종 문제와 사회 불평등에 관심이 많았던 진 교수는 사건과 관련된 보고서와 재판 기록물, 학술 서적 및 논문 등 그동안 축적한 자료와 연구를 통해 책을 집필했다.

◇무방비했던 LA경찰, 한인 총격 과장해 보여준 현지 언론

미국 내 인종 간의 무력 충돌이었던 LA폭동 이틀째인 1992년 4월30일 사망한 고 이재성 군은 당시 18세였다. 그마저도 한인 자경단의 오인 사격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이후 한인 사회는 같은 해 5월2일 폭동을 평화적으로 끝내기 위한 평화 대행진을 이어갔고, 같은 달 3일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LA지역을 연방 재해 지역으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다음날인 5월4일 톰 브래들리 LA시장은 폭동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책은 LA폭동에 관련된 미국 언론과 현지 LA경찰 역시 잠재적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진 교수는 “폭동 둘째 날 코리아타운에서의 약탈과 방화 행위가 시작되면서 수많은 이들이 훔친 물건을 들고 나와 차량에 싣고 있었지만 경찰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면서 “한인 상인들은 재산이 생명이라 생각했기에 주저 없이 총을 들었지만, 해당 과정에서 권총을 난사하는 장면은 미국 언론의 먹잇감이 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은 미주 한인 사회로 하여금 미국 내 한국인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각을 불러일으켰다는 게 진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미주 한인 사회는 LA 폭동을 통해 이웃과 인간관계를 무시한 물질적 부의 축적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를 자각했다”면서 “이전엔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 정치에 기울어졌던 관심이 이제는 유권자 등록과 한국계 2세 정치인 배출 쪽으로 중심 이동했고 타인종과 사회 정치적 연대 움직임도 많아졌다”고 평가했다.

진구섭|536쪽|푸른역사
진구섭|536쪽|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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