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경제 수준으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평가받는다. 다만 세계사에 유례없는 초고속 압축 성장 탓인지 사회의식 전반에서도 선진국 수준에 올랐냐는 대목에 이르면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외형·물질적 성장을 시민의식, 문화, 사회적 신뢰 같은 비물질적 내면 성장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 지체' 현상이 보인다. 특히 서구 선진국과 비교할 때 눈에 띄는 차이는 '제복 입은 사람들'(Men in Uniform)에 대한 인식과 예우다. 군인·소방관·경찰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처우가 다른 선진국들보다 많이 떨어진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도하는 미국의 사례를 보자. 미국인들은 제복 입은 군인·경찰관·소방관을 보면 "노고에 감사드린다"(Thank you for your service)라고 자연스레 인사를 건넨다. 평범한 일상조차 그들이 없다면 유지되지 못한다는 고마움을 알아야만 가능한 표현이다. 주요 항공사들은 군복 입은 군인이 비행기를 탈 때 무료 좌석 업그레이드와 우선 탑승 혜택을 준다. 카운터에서 그냥 지나쳤다면 승무원 재량으로 승격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빈 자리가 없으면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승객이 자기 자리를 양보할 정도다. 식당과 카페 등에서 제복 입고 식사하던 군경과 소방관 밥값을 다른 시민이 몰래 대신 내고 나가는 일도 흔하다.
제도적 지원책도 든든하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제복 공직자들의 주거, 교육, 의료 지원과 법적 보호를 위해 재정을 아끼지 않는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파격적 혜택을 주지만 누구도 여기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현역 및 퇴역 군인은 집 살 때 초기 납부금 등이 면제되고 담보 금리도 낮게 우대받는다. 일정 기간 복무한 군인은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전액 지원받아 대학에 다닐 수 있다. 경찰·소방관, 응급구조사 등에게는 근무지 거주에 어려움 없도록 정부 소유 공공주택을 반값에 제공한다. 순직하거나 다친 경찰과 소방관 가족에게는 거액의 지원금과 자녀 대학 학비 전액을 준다.
이런 기조는 민간도 마찬가지다. 미국 기업들은 제복 공직자 할인을 마케팅과 사회 공헌을 넘어 당연한 기업 윤리로 여긴다. 디즈니랜드, 스포츠 경기장 등 위락 시설은 물론 애플, 나이키, 홈디포, 버라이즌 등 많은 기업이 군경과 소방관에게 상시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주요 시중 은행들마저 각종 금리 우대 및 연회비 면제 혜택을 준다. 메이저 스포츠 경기에서도 지역의 군인, 소방관, 경찰을 초청해 소개하고 관중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는 행사를 종종 포함한다. 이런 모습은 2015년 북한 목함지뢰 도발 이후 고생하는 장병 전체에 특별휴가령을 내렸을 당시 스타벅스가 휴가 군인에 무료 커피를 제공했다가 일부 여성계 반발로 논란이 일었던 우리 풍경과 대비된다.
다른 서구 선진국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은 법적으로 제복 공직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도록 제도가 체계화됐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과 단체는 군 출신에 채용 우대, 주택 보증금 무이자 대출 등을 제공한다. 경찰, 소방관, 응급구조사 등은 민간에서 다양한 할인 혜택을 받는다. 캐나다도 제복 공직자들에 각종 할인 혜택을 주고 일정 기간 복무 시 국비로 교육·전직 지원을 한다. 공무 수행 중 숨지면 지원금과 자녀 대학 등록금을 준다. 호주는 퇴역 군인에게 의료비, 대중교통료를 면제하고 각종 세금을 감면한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대륙국들은 경제적 지원보다 법적 신분 보장에 무게를 둔다. 근무 중인 제복 공직자를 폭행하거나 업무 방해하면 가중 처벌한다. 각종 공공시설과 공공주택 이용 우선권도 준다.
이처럼 공통으로 서구 선진국들에선 제복 입고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공무원들을 공동체를 지탱하는 '공기'나 '물'로 인식한다. 무엇보다 그들을 사회 주인공으로 특별 대우하는 문화가 있다. 주택, 교육, 의료 등에서 뚜렷한 혜택을 줄 뿐 아니라 가족들도 우대한다. 그런데 누구도 "왜 저 사람들만 집을 주고 학비를 주느냐"고 항의하지 않는다. 제복과 공권력이 존경을 잃고 무너지는 나라는 유지될 수 없으며, 그 피해는 결국 자신들에 돌아온다는 걸 잘 알아서다. 돈만 많다고 선진국으로 불리긴 어렵다. 부자가 됐다면 이를 뒷받침할 의식 수준이 뒤따라야만 내부 질서가 유지되고 이웃의 공감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린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최근 한 도백(道伯)이 소방 분야에 대해 드러낸 인식과 이후 이어진 논란을 지켜보며 든 생각이다. 목숨 걸고 화재를 진압하고 각종 사고 현장에서 소중한 인명을 구해내는 소방관 직종을 '재정 빨대'로 비유한 건 도를 넘었다. 게다가 실언하고도 사과조차 미루다가 마지 못한 듯 "사과를 바라시니까"라며 사과한 건 진정성마저 의심케 했다. 같은 당에서조차 비난과 책임 추궁이 나오는 걸 보면 이런 지적이 틀린 것 같진 않다. 이 도지사가 인구 면에서 가장 큰 지자체의 수장인 데다 집권당 대표까지 지냈던 여권 거물 정치인이란 점에서 실망이 더 컸다. 이렇게 큰일을 맡은 고위 공직자가 제복 공무원들을 이 정도로 여긴다면 일반 국민들의 인식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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