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김현주, 모성이란 성역 해부하는 연상호의 날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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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 김현주, 모성이란 성역 해부하는 연상호의 날로 [인터뷰]

스포츠동아 2026-10-19 08:30: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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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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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 장은지 기자] 2인 인터뷰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정체성은 도무지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완전한 심연에 있다. 기술이 고통과 상실마저 봉합해 주는 시대,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무결한 해답에 안주하는 것은 과연 구원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영화 ‘실낙원’은 9년 전 사고로 잃은 아들을 AI로 복원해 위태롭게 살아가던 한 엄마 앞에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나타나며 시작되는 비극을 그린다. 가짜 아들을 향한 기이한 애착과 진짜 핏줄을 향한 섬뜩한 경계심, 완벽한 가짜와 오염된 진짜의 충돌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실존적 물음을 거침없이 밀어붙인다.

이 시대 가장 박력 있는 사색가 연상호와 인물의 심연을 파고드는 실연자 김현주. 영화 ‘실낙원’은 안온한 가짜 낙원에 취한 이들에게 두 사람이 보내는, 불온하지만 매혹적인 현실로의 초대장이다.

사진제공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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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가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 캐릭터와 유격없이 단단히 밀착하는 배우의 재능은 작품이 관객에게 설득하려는 세계와 현실 사이의 시차마저 지워낸다. 연상호 감독과 이번으로 4번째 예술적 동행을 이어오고 있는 김현주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인 ‘연니버스’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데 있어 가장 미더운 실연자 가운데 하나다.

21일 개봉하는 ‘실낙원’은 김현주의 진가가 폭발하는 무대다. 인류의 가장 불가침한 성역이자 조건 없는 사랑으로 추대받은 모성의 이면을 파헤치는 검증대 위에서 김현주는 차갑게 어긋나고 뜨겁게 부딪힌다. 연상호 감독이 던진 날카롭고도 섬뜩한 질문을 온몸으로 실어낸 그를 만났다.

사진제공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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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돌아온 아들, 바로 모성애가 솟구칠 수 있을까요?”
영화에서 비극의 출발은 소영의 어린 아들 선우가 캠핑 버스를 타고 출발한 순간부터이지만, 진짜 균열은 죽은 줄 알았던 선우를 다시 마주한 소영의 얼굴에서 시작된다.

AI로 복원해 품에 끼고 살 만큼 애틋했던 아들이었기에 많은 이들은 눈물겨운 ‘모자 상봉’을 기대하지만, 소영의 눈빛에는 서늘한 경계와 섬뜩한 침묵이 먼저 서린다. 김현주는 소영의 입장에 몰입하기가 결코 어렵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9년 동안 어린아이의 모습으로만 기억했고 이미 죽었다고 믿었던 아들이에요. 낯선 청년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는데 어떻게 곧바로 ‘내 아들’이라는 확신과 맹목적인 모성애가 솟구칠 수 있겠어요. 저는 그 서먹함과 경계심이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어요.”

극 중 소영은 아들 선우를 잃고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된 AI 아들과의 교감에 기대어 살아가던 인물이다. 실종 당시 모습 그대로 완벽한 아들이지만 만질 수도 없고 특수 안경을 벗으면 사라진다. 김현주는 그 삶을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공허가 밀려오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기만적인 ‘중독’의 상태로 바라봤다.

그러던 소영에게 진짜 아들이 돌아왔지만, 상황은 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는 대본에 없는 공백도 나름의 해석으로 채워가며 소영과 돌아온 선우(배현성)의 관계성을 섬세하게 조율했다. 경찰서에서 선우와 함께 돌아온 다음날 아침, 잠든 선우의 모습을 방문 너머로 지켜보는 소영의 얼굴은 다소 복잡해 보인다.

“영화나 대본에는 없었지만 전날 밤 선우를 데려와 어떻게든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겠죠. 근데 아마 선우가 ‘피곤하니까 잘게요’ 하는 식으로 냉담했을 것이고 이야기를 못 나눈 상태로 아침을 맞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소영의 괴리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진제공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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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 제가 자유롭게 뛰놀게 해주죠”
김현주와 연상호 감독의 인연은 이제 충무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예술적 동행으로 자리 잡았다. ‘지옥’, ‘정이’, ‘선산’, 그리고 이번 ‘실낙원’까지 벌써 네 작품 째다.

그는 ‘실낙원’ 소식 역시 거창한 미팅 아닌 “카톡으로 받았다”며 남다른 친분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 대본을 봤을 당시 결핍과 상실을 지닌 소영의 심리가 단숨에 마음을 잡아끌었다고 돌이켰다. 

앞서 연 감독은 이번 작품에 그를 택한 이유로 “내가 쓴 글을 김현주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감상하고 싶었다”며 각별한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현주는 평소 영화 전반이나 시스템적인 이야기는 나누지만, 감독이 연기에 대해 큰 디렉션을 주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배우 입장에서는 나를 믿어주는 감독만큼 감사한 게 없죠. 제 무대 같은 느낌이 드니까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고,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출가로서 의도와 계획은 다 있으시지만, 그 틀이 굉장히 넓다 보니까 제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놀 수 있는 무대가 되는 것 같아요.”

사진제공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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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그는 연 감독의 디스토피아 속의 지독한 격랑과 결핍을 쉼 없이 통과해 왔다. 그럼에도 매 순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건강한 분리의 힘’에 있다. 그는 롱런하기 위해서는 배우 자신이 먼저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연기하던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 번아웃이 오고 연기가 재미없어지더라고요. 오래 연기하려면 조금 부족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온전히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죠. 지금은 퇴근길 이동하는 차 안에 캐릭터에 대한 건 다 털어버리고 가볍게 집에 들어 가요. 자유자재까지는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안정화 돼있는 상태죠.”

연상호 감독처럼, 일하면서 에너지는 얻는 타입은 결코 아니라는 그는 ‘실낙원’ 촬영을 마치고는 오랜 버킷리스트였던 오로라를 보러 떠났다. 철저히 비워내야만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채울 수 있다는 그의 얼굴에는 평온함과 확신이 깃들어 있다. 

김현주는 21일 개봉하는 ‘실낙원’은 물론 tvN 드라마 ‘100일의 거짓말’로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많은 분이 봐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지만 그럴수록 중심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저 주어지는 인물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표현하고, 비워내고 채워가면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싶어요. 좋은 작품을 만나려면 제가 먼저 바로 서야죠.”


장은지 기자 eun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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