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거’ 스틸,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스포츠동아 이승미 기자]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스타 톰 크루즈가 거장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과 손잡은 신작 ‘디거’로 뼈아픈 흥행 실패를 맛봤다. 막대한 제작비에도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할리우드 영화인들은 오히려 작품을 옹호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디거’는 거대한 환경 재앙을 일으키고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석유 재벌 디거 록웰의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다. 톰 크루즈는 특수분장까지 감수하며 기존의 액션 스타 이미지를 벗어던졌지만, 난해한 서사와 기괴한 풍자는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지난 16일까지 ‘디거’의 글로벌 흥행 수익은 4109만 달러로, 1985년작 ‘레전드’ 이후 약 40년 만에 톰 크루즈 출연작 중 가장 저조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당초 1억2500만 달러로 알려졌던 제작비는 1억6000만~1억8000만 달러까지 불어난 것으로 전해졌으며, 마케팅 비용까지 고려하면 손실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온라인에서는 ‘디거’의 흥행 참패를 조롱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그러나 할리우드 대표 감독과 배우들은 오히려 작품을 옹호하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배우 벤 애플렉은 흥행 실패를 통쾌한 승리처럼 소비하는 분위기를 비판했다. 그는 “야심 찬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창작자를 조롱한다면 할리우드에는 안전한 속편과 프랜차이즈 영화만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흥행이 검증된 이야기만 반복하는 산업에서는 새로운 소재와 대담한 연출이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앤 해서웨이 역시 작품에 10점 만점을 주며 관객들에게 직접 보고 판단할 것을 권했다. ‘프랑켄슈타인’, ‘판의 미로’ 등을 연출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도 작품의 도전 정신을 옹호하며 힘을 보탰다.
이들의 지지는 단순히 동료의 실패를 감싸는 차원을 넘어선다. 흥행 가능성이 높은 영화만 살아남는다면 영화의 실험성과 다양성은 물론 새로운 예술적 성취의 가능성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깔려 있다.
실제로 할리우드는 막대한 제작비와 흥행 불확실성 속에서 기존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속편과 프랜차이즈에 점점 더 의존해 왔다. 익숙한 캐릭터와 검증된 세계관은 투자 위험을 줄이지만,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흥행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실험적인 작품까지 외면한다면 극장가는 안전하지만 비슷비슷한 영화들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게 영화인들의 우려다.
물론 창작적 도전이 흥행 실패나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을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업적 성공과 예술적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당장의 성적만으로 작품을 재단하기보다 새로운 시도가 영화산업에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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