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국내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 상장 주식 평가액이 석 달 반 만에 182조원 넘게 증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최상위 반도체 종목이 급락하면서 전체 평가액 감소를 주도했다. 국민연금은 반도체 비중을 덜어내는 한편 밸류에이션 매력이 부각된 건설·보험 업종 지분을 늘리며 포트폴리오 재편에 돌입했다.
18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287개 상장사 주식 평가액은 지난 15일 기준 333조533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6월 말 515조9293억원 대비 182조3963억원(35.3%) 급감한 액수다.
국민연금의 주요 상장사 주식 평가액이 분기 기준으로 감소세를 기록한 사례는 2024년 4분기 이후 7분기 만이다. 올해 4월부터 7월 초까지 거둔 약 189조원의 평가이익이 고스란히 장부상에서 지워진 셈이다.
◇반도체 투톱 폭락에 132조원 증발…쏠림이 부른 구조적 한계
손실의 70% 이상은 대형 반도체주에 집중됐다. SK하이닉스는 주가가 265만원에서 126만2000원으로 주저앉으며 국민연금 보유 지분 평가액이 74조2261억원 쪼그라들었다. 삼성전자 역시 33만4000원에서 21만원으로 밀려 56조8710억원이 사라졌다. 두 종목에서 발생한 평가액 감소분만 131조971억원으로, 전체 축소액의 71.8%를 차지했다.
증권가에서는 국내 증시의 극단적인 반도체 쏠림 현상이 가져온 구조적 취약성을 지적했다.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보고서를 통해 “실적 기반 상승이라 하더라도 반도체 독주와 쏠림 심화는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지점”이라며 “반도체 업황의 고점 통과(피크아웃) 우려와 변동성에 대비해 상대적으로 덜 오른 비(非)반도체 제조업 및 리스크 분산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반도체 밸류체인과 그룹 지주사도 동반 충격을 받았다. SK스퀘어 평가액이 10조8698억원, 삼성전기가 7조5914억원 줄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 287곳 중 61.3%에 달하는 176곳의 평가액이 일제히 후퇴했다.
◇하락장 속 ‘방어벽’ 구축…건설·금융·필수소비재로 갈아타기
거센 하락장 속에서 국민연금은 방어적 리밸런싱(자산 재배분)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낙폭 과대 평가를 받거나 안정적인 배당 성향을 갖춘 종목군을 매수했다. GS건설 지분율을 기존 7.82%에서 12.88%로 5.06%포인트(p) 대폭 끌어올렸으며, 현대해상(12.37%)과 빙그레(9.37%) 지분도 확대했다. 한화, 대한항공, 네이버(NAVER) 역시 비중 확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금융투자업계 및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와 IT 대형주의 급락 국면에서 추가 매수보다는 건설, 에너지, 전통 제조업 및 배당 매력이 높은 금융주로 자금을 이동시켰다”며 “지수 급변동 장세에서 포트폴리오의 하방 지지력을 확보하고 변동성을 낮추기 위한 전형적인 업종별 리밸런싱이 진행된 것”으로 풀이된다.
◇고점 부담 종목 차익 실현…13개 상장사 ‘5% 클럽’서 이탈
반면 고평가 논란이 일거나 단기 차익 실현 여력이 있는 종목은 지분을 털어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율을 10.27%에서 6.56%로 3.71%p 낮췄으며, 증시 거래대금 감소 우려를 반영해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지분율도 각각 1%p 이상 축소했다.
주가 급락 및 지분 매각 영향으로 LG디스플레이와 글로벌텍스프리를 포함한 13개 상장사는 국민연금의 대량보유 공시 기준선인 ‘5% 클럽’에서 이탈했다.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국민연금의 대량보유 지분율이 5% 미만으로 내려가면 자본시장법상 1% 이상 지분 변동에 대한 5일 이내 상세 공시 의무에서 벗어나게 된다”며 “단순한 포트폴리오 조정을 넘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향후 추가 비중 축소나 리밸런싱을 유연하게 진행하려는 운용상 법적 판단도 작용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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