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디어뉴스] 김상진 기자 = 흥망이 유수하니 / 원천석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 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서평 talk]
원천석의 「흥망이 유수하니」는 사라진 왕조의 흔적 앞에서 느끼는 허무와 슬픔을 담은 작품이다.
시인은 옛 고려의 궁궐터였던 만월대를 바라본다. 한때 왕과 신하가 오가고 나라의 중요한 일이 결정됐던 곳이다. 그러나 왕조가 사라진 뒤 그곳을 채운 것은 가을 풀뿐이다.
“흥망이 유수하니”라는 첫 표현은 모든 것을 압축한다. 나라가 일어나고 무너지는 일도 흐르는 물과 같다는 것이다. 한 시대에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권력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두 번째 구절에서는 그 허무가 더욱 선명해진다. “오백 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수백 년 동안 이어졌던 고려의 역사가 이제 목동이 부는 피리 소리 속의 옛이야기처럼 남았다는 것이다.
거대한 역사가 일상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사람은 자신의 시대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행동하고,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준다. 영원한 것은 거의 없다.
마지막 구절에서 화자는 석양 속을 지나며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단순히 고려라는 한 왕조가 사라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찬란했던 모든 것이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바라보는 인간의 슬픔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개인의 감정과 역사의식이 만난다. 폐허는 과거를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오늘 우리가 자랑하는 것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오래된 흔적으로 남을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진다. 「흥망이 유수하니」는 지나간 시대를 애도하는 시조이지만 동시에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는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처럼 읽힌다.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권력도, 영광도, 사람도, 시대도 흘러간다. 그리고 결국 남는 것은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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