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AI 시대에 갇힌 韓 R&D…“추격형 잣대로 혁신 못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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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AI 시대에 갇힌 韓 R&D…“추격형 잣대로 혁신 못 만든다”

한스경제 2026-10-13 14:28: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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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국회에서 열린 ‘제2차 과학기술 60년 미래포럼’에서 권오남 과총 회장이 개회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13일 국회에서 열린 ‘제2차 과학기술 60년 미래포럼’에서 권오남 과총 회장이 개회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 서울=한스경제 김진영 기자 | 인공지능(AI)이 지식 생산의 속도와 방식을 바꾸고 있는 가운데, 국내 연구개발(R&D) 체계는 여전히 실패를 최소화하는 추격형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단기 성과와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기존 평가 방식이 오히려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개척할 기회를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의 성공률을 높이는 데 집중했던 지난 60년의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실패를 감수할 수 있는 별도의 제도와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3일 국회에서 열린 ‘제2차 과학기술 60년 미래포럼’에서는 AI 시대에 맞는 국가 R&D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이 같은 문제의식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마련한 이날 행사에서는 기존 연구제도의 한계부터 고위험 연구 지원, 산업 현장 실증, 데이터 기반 과학기술정책까지 폭넓은 논의가 이뤄졌다.

권오남 과총 회장은 “다음 60년에는 실패를 견디는 제도가 함께 있어야 한다”며 장기적이고 도전적인 연구가 단기 성과에 밀려 중단되지 않도록 법과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의 활용 가능성을 따져 시작하지 않았던 기초연구가 수십 년 뒤 성과로 이어진 사례를 언급하며, 연구자가 실패 이후에도 다시 도전할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박은성 MD노바 대표가 넥스트 AI를 위한 국가 혁신 생존 전략에 대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박은성 MD노바 대표가 넥스트 AI를 위한 국가 혁신 생존 전략에 대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이날 논의에서는 기존 R&D의 성공 방정식이 미래 혁신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박은성 MD노바 대표는 한국이 지난 60년간 축적한 추격형 연구체계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개척하는 선도형 연구에까지 동일한 운영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개선하는 연구는 사전에 목표와 성과를 설정할 수 있다. 반면 선행 사례가 없는 혁신 연구는 무엇을 개발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가 성공인지조차 처음부터 정하기 어렵다. 기존의 전문가 심사와 단계별 목표 관리, 성과 측정 방식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에는 오히려 진입장벽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박 대표가 제시한 해법은 기존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연구체계와 새로운 기술·시장을 개척하는 혁신체계를 별도로 운영하는 ‘이중 트랙’ 모델이다. 두 체계의 목적 자체가 다른 만큼 법과 예산, 인력 선발, 권한, 평가 및 실패 처리 방식까지 구분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혁신체계가 지속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으로 법적 기반과 예산, 사람, 보호를 꼽았다. 정권이나 정책 우선순위 변화에 따라 조직이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매년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 책임자에게 자율성과 권한을 부여하되 특정 개인에게 조직의 존속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인력 설계도 필수 요소로 제시했다. 박 대표는 “국가의 역할은 미래 기술을 직접 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기술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남들이 만든 판 위에서 빨리 가는 것을 넘어 아무도 만들지 않은 산업의 판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원장이 AI시대, 연구개발 시스템의 재설계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원장이 AI시대, 연구개발 시스템의 재설계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원장도 연구개발의 생산성을 단순한 비용 효율이나 예산 규모로 판단하는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 무게를 실었다. AI가 지식 생산 과정 자체를 바꾸고 있는 만큼 국가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방향을 설정하고, 연구 결과의 견고성과 책임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박 부원장은 미국의 AI 기반 국가 연구 프로젝트인 ‘제네시스 미션’을 사례로 들며 정부의 역할이 단순한 연구비 지원기관을 넘어 국가 자원과 연구 주체를 결집하는 ‘통합 설계자’이자 ‘동원자’로 확대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장기 연구계획 역시 개별 사업 예산의 합계에 머무르지 않고 인력·지역·안보 정책과 연계해 국가 차원의 투자 방향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연구제도뿐 아니라 R&D 성과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는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윤진욱 투비유니콘 대표는 "실제 기술적으로 구현이 가능한 것을 R&D로 삼고 있느냐 아니면 실제 사업에서 이용하게 쓰이는 것을 R&D 결과물로 삼고 있느냐에서 차이가 확연히 일어난다"며 연구개발의 출발점부터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윤 대표는 "아무리 잘 개발이 됐다고 하더라도 실증 현장에선 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AI 기술 확보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보다 고객과 산업 현장의 문제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사용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기술 구현에만 집중하면 연구실에서 성과를 거두더라도 사업화 단계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다.

국내 제조업 등 산업 현장에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데이터 자산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점도 짚었다. 윤 대표는 "암묵지를 어떻게 AI가 학습할 수 있도록 데이터 자산으로 끌어내느냐, 그게 기술인 것"이라며 현장 엔지니어와 영업 담당자 등이 보유한 경험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하는 역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실증 데이터를 자산화할 수 있는 데이터 과학자를 집중 양성하고, 해당 인력이 기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산업·인력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제2차 과학기술 60년 미래포럼’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제2차 과학기술 60년 미래포럼’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대학 연구 현장에서도 AI 모델 확보 경쟁에 앞서 연구 기반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졌다. 박성준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교수는 “고품질 과학 데이터가 가장 중요하고”라며 분야별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과 데이터 인프라 확보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특히 AI가 연구 결과를 빠르게 도출하더라도 이를 검증할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연구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짚었다. 박 교수는 “두 번째는 검증인 거 같습니다. 실제로 뭔가 나왔을 때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공동 실험 플랫폼과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연구 초기부터 참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재 양성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고 봤다. 단순히 AI 개발 역량을 갖춘 인력을 늘리기보다 과학적 문제를 이해하면서 AI의 가능성과 한계, 실제 실험 과정의 제약까지 파악할 수 있는 융합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 역시 기술 교육을 넘어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협력하고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취지다.

연구 현장의 디지털 전환도 주요 과제로 거론됐다. 참석자들은 양질의 연구 데이터를 확보하려면 사람의 수작업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동화 장비를 통한 데이터 생성·수집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AI로 행정 부담을 줄이되 연구자가 과학적 질문을 설정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연구개발 속도와 임상 현장의 안전성 검증을 구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AI를 활용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더라도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효과와 안전성을 별도로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개발 초기부터 개인정보 보호와 법적 규제, 윤리적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이 ‘실증’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이 ‘실증’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정부도 기존 R&D의 운영 방식과 정책 판단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나타냈다.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은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실제 현장에 적용돼 가시적인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실증’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연구실 안에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과감한 시도와 현장 적용을 통해 기술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다.

고위험·고수익(High-risk, High-return) 연구의 필요성도 함께 제기했다. 실패를 지나치게 경계하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AI를 활용한 데이터 기반 과학기술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구 차관은 “말로 하는 거 의미 없어요. 저희는 데이터 갖고 얘기할 거예요”라며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연구자와 대학 등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정책 결정에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AI 기본법과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소형모듈원자로(SMR) 특별법 등 주요 과학기술 입법과 R&D 예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며 현장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번 포럼은 202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 설립 60주년을 앞두고 지난 60년의 성과와 한계를 돌아보고 향후 국가 과학기술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연속 행사다. 지난 8월 열린 제1차 포럼에 이어 이날은 AI 시대에 필요한 연구개발 체계의 전환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날 논의는 연구비를 얼마나 늘리느냐보다 기존 R&D의 운영 원칙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집중됐다. 단기 성과 중심의 평가를 유지한 채 도전적 연구를 주문하거나, 기술 개발 실적만으로 현장 활용 가능성을 판단해서는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다. 기존 추격형 체계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실패를 감수하는 혁신체계에 별도의 법적·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향후 R&D 개편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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