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전세윤 작가] 이미지를 어떻게 말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구사하기 어려운 단어가 이미지이다. 무엇을 의미하든지 이미지는 아무튼 인간이 만들어 낸 상을 이야기한다.
이미지. 즉, 상은 사전적으로는 어떤 사물에 대하여 마음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서 받는 인상,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 어떤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받는 느낌을 의미한다.
이미지는 재창조되었거나 재창조된 시각이다. 그것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순간의 사물이 가진 어떤 모습 또는 모습들을 본래의 장소 및 시간에서 따로 분리해 내 일정 기간 또는 몇 세기 후까지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이미지는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진을 영어로 이미지라고도 칭할지도 모른다.) 비록 모든 이미지가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하고 있긴 해도, 어떤 이미지를 보고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 보는 방식(‘디깅 #50’)에 달려있다.
애초에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점차 사람들은 재현한 사물이 사라진 후에도 이미지는 그대로 남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동시에 하나의 이미지는 한때 무언가를 누군가가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다. 강치는 멸종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독도를 떠올리면 강치를 같이 연상하기도 하듯이 강치의 이미지는 남아있으며 동시에 과거에 누군가는 강치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 있다. 이와 함께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한 이미지는 X라는 사람이 Y라는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기록도 된다.
이미지 외에 어떤 과거의 유물이나 문서도,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세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증언해 주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이미지는 활자보다 어쩌면 더 정확하고 풍부하다. 이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미술의 표현적이고 상상적인 성격을 외면하고 단지 자료적으로만 간주하려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상상적 차원이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그것을 창조한 예술가의 가시적 세계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하나의 이미지가 미술 작품으로 제시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방식은, 미술과 관련해 교육받은, 문화적으로 중요하다고 전제된 몇몇 관점들의 영향을 받는다. 이를테면 미, 진실, 천재성, 문명, 형식, 사회적 지위, 취향 같은 것들. 이러한 문화적 가정들이 실제 세계와 꼭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실제 세계란 단순히 객관적 사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우리들의 의식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회화적 이미지에 관해 현재와 과거에 특별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동시대 미술인으로서 인정한다. 이 관계를 끊임없이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를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의 새로운 언어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새로운 언어를 통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디깅 #50’에서 논했듯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영역의 경험들을 더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은 개인적 경험을 넘어 과거에 대한 우리의 관계라는 본질적인 역사적 경험을 말한다. 즉, 우리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우리 자신이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그런 역사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경험을.
과거의 예술은 더 이상 과거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미지의 언어가 들어섰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언어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복제본의 저작권 문제, 미술 매체와 출판사의 소유권 문제,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정책 같은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처음 이 문제를 인지했을 때의 나는 너무 정치적이라 피곤했다. 하지만 과거의 예술 자체가 이제 정치적 문제가 된 이유는 앞에서 말한 문제들과 같이 현재의 위기가 훨씬 광범위하다는 것이 보여지며, 스스로의 과거와 단절된 개인이나 계급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개인이나 계급에 비해 선택이나 행동함에 있어 훨씬 덜 자유롭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존 버거/최민)’을 경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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