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교도소는 사람을 사회로부터 분리하지만,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삶을 과거의 잘못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지나온 시간이 있고, 쉽게 꺼내지 못하는 기억과 감정이 남아 있다. 연극 ‘인트라 무로스(INTRA MUROS)’는 교도소에서 시작된 연극 수업을 통해 감춰진 인간의 내면을 무대 위로 끌어낸다. 다른 사람의 역할을 맡고 자신의 과거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은 외면해 온 기억과 마주하고, 관객은 한 사람을 규정하는 사회의 시선과 그 이면에 놓인 개인의 삶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프랑스 극작가 알렉시 미샬릭의 대표작인 ‘인트라 무로스’는 2017년 초연 이후 현지에서 장기 흥행을 이어온 작품이다. 중견 연극 연출가 리샤르는 사회복지사 인턴 알리스의 제안으로 교도소에서 연극 수업을 시작한다. 전 아내이자 배우인 쟌느와 함께 수업을 진행하면서 젊은 수감자 케빈과 장기 복역수 앙쥬의 과거가 드러나고, 서로 무관해 보였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품에서 연극 수업은 수감자들의 과거를 밝혀내기 위한 심문과 다르다. 역할 바꾸기와 과거 재현하기 등의 훈련은 인물들이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이끈다. 케빈은 거친 태도 뒤에 숨겨둔 사연을 털어놓고, 침묵을 지키던 앙쥬도 자신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을 이야기한다. 연기는 이들에게 감정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하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자신의 과거를 다시 표현하는 일은 기억을 그대로 복원하는 작업과 다르다. 같은 사건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재현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드러나기도 한다. 작품은 연극을 통해 인물들이 과거를 다시 마주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표현하는 행위가 자신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모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사건은 이미 일어났고, 그에 따른 책임과 결과도 남는다. ‘인트라 무로스’가 보여주는 변화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극적인 구원보다 자신의 경험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며 타인과 소통할 가능성에 가깝다. 연극은 과거를 지우는 수단이 아니라, 그 기억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기회를 마련한다.
교도소라는 배경은 작품의 메시지를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한다. 수감자에게는 범죄에 대한 책임이 따르지만,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수감 이력 하나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은 인물들의 과거를 차례로 드러내면서 사회가 개인을 판단할 때 접하는 정보가 얼마나 제한적인지 보여준다. 관객은 인물들의 행동뿐 아니라 그 행동에 이르기까지의 경험과 감정을 함께 살펴보게 된다.
이는 인물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한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려는 태도와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은 함께 성립할 수 있다. ‘인트라 무로스’는 수감자들을 무조건적인 동정의 대상으로 그리기보다,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인물로 제시한다. 타인의 과거를 듣는 일이 곧 면죄부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결과만큼 그가 살아온 과정도 살펴봐야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연극 수업을 진행하는 리샤르와 쟌느, 수업을 제안한 알리스 역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 참여한다. 연극은 수감자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방적인 교육에 머물지 않는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가 되면서, 타인을 바라보는 사람 역시 자신의 판단을 돌아볼 여지를 얻는다. 작품의 관심이 교도소 내부를 넘어 사회의 시선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완성되는 이야기
‘인트라 무로스’의 극중극은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관객이 진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배우들은 현재의 인물과 그들이 기억하는 과거 속 인물을 오가며, 무대 위 현실을 연극 속 허구로 전환한다. 관객은 인물의 고백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재현되는 사건을 통해 앞서 접한 이야기를 다시 해석하게 된다.
인물들의 기억이 연결될수록 개별적으로 보였던 사건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반전이 이어지는 서사는 비밀을 밝혀가는 긴장감을 제공하면서도, 누군가의 말과 기억을 한쪽의 관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작품에서 연기는 진실을 감추는 가면인 동시에, 감춰진 사실에 다가가는 통로다.
‘인트라 무로스’는 ‘벽 안에서’라는 뜻이다. 교도소의 물리적 경계는 인물들이 처한 현실을 나타내지만, 무대는 연극을 통해 그 벽 너머의 과거와 관계를 불러온다. 다섯 명의 배우가 각자 두 개 이상의 인물을 연기하는 구성 역시 여러 사람의 기억과 경험을 제한된 공간 안에 펼쳐내는 데 힘을 보탠다.
앙쥬 역에는 이석준·오대석·김도빈, 케빈 역에는 최석진·정재환·박두호가 출연한다. 알리스 역은 홍나현·유낙원·이정화, 리샤르 역은 김재범·오정택·안창용, 쟌느 역은 한수림·오유민·이서현이 맡는다. 배우들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여러 인물을 표현하고, 인물의 기억이 무대 위에서 재현되는 과정을 선보일 예정이다.
연극 ‘인트라 무로스’가 다루는 치유는 과거를 없애거나 모든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타인의 말을 듣는 과정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가능성에 있다. 교도소에서 시작된 연극 수업은 무대 위 인물들의 과거를 드러내는 데서 나아가, 관객이 타인의 삶과 책임을 함께 바라보도록 이끈다. 작품은 연극이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판단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예술적 경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극중극과 빠른 전환을 활용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작품은 11월 10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한국 관객을 만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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