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벨 위페르 "한강 작가 글, 강렬한 힘으로 관객에 다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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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 위페르 "한강 작가 글, 강렬한 힘으로 관객에 다가가"

연합뉴스 2026-10-11 00:20:37 신고

한강 소설 원작 낭독극 '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서 국내 첫선

델리케 연출 "예술로 세대간 대화…젊은 세대, 비극적 역사 알아주길"

낭독극 '새' 낭독극 '새'

[아비뇽페스티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하얀 스크린으로 벽과 바닥을 뒤덮은 단출한 무대에 마찬가지로 하얀 옷을 입은 두 배우 이혜영과 이자벨 위페르가 나란히 섰다.

이혜영은 한국어로, 위페르는 프랑스어로 작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각색한 대사를 이어나갔다. 스크린에는 한국어와 프랑스어, 영어 자막이 함께 떴다.

두 배우는 때로는 간결한 침묵으로, 때로는 혼이 실린 대사로 울림을 주며 천천히 역사 속의 시간을 무대 위로 불러냈다.

한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낭독극 '새'가 1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한국 첫 공연을 마쳤다.

작품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제1장인 '새'를 각색했다. 지난 7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공연예술제인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됐으며,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으로 이날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칸 영화제에서 두 차례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 국민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경하'로, '파과'로 서울국제영화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이혜영이 '인선' 역을 맡았다.

작품은 극중 서술자인 경하가 친구 인선에게서 집에 남겨둔 새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인선이 어머니와 살던 제주를 방문하며 4·3 사건의 기억과 마주하는 여정을 그렸다.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흘러가는 낭독극이었지만 두 배우는 대사 외에도 시선과 제스처를 활용해 연기에 현실감을 더했다. 새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장면에서는 어깨에 앉은 새를 토닥이는 듯한 연기를,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맞는 듯한 연기를 선보였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이자벨 위페르는 이날 공연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한강 작가의 텍스트는 너무나 강렬하다"며 "그의 글은 어디서 낭독되든 그 힘을 잃지 않고 또다른 강렬함을 갖고 관객에게 다가간다"고 말했다.

"문학의 언어와 연극의 언어는 서로 달라요. 한강 작가의 문장들은 독특한데, 그런 언어를 낭독을 통해서 재현해야 하니 텍스트의 재현과 언어에 대해 집중해서 준비했어요."

위페르는 "전에는 이 슬픈 한국의 역사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한강 작가의 작업을 통해 우리가 더 많은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가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역사"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에서도 많은 일들이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며 "작품은 어떤 하나의 민족과 나라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한국 공연에 대해 "제주 4·3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인 한국에 와서, 한국 관객 앞에서 공연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특별하게 다가온다"며 "실내에서 진행돼서 야외 아비뇽 공연보다 서로의 말에 더 귀 기울이고,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관객과도 더 가까워져 긴밀한 관계가 생겨난 것 같다"고 전했다.

이혜영 또한 "연극의 완성은 관객이라고, 오늘 한국 공연에서는 확실히 제 대사를 이해하는 한국 관객이 좀 더 집중하는 느낌이었다"며 "아비뇽과는 또 다른 좋은 공연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공연에 몰린 관객들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공연에 몰린 관객들

(아비뇽<프랑스>=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15일(현지시간) 밤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명예극장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한 프랑스 연출가의 낭독공연 '새'가 초연됐다. 공연 시작 전 약 1천90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2026.7.16 san@yna.co.kr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등을 무대화한 프랑스 연출가 줄리 델리케가 연출을 맡았다.

델리케 연출은 "작품은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의 초청 언어로 한국어가 선정된 것을 기념해, 노벨상을 받은 한강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기획됐다"며 "낭독 대상으로 '새'를 선택한 것은 두 주인공의 관계와 우정이 드러나는 장면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침묵'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한 공동체가 끔찍한 일을 겪고 나서 수십 년이 지나도록 지켜야 했던 침묵에 대한 고민을 했다"며 "감히 언급하지 못하는 문제를 어떻게 예술가의 언어로 접근할 수 있을까 질문을 하며 연출했다"고 덧붙였다.

"역사를 물려받은 후대로서, 예술을 통해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산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이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비극을 실제로 겪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인간의 연약함과 인간성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낭독 공연 무대 직접 오른 작가 한강 낭독 공연 무대 직접 오른 작가 한강

(아비뇽<프랑스>=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15일(현지시간) 밤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명예극장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한 낭독공연 '새'의 첫 공연이 열렸다.
배우 이혜영, 작가 한강, 이자벨 위페르가 공연 후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2026.7.16 san@yna.co.kr

이날 제주 4·3 사건과 희생자들에 대해 설명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15세 황주현 양이 등장해 위페르와 이혜영의 사이에서 세 번째 낭독자로 나섰다. 지난 7월 아비뇽 교황청 공연에서는 원작의 작가 한강이 '깜짝 등장'해 낭독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델리케 연출은 "아비뇽에서 한강 작가의 등장은 꿈과 기억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번 서울 공연에서도 어떻게 시간을 멈추고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젊은 세대에게 이 역할을 맡기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도 프랑스도 몇 세대가 지나도록 묻혀 있다가 알려지는, 감추고 싶은 아픈 역사가 존재한다"며 "지금 학생인 젊은 세대들이 이 역사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낭독극 '새'는 오는 11일 같은 극장에서 1회 더 공연된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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