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를 둘러싼 고인에 대한 모욕과 역사 왜곡 논란이 단연 뜨거운 이슈다. 논란은 출연 배우의 자택 앞 시위로까지 번졌고, 배우 측도 강경한 법적 대응을 예고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다.
이에 질세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소재로 한 밈과 가상 영화 포스터가 퍼지고, 5·18 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의혹 제기까지 되풀이된다. 과거의 죽음과 상처가 정치적 공격의 재료가 되고, 혐오는 끝없는 도돌이표처럼 재생산된다.
앞서 스타벅스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탱크데이’ 홍보 논란은 배재고 야구부 사태로 이어졌다.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일부 학생들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를 외치자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정치권까지 나서 비판에 앞장섰고, 관련 기사가 연일 쏟아지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학생들의 사과와 광주제일고의 선처 요청도 있었지만, 구호를 선창한 두 학생은 결국 야구부 생활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잘못된 언행에 대한 질책이 사회적 매장으로까지 치달아야 하는가. 잘못을 꾸짖는 일과 한 사람의 미래를 지워버리는 일 사이에는 경계가 있어야 한다.
이제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여유는 모두 사라져 버린 시대가 되었다. 창작도 감상도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일이 되고, 서로 다른 해석이 오갈 자리에는 적대감만 남는다.
논란을 불러온 표현에서도, 이를 되받아치는 반응에서도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에 선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이제는 없다시피 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서로 다른 정의를 내세우지만, 상대의 상처를 대하는 태도에서 좌우는 어느새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어져 버렸다. 그 점이 아쉽다. 이를 지켜보며 느끼는 것은 분노보다 서글픔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상처를 이토록 가볍게 여기게 되었을까.
상황은 이제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를 끝까지 가려내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혐오가 혐오를 낳고, 책임을 따지는 일조차 다음 공격의 명분이 된다. 상대가 먼저 모욕했으니 나의 모욕은 정당하고, 상대가 먼저 선을 넘었으니 내가 지켜야 할 선도 없다는 논리다.
표현의 자유가 저절로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만든다는 신화는 붕괴되어 가고 있다. 서로의 생각을 듣기 위한 자유가 서로의 상처를 찾아 찌르는 자유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가 자유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혐오의 권리는 마침내 건드려서는 안 될 신성한 권리처럼 떠받들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을 위해 지켜온 자유에서 정작 인간이 사라지고 있다.
역사는 분열의 대가를 보여준다. 로마 공화정은 숙청과 내전을 거듭한 끝에 제정으로 넘어갔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부추긴 민족주의가 이웃 사이에 공포와 불신을 키웠다. 국가의 해체와 전쟁 속에서 민간인들이 목숨과 삶의 터전을 잃었고,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는 제노사이드, 즉 집단학살의 비극까지 벌어졌다. 몰락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이웃을 적으로 만드는 정치의 위험은 분명하다.
적과 아군을 가르는 프레임은 지지층 결집에 매우 유리하다. 정치인들이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이용하려는 이유다. 정치인들은 그 분노로 표를 얻지만, 정치적 가스라이팅의 대가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이 치른다. 거창한 명분을 만든 정치인들의 이름은 역사책에 남지만, 누군가에게는 무너진 관계와 망가진 일상으로 남는다.
상대가 먼저 멈추면 나도 멈추겠다는 약속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내 편의 조롱에도 고개를 젓고,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적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미워해도 되는 사람의 명단이 아니라 의견이 달라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모두가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우리 편의 승리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내일도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증오가 끝내 우리 사회를 폐허로 만들더라도, 우리의 아이들은 그 폐허 위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컬처인컬처’(Culture in Culture)는 문화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문화를 성찰해 그 연결 고리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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