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형수 크리스타 파이크가 지난주 약물 주입 방식의 사형이 집행에서 살아남으면서 테네시주 형사 사법 제도는 전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지난 9월 30일(현지시간) 주 교정당국은 치사량의 펜토바르비탈을 2차례 투여했으나, 파이크는 사망하지 않았다. 결국 병원으로 이송돼 기관삽관술을 받았다.
그리고 사형 집행 6일 뒤, 파이크의 변호인단은 "그가 의식을 되찾았고, 말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빌 리 테네시주 주지사는 내슈빌 소재 리버밴드 최고경비교도소에서의 당시 집행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파악하고자 독립적인 조사를 지시했으며, 올해 남은 사형 집행 일정도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콜린 슬레머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30년 동안 사형수로 복역해 온 파이크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파이크의 변호인단이 선임한 마취과 전문의인 조엘 지보트 박사는 약물이 혈류로 들어가지 않고 피부 아래 조직으로 퍼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아울러 워낙 많은 양의 약물이 투여된 만큼 파이크의 현재 건강 상태를 명확히 파악하는 데는 앞으로 며칠 또는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7일 열린 청문회에서 테네시주 정부 측 변호사는 새로운 사형 집행일을 결정할 권한은 주 대법원이 갖고 있다고 밝혔다.
파이크의 변호인단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의 감형을 요청하고 있다.
사면 및 감형 권한을 가진 리 주지사는 이 사건에 대한 주 정부의 대응에 관해 아직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태다.
BBC는 향후 상황을 파악하고자 여러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형 주사' 재시도?
우선 테네시주 교정국이 약물 주입 방식의 사형 집행을 다시 시도할 수도 있다. 다만 잔혹하고 비정상적인 형벌을 금지하는 헌법에 따라 주 정부는 법적 다툼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테네시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스티븐 로스 존슨은 "주 정부가 동일한 방식을 사용해 사형을 재집행한다면 심각한 법적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존슨은 특히 테네시주 당국이 지난 1년 동안 2차례나 사형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5월에는 사형수 토니 카루더스의 사형 집행이 실패한 바 있다.
이러한 사례는 파이크측 변호인단이 주 정부의 사형 집행용 약물 투입 절차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아울러 존슨은 파이크의 변호인단은 이른바 '사형 주사'가 "적용상 위헌"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즉 사형 제도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파이크라는 개인의 특성을 고려할 때 특히 잔혹하고 비정상적이라는 주장이다.
변호인단은 이미 사형 집행에 앞서 파이크가 혈액이 응고되는 질환인 혈소판증가증을 앓고 있어 상황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존슨은 파이크의 건강 상태와 주 정부의 사형 집행 실패 사례가 맞물리며 테네시주는 약물 주입 방식의 사형 집행 재시도를 정당화할 만큼 설득력 있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방식으로 사형 집행?
'전미 형사변호사 협회'의 회장 당선자이기도 한 존슨은 주 정부가 약물 주입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형을 집행하고자 추진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주지사실의 승인은 물론, 경우에 따라 주 의회의 승인 등 "추가적인 법적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 최근 파이크가 생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테네시주의 정치권에서는 다른 수단을 통한 사형 재집행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 달로 예정된 주지사 선거에서 출마한 공화당 소속의 마샤 블랙번 상원의원은 "전기의자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공화당 소속의 팀 버쳇 하원의원은 SNS를 통해 "교수형 재도입" 법안을 이미 제출했다고 밝혔다.
파이크가 주 정부가 사형 집행법을 개정하기 전인 1995년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테네시주 정부는 전기의자를 사용할 수도 있다.
다만 테네시주 소재 밴더빌트 대학교의 크리스 슬로보긴 법학 교수는 약물 주입 방식의 사형 집행을 받을 권리를 포기한다는 파이크의 서면 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이는 파이크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슬로보긴 교수는 파이크의 정확한 건강 상태가 알려지지 않은 만큼, 주 정부가 사형 집행 자체를 다시 시도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형을 당하는 이유를 이해할 정신적 능력이 없는 사람을 처형하는 것 역시 잔혹하고 비정상적인 형벌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역사적으로 이는 치매나 정신병을 앓는 수감자들에게 적용됐으나, 전문가들은 파이크가 뇌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파이크는 감형될까?
우선 테네시주는 당분간 사형 집행을 중단할 전망이다.
올해 파이크에 이어 또 다른 사형수 1명의 사형 집행이 예정돼 있었으나, 주지사는 이미 이 일정을 연기했다. 앞서 5월에는 교정당국이 주사를 투여할 정맥을 찾지 못하면서 사형수 카루더스의 집행이 1년간 연기됐다.
이에 따라 파이크 사건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존슨은 "적어도 주 당국이 이 문제를 검토하는 동안 (사형 집행은) 상당히 연기될 것"이라며, 파이크의 건강 상태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슬로보긴 교수는 조사 과정에서 주 당국의 실책이 드러날 경우 주지사가 사형을 감형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사형 집행 과정의 복잡성과 부정적인 여론을 고려하면, (주지사가 지시한) 조사 결과, 어떤 식으로든 사형 집행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거나 실행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드러난다면 주지사로서는 감형이 가장 쉬운 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형 집행이 실패하고 수감자의 건강 상태마저 좋지 않아 감형된 법적 선례가 존재한다.
앨라배마주 사형수 도일 햄의 경우, 교정 당국이 2시간가량 정맥주사 라인을 확보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이에 주 당국은 그의 건강 상태 등과 관련해 법적 합의를 거쳐 사형 집행을 포기했다. 햄은 이후 자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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