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전시관] 매일 걷던 길인데 왜 달라 보였을까… 김연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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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전시관] 매일 걷던 길인데 왜 달라 보였을까… 김연수의 풍경

뉴스컬처 2026-10-08 10:15:00 신고

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 전시 작품. 사진=갤러리나우
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 전시 작품. 사진=갤러리나우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매일 걷던 길가 작은 꽃 하나가 발길을 멈춰 세운다. 어제도 있었을 법한, 이름 모를 식물이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어쩌다 어느 날에는 울컥하고, 몸이 잠깐 움찔한다. 김연수는 감정의 연원을 즉각 해석하기를 유예한다. 붓을 쥐고 마주한 풀과 나무를 캔버스에 올려 미처 몰랐던 마음의 정체를 차분히 더듬어 간다. 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An Unexpected Guest)'은 작가가 일상에서 우연히 조우한 생태계를 묘사한다.

풍경을 사실에 가깝게 복제하기란 목적과 거리가 꽤 멀다. 계절과 온도, 빛이 변하면 익숙한 산책로도 매번 낯선 얼굴을 내민다. 관찰자의 심리 상태마저 매일 요동치며 조건과 감각이 포개진다. 단 하나의 풍경조차 두 번 반복될 리 만무하다. 전시명처럼 숨겨진 마음은 스스로 정체를 알리기를 거부한다. 길목에서 마주친 잎사귀가 불쑥 묻어둔 감정을 호출하는 방아쇠 역할을 충실히 맡는다.

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 전시 작품. 사진=갤러리나우
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 전시 작품. 사진=갤러리나우

 

◇풍경은 감정의 '트리거'

김연수는 풍경을 특정 장소라 칭하기를 피하고 숨어 있던 감정을 적발하는 '트리거(trigger)'라 했다. 작가 본인조차 무엇을 느꼈는지 정확히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붓을 든다. 물감을 비비고 긋고 쌓아 올리는 육체노동을 거쳐 막연했던 감각이 비로소 구체적인 형태를 획득한다.

과거 연작에서는 제작이 진전될수록 감정의 정체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좇았다. 신작 연작에서는 사뭇 태도가 달라졌다. 심연에서 건져 올린 울컥함을 기쁨이나 슬픔 따위 특정 단어 안에 강제로 구겨 넣기를 멈췄다. 작가가 특정 감정을 명시하면 관객은 닫힌 텍스트 감옥 안에서 화폭을 단편적으로 해석하기 십상이다. 굳이 꼬리표 달기를 배제한 채 감정을 유보할 때 관객 스스로 내밀한 기억을 끌고 들어올 너른 여백이 태어난다.

◇잡초 무리에서 적발한 생명의 고유성

화폭 중심에 선 피사체에는 관광지 특유의 절경이나 웅대한 산세가 극히 드물다. 길가 구석에서 자란 들풀, 하천 주변 갈대, 보잘것없는 꽃송이가 주연 위치를 당당히 꿰찼다. 평론가 이선영은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 개념을 빌려와 예리한 해석을 덧붙인다. 대중이 합의한 안전한 피사체를 거부하고, 개별 관람객에게 예상 밖의 날카로운 감각을 찔러넣는 미세한 시각 요소가 묵직하게 다가온다는 분석이다.

김연수는 대상을 극적으로 치켜세우기를 철저히 경계한다. 값싼 연민을 덧칠해 생태계를 과장하면 연약한 생명체는 이내 납작한 껍데기에 구속되기 마련이다. 실용적 쓰임새가 전무하다는 핑계에 밀려 제초 대상 명단에 오르는 무용한 존재에게서 완벽한 타자의 얼굴을 생생히 건져 올린다. 화폭 안에서 식물은 인간 중심주의를 철저히 배격한 채 완전한 자생적 에너지를 뽐낸다.

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 전시 작품. 사진=갤러리나우
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 전시 작품. 사진=갤러리나우

 

◇산책자의 행보에 담긴 바람의 궤적

대표작 '보이지 않는 숨결' 연작은 다섯 패널을 하나에 연결한 대형 초록 풍경화다. 걷는 동안 가까운 식물은 빠르게 곁을 스쳐 지나가고 먼 풍경은 천천히 움직인다. 피사체와 벌어지는 물리적 거리 변화가 작품 전체 호흡에 적극 개입한다. 화가는 허공을 맴도는 무형의 공기 자체를 묘사할 수 없다는 한계를 묵묵히 수용한다. 눈을 돌려 바람결에 반응하며 춤추는 식물의 몸통 궤적을 붓을 써서 끈질기게 좇는다. 수풀은 쉼 없이 흔들리고 물살은 계속해서 흘러가며 생동하는 자연을 여실히 증명한다.

작품 제목이 암시하듯 숨결은 육안에 잡히기를 완강히 거부한다. 화가는 숨을 직접 묘사하는 뻔한 방식 대신 식물의 기울기, 붓의 율동, 색채 농담 조절을 앞세워 공기의 흐름을 기민하게 포착한다. 관객이 작품 앞을 거닐며 이동하면 패널마다 서로 다른 붓 자국이 눈을 파고들며 실제 산책로를 걷는 듯한 신체 경험을 선사한다.

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 전시 작품. 사진=갤러리나우
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 전시 작품. 사진=갤러리나우

 

◇빛을 머금은 심연, 기억을 직조하는 붓질

야간 풍경을 담은 화폭 내부에서는 아주 작은 식물이 뿜어내는 존재감이 강렬해진다. 신작 '너희는 달빛인 줄 알겠지' 안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숲이 끝없이 펼쳐진다. 가장 어두운 시간대에 밝은 꽃망울이 한 줄기 빛을 머금고 피어난 찰나를 눈부시게 묘사한다. 인간이 자연을 완벽히 통제하고 파악할 수 있다는 오만한 확신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공간이다.

화가는 숲을 마주한 현장에서 셔터를 누르며 형상을 담지만, 인화된 사진을 곧이곧대로 복제하는 수동적 태도는 철저히 배제한다. 촬영 행위는 희미해지는 잔상을 잠시 붙들기 위한 일차적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뇌리에 남은 잔상과 촉각적 감각에 기대어 굳은 형태를 유려하게 허물고 층층이 물감을 쌓아 올린다. 화폭을 수놓은 초록은 시판 물감 단일 색상표에 얽매일 리 만무하다. 대기 중 습도와 시간대, 빛이 쏟아지는 방향을 흠뻑 흡수해 계속해서 오묘하게 얼굴을 탈바꿈한다.

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 전시 작품. 사진=갤러리나우
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 전시 작품. 사진=갤러리나우

 

◇화가와 관람객, 자연이 맺는 치열한 상호작용

1984년생 화가 김연수는 동양화 기법을 깊이 파고든 뒤 독일 뮌헨 조형예술대학에서 서양 회화를 몸에 익혔다. 붓을 놀리는 방식에는 동양화단에서 축적한 일필휘지의 긴 호흡이 배어 있고, 캔버스 표면에는 두터운 서양 유화 물성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다.

갤러리나우 전시장이 관람객을 향해 던지는 최종 질문은 결코 어떤 풍경이 시각적 우위를 점하는가를 가리는 얄팍한 서열 매기기와 궤를 달리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밋밋한 자연 한 조각이 어느 날 뜬금없이 왜 내밀한 심연을 강타하는가를 집요하게 묻는 행위에 한없이 가깝다. 오만한 인간이 풍경을 일방 관찰한다 맹신하는 찰나, 도리어 자연이 사람 내부 깊숙이 은폐된 원초적 감정을 예리하게 적발해 내도록 매섭게 방아쇠를 당긴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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