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춘천예술촌 입주작가 박명미 개인전 ‘너는 나의 회화’가 지난 9월 30일 서울 중구 더 소소에서 개막, 오는 20일까지 관람객을 만난다. 이번 전시는 강원특별자치도와 강원문화재단이 후원하며, 작가가 오랫동안 깊이 있게 다뤄온 ‘엄마 뒷모습’ 연작을 중심으로 기억과 타자, 여성의 노동과 돌봄, 그리고 회화의 본질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신작들을 선보인다.
박명미의 작업은 한 사람을 응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2023년 무렵부터 그리기 시작한 ‘엄마 뒷모습’은 작가의 예술적 실천을 추동하는 핵심 형상이다. 작가는 어머니의 사진과 기록을 세심하게 살피고 인터뷰를 통해 기억을 되짚으며 그 뒷모습을 화면에 옮긴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인물은 결코 선명하게 재현되지 않는다. 사진이 포착할 수 없는 전후의 시간과 기록이 담아낼 수 없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헤아리기 때문이다. 박명미에게 그리는 행위란 대상을 소유하거나 완결 짓는 일이 아니라, 완전히 도달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타자’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전시명 ‘너는 나의 회화’는 이러한 태도를 고스란히 함축한다. 여기서 ‘너’는 작가의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가족,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작가가 작업을 통해 마주해 온 이름 없는 타자들을 포괄한다. ‘너’를 그리는 것은 하나의 박제된 이미지로 대상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닿을 수 없음을 자각하면서도 다시 바라보고 다른 방식으로 옮겨보는 실천을 뜻한다.
박명미의 회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리기와 지우기의 끊임없는 반복’이다. 연필 선으로 형태를 쌓고 지워나가는 과정에서 이전의 선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화면 위에 미세한 흔적으로 남는다. 그 위에 새로운 선이 겹쳐지며 하나의 화면 안에는 여러 시간과 이미지가 겹겹이 공존하게 된다.
작가 특유의 흐릿한 형상 역시 대상을 하나의 명확한 의미로 고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그의 그림은 완성된 결과물이라기보다 끊임없이 변모하는 상태 그 자체에 머문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미술사적 이미지와 가사 노동의 신체를 겹쳐 놓은 인상적인 작업도 선보인다. 대표작 ‘계단을 내려오는 여인과 걸레질하는 여자’는 모더니즘 미술사 속 익숙한 ‘계단을 내려오는 여성의 신체’ 이미지에 걸레질하는 어머니의 몸을 포개 놓는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여성의 신체를 관조하던 기존의 시선을 일상의 노동과 돌봄이라는 생생한 현실로 이동시키며, 그동안 사소하고 사적이라 여겨졌던 집안일을 회화의 묵직한 형상으로 끌어올린다.
작가에게 회화와 돌봄은 결코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두 아이를 양육하며 작업을 지속하기 어려웠던 시간과 어머니의 삶을 지켜본 경험은 그의 작업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어머니가 해온 가사와 돌봄의 노동, 그리고 과거 방직 공장에서 일했던 기억은 작가 자신의 바느질과 회화적 실험으로 이어진다. 실, 바늘, 천 같은 매체들은 단순한 부차적 재료를 넘어 여성의 삶과 노동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는 강력한 매개체로 작동한다.
작가의 작업은 결국 ‘다시 바라보는 일’에 대한 기록이다. 완전히 기억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다시 기억하고, 완전히 알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다시 다가가며, 하나의 언어로 담을 수 없기에 다른 매체로 옮겨보는 일. 그의 회화에서 지워진 선은 사라지지 않고, 흐릿한 형상은 온전히 소멸하지 않은 채 관람객을 맞이한다.
‘너는 나의 회화’는 그렇게 남겨진 흔적들의 궤적을 따라간다. 엄마의 뒷모습에서 발화한 이미지는 기억과 타자, 노동과 돌봄, 삶과 예술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부단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박명미에게 회화란 무언가를 꽉 붙잡아 두는 기술이 아니라,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존재를 오랜 시간 동안 지극히 바라보는 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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