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피격돼 서거했다. 이틀 뒤인 8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프랑스에 유학 중이던 딸 박근혜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지가 맞을 흉탄을 어머니가 내 대신 맞고 가셨다. 내가 맞고 어머니가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몇 번이고 생각해 본다.”
짧은 문장 속에는 대통령이기 전에 아내를 잃은 남편이자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심경이 담겨 있다. 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이 편지는 당시를 보여주는 중요한 1차 기록이다.
이 편지를 보며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문장이 떠오른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오웰이 경고한 것은 과거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아니었다. 권력이 현재의 필요에 따라 기록을 고치고, 과거의 사실마저 바꾸는 일이었다. 《1984》에서 권력은 기록과 기억을 통제함으로써 사람들이 무엇을 사실로 믿을 것인지까지 지배한다.
역사는 그래서 한쪽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누군가에게 불편한 기록이라고 지워서도 안 되고,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미화해서도 안 된다.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기존의 해석을 다시 살펴보고, 기록과 증언을 서로 비교하며 사실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편지도 마찬가지다. 한 통의 편지가 한 시대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담긴 기록의 가치를 가볍게 볼 수도 없다.
기록은 기억을 붙잡아 두고, 기억은 역사를 만든다.
오웰의 경고가 오늘에도 유효한 이유다.
역사를 지키는 일은 특정 인물을 미화하거나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좋든 싫든 과거의 기록을 남기고, 후대가 그것을 자유롭게 읽고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과거를 지우면 현재의 판단도 흔들리고, 현재가 과거를 함부로 바꾸면 미래 세대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역사는 권력의 기억이 아니라 모두의 기록이어야 한다.
그것이 한 아버지가 딸에게 남긴 한 통의 편지와, 한 작가가 《1984》를 통해 남긴 경고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공통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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