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전승민 기자] 빛을 이용해 살아 있는 뇌의 특정 신경세포를 정밀하게 켜고 끌 수 있는 ‘광유전학(optogenetics)’을 개척한 과학자들이 202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위원회는 칼 다이서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페터 헤게만 독일 훔볼트대 교수, 게오르크 나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교수를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5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들 3인의 연구자는 빛에 반응해 세포막의 이온 통로를 여닫는 ‘광개폐성 이온 채널(light-gated ion channels)’을 발견하고 이를 신경세포 제어에 적용해 광유전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광유전학의 가장 큰 의미는, ‘살아 있는 뇌에서 특정 신경세포의 역할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기존 신경과학에서는 특정 뇌 부위가 기억이나 감정, 운동 등에 관여한다는 사실 정도만 관찰할 수 있었다. 해부학적 접근인 셈이다. 그러나 이 방법만으로는 해당 영역에 존재하는 어떤 신경세포가 실제 행동을 만들어내는지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광유전학을 적용하면 특정 신경세포에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발현시킨 뒤 빛을 비춰 해당 세포만 선택적으로 활성화하거나 억제할 수 있다. 즉 사람을 포함해 동물의 신경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녹조류 연구에서 시작
광 유전학은 빛을 향해 움직이는 단세포 녹조류를 연구하면서 시작됐다. ‘헤게만’과 ‘나겔’은 ‘클라미도모나스 라인하르티(Chlamydomonas reinhardtii)’란 이름의 녹조류가 빛을 감지하고 이동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이 녹조류는 세포 표면에 있는 빛 감지 시스템을 이용해 빛의 방향을 판단하고 편모를 움직여 빛을 향해 헤엄치는 특성이 있는데, ‘빛에 반응하는 어떠한 채널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험 결과 연구진은, 단백질 가운데 빛에 의해 직접 열리고 닫히는 ‘채널로돕신(channelrhodopsin)’을 찾아냈다. 2000년대 초 규명된 채널로돕신은 특정 파장의 빛을 받으면 세포막에 이온이 통과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전기적 신호를 발생시키는 단백질이다. 채널로돕신은 다시 채널로돕신-1(ChR1)과 채널로돕신-2(ChR2)로 구분되는데, ChR1은 약 500㎚(나노미터) 파장의 빛에 반응하며 주로 수소 이온에 반응한다. 반면 ChR2는 약 460~490㎚ 파장에 반응해 나트륨·칼슘·칼륨 등 양이온을 통과시키는 특성을 갖는다.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이전까지 알려진 미생물 로돕신과 작동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디터 외스터헬트’와 ‘발터 스토케니우스’도 세균 속에서 ‘박테리오로돕신’ 등을 발견한 바 있다. 이 경우 빛을 이용해 특정 이온을 세포막 밖이나 안으로 옮기는 ‘이온 펌프’였다. 반면 채널로돕신은 빛이 들어오면 통로 자체가 열리면서 세포막 안팎의 전기화학적 농도 차이에 따라 여러 이온이 빠르게 이동한다. 즉 ‘빛을 쬐어 주면 세포속 이온 농도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원리’를 찾아낸 셈이다.
◇빛으로 신경 제어 성공
다이서로스 교수는 헤게만과 나겔의 연구결과를 접하고 이를 '신경세포'에 적용했다. 신경과학자 ‘에드워드 보이든’ 등과 함께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신경세포에 전달하고, 청색광을 비춰 신경세포의 활동을 유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05년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광유전학은 현대 신경과학의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로 빠르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채널로돕신은 복잡한 화학적 신호전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빛에 의해 직접 작동하기 때문에 기존 방식보다 훨씬 빠른 제어가 가능하다. 빛을 짧은 펄스로 조사하면 신경세포의 발화 여부를 밀리초 단위로 조절하는 것도 가능했다. 2007년에는 살아 있는 생쥐의 뇌에서 특정 신경세포를 빛으로 조절하는 데 성공하면서, 실험실 수준의 기술이 살아 있는 동물의 신경회로 연구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광유전학이 등장하기 전에도 빛으로 신경세포를 제어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2002년 게로 미젠뵈크는 동물의 로돕신을 신경세포에 도입해 빛으로 신경세포의 기능을 조절하는 데 성공하며 개념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여러 신호전달 단계를 거쳐야 해 반응 속도가 느리고 여러 구성 요소가 필요했다. 채널로돕신의 발견과 다이서로스 연구진의 적용은 이러한 한계를 크게 낮추면서 광유전학을 실용적인 신경과학 도구로 발전시켰다.
◇신경 하나하나의 기능까지 확인
광유전학이 신경과학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상관관계’에서 ‘인과관계’로 연구의 중심을 이동시킨 것이다. 과거에는 특정 신경세포가 특정 행동을 할 때 함께 활성화되는지를 관찰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광유전학을 이용하면 특정 세포만 골라 활성화한 뒤 동물의 행동이 실제로 변화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해당 세포를 억제했을 때 행동이 사라지는지도 실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억, 감정, 보상, 운동, 의사결정 등 복잡한 뇌 기능을 구성하는 신경회로를 세포 단위에서 분석할 수 있게 됐다. 특정 신경세포를 선택적으로 자극하거나 억제하면서 뇌의 어느 회로가 어떤 행동을 만들어내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파킨슨병 연구는 광유전학의 이러한 장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파킨슨병 환자의 운동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는 뇌심부자극술(DBS)은 특정 뇌 부위에 전극을 삽입해 고주파 전기자극을 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전기자극은 주변의 신경세포체와 축색돌기, 흥분성·억제성 신경세포 등을 함께 자극하기 때문에 어떤 신경회로가 실제 치료 효과를 만들어내는지는 오랫동안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다이서로스 연구팀은 광유전학을 이용해 이 문제를 분리해서 살펴봤다. 특정 부위의 신경세포체만 자극하는 경우와 다른 뇌 영역에서 들어오는 축색돌기를 선택적으로 자극하는 경우를 비교한 결과, DBS와 유사한 운동 개선 효과가 특정 구심성 신경회로의 자극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기자극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웠던 뇌 회로의 역할을 세포 유형과 연결 경로별로 분해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은 파킨슨병뿐 아니라 우울증, 중독, 불안장애 등 다양한 신경·정신질환의 회로를 이해하는 연구로 확대됐다. 질환을 단순히 특정 뇌 부위의 문제로 보는 데서 벗어나 어떤 신경세포와 연결망의 이상이 증상을 만들어내는지를 파악하는 데 광유전학이 활용되고 있다.
◇실명환자 시각 회복도 노린다
관련 기술은 의학 및 생명과학 분야 연구에 혁신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신경세포에 흡수가 더 잘 되는 빛의 파장을 찾기 시작했으며, 유전자 편집을 통해 빛에 더 잘 반응하는 단백질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기술을 통해 뇌 조직 깊숙한 곳에 빛을 전달하려는 노력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기초 신경과학을 넘어 인간 질환 치료 기술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대표적 분야가 망막색소변성증(RP)과 같은 유전성 망막질환이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빛을 감지하는 간상세포와 원추세포가 점차 소실되면서 시야가 좁아지고 심한 경우 실명에 이르는 질환이다. 현재 일부 유전자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으나, 대부분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광유전학을 활용, 환자의 눈 속에 남아 있는 망막 신경세포를 빛을 감지하는 세포로 바꾸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프랑스 제약기업 ‘젠사이트 바이오로직스’는 신약후보 물질 ‘GS030’을 이같은 원리에 의해 개발 중이다. 말기 망막색소변성증 환자가 횡단보도 선이나 테이블 위 물체 등을 구분하는 등 부분적인 시각 기능을 회복할 가능성이 확인됐다. 미국 ‘나노스코프 테라퓨틱스’도 비슷한 원리의 ‘MCO-010’을 개발하고 있다. 제시된 임상 결과에서는 일부 환자에서 시력표상 의미 있는 수준의 시력 개선이 관찰되면서 광유전학 기반 시력복원 치료의 임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빛 넘어 초음파 방식 나올까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이용해 살아 있는 신경세포 하나하나를 선택적으로 조절한다는 발상은 이제 기억과 감정, 행동을 연구하는 기본적인 실험 도구가 됐다. 동시에 파킨슨병과 같은 뇌질환의 신경회로를 규명하고 시각장애 환자의 시력을 회복하려는 임상 기술로도 발전하고 있다.
광유전학도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뇌 연구에서는 빛을 원하는 위치까지 전달하는 어려운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뇌 속 깊이 빛을 전달하라면 빛을 전달할 광섬유 등을 찔러 넣어야 하는데, 이는 뇌 조직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을 전달할 때 열이 발생해 세포 조직의 변성을 가져올 수 있는 점도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더 적은 양의 빛으로 반응하는 고감도 신경전달 방식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또 빛 대신 초음파 등 다른 에너지원으로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소노제네틱스(sonogenetics)’와 같은 기술도 광유전학의 한계를 보완할 차세대 신경조절 방법으로 연구되고 있다.
페르 스베닝손 노벨 생리의학위원회 위원장은 “광유전학이 과거에는 꿈꾸기 어려웠던 방식으로 뇌를 지도화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노벨위원회 역시 “세 수상자의 연구가 신경과학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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