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보혁갈등과 영화배우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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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보혁갈등과 영화배우 수난

경기일보 2026-10-05 19:30:29 신고

강효상 한국고용복지연금연구원 이사장
강효상 한국고용복지연금연구원 이사장

 

추석 연휴 첫날 한국 영화 ‘암살자(들)’을 봤다. 여러 영화 중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감독(허진호)은 잘 몰랐지만 출연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했다.

 

영화에서 8·15 저격 사건을 목격하고 의문점을 수사하는 형사에 유해진, 사건의 진상을 취재하는 신문기자에는 박해일과 이민호가 등장한다. 여기에 심은경, 박정민, 정우성, 박해준, 박지환, 박성훈, 엄지원, 신현빈 등 주연급 배우들이 조연이나 카메오로 대거 출연한다. 이들이 한 영화에서 펼치는 스토리는 어떨지 기대하며 극장에 들어섰다.

 

영화 서두에 뜬 안내 자막도 이례적이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고만 소개했다. 통상 실화를 소재로 하더라도 ‘극적 구성을 위해 각색된 허구’라는 취지의 안내가 나오지만, 이 문구는 관객에게 영화가 사실에 상당 부분 충실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영화는 초반 1974년 8·15 저격 사건의 의혹들을 하나하나 부각시키는 데 꽤 성공한 듯했다. 범인이 사건 당일 비표 없이도 제지받지 않고 식장에 입장한 점, 그가 제압당한 뒤에도 총소리가 울린 점, 발사된 탄환을 전부 수거하지 못한 점 등 비상식적인 일들을 풀어나갔다.

 

그러나 중반부터는 드러난 의혹에 대한 논리적인 전개보다 형사와 신문기자들이 겪는 허구의 사건과 상상력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의혹 위에 픽션을 입혀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기획과 청와대 경호실의 공모 내지는 묵인으로 일어난 것처럼 묘사한다. 특히 일본에 취재하러 간 신문기자가 백주대낮 오사카 시내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될 위기에 처한 일본인 안내인을 구출하는 장면은 몰입을 깨뜨렸다.

 

후반부에는 사건 자체의 의혹보다 이를 취재·보도하려는 신문기자들을 중앙정보부가 탄압하면서 벌어지는 자유언론 투쟁으로 방향이 바뀐다.

 

물론 박정희 유신정권이 당시 혹독한 언론 탄압을 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974년 10월 동아일보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은 서울대생들의 시위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편집국장 등이 정보기관에 연행된 데 따른 저항이었다. 8·15 저격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음에도 두 사건을 연결한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 아닌가.

 

이쯤부터는 허구와 논리적 비약을 동원해 감독이 어떤 결론으로 몰아가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50여년 전 사건의 진상을 잘 모르는 관객에게 8·15 저격 사건이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박정희 정권이 꾸며낸 자작극일 수 있다는 의심을 품게 하는 방향으로 묘사돼 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의 영구차를 붙들고 통곡하는 실제 다큐 영상까지 등장하면서 감독이 이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혼란스러웠다.

 

안타까운 것은 출연 배우들이다. 제작사와 감독, 작가 등이 보수단체로부터 고발된 데 이어 배우들은 광고 중단 요구와 불매운동, SNS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추천사를 올린 다른 배우들에게까지 비판이 이어졌고, 주연 유해진은 국민의힘 한 의원으로부터 ‘북한상’이라는 인신공격까지 받았다.

 

보수정권에서는 소위 ‘애국영화’가, 진보정권에서는 그 반대 경향의 영화가 우후죽순 등장하는 현상은 우리 영화계가 돌아볼 대목이다.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정치적·이념적 갈등에 소모되고 수모를 겪는 현실 역시 모두가 한 번쯤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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