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고등법원은 유승준이 주LA총영사를 상대로 낸 세 번째 비자 발급 거부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유승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승소하고도 입국을 거부당해 세 번째 소송까지 온 상황이다.
핵심 요약
① 2일 서울고등법원은 유승준이 주LA총영사를 상대로 낸 비자 발급 거부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유승준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② 법원은 비자 거부로 얻는 공익보다 개인의 불이익이 지나치게 커 비례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③ 24년간 이어진 국가의 입국 금지 조치가 오히려 대중의 관심을 연장하고 있어 이제는 소모적인 에너지 낭비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6년 10월 2일, 서울고등법원은 유승준이 주LA총영사를 상대로 낸 세 번째 비자 발급 거부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유승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이기고도 입국을 거부당해 세 번째 소송까지 온, 진풍경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24년 묵은 감정 장막을 걷어내고 이 사안을 해부해 볼 필요가 있다. 유승준에 대한 역사적, 도덕적 팩트 체크는 이미 국민의 마음속에서 끝났다. 문제는 "비판을 24년 동안이나 국가 권력을 동원한 입국 금지라는 형태로 유지하는 것이 과연 지금도 법적으로 비례하고 실익이 있느냐”는 행정의 영역이다.
정부는 그가 비자를 받아 입국하면 장병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청소년들이 병역의무를 경시할 것이라고 핏대를 세운다. 2026년 항소심에서도 그를 “병역 기피의 아이콘”이라 칭하며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트랜서핑의 역설이 발생한다. 국가가 유승준이라는 존재를 대중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게 단단히 박제해 주는 가장 훌륭한 방부제가, 바로 이 지독한 입국 제한 조치라는 사실이다.
만약 진작에 빗장을 툭 풀어줬다면 어땠을까. 사건은 어느 시점에서 “2002년에 얄미운 짓 했던 옛날 가수의 씁쓸한 귀국” 정도로 맹숭맹숭하게 소진됐을 것이다. 그가 한국에 와서 춤을 추든, 사과를 하든, 대중이 표를 사줄지, 방송국이 그를 섭외할지는 시장과 사회의 몫이다.
요즘 10대, 20대 청소년들이 50줄에 접어든 그를 보고 “와, 나도 군대 가지 말고 저 아저씨처럼 훌륭하게(?) 돼야지!”라고 결심할까. 십중팔구 “저 근육질 틱톡커는 누군데 자꾸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우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한데 국가가 기를 쓰고 막아선 덕분에 이 촌극은 끝나지 않는다. 2015년 비자 신청, 거부, 소송, 대법원 승소, 재거부, 또 소송, 대법원 승소, 또또 거부, 또또또 소송. 숨 막히는 다람쥐 쳇바퀴 덕분에 이제 대중의 관심은 ‘2002년 병역 기피’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이겼는데 왜 국가가 고집을 부려 한 사람을 못 들어오게 하느냐”는 전혀 새로운 장르의 활극으로 옮겨갔다.
24년 전 사건의 펜듈럼이 ‘국가 vs 핍박받는 개인’이라는 새로운 에너지를 마시며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오랜 기간 막아왔다는 관성 자체가 미래에도 계속 막아야 한다는 독립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다.
1심과 오늘 2심 법원이 거듭해서 “비자 거부로 얻는 공익보다 유승준이 받는 불이익이 지나치게 커 비례원칙에 어긋난다”고 제동을 건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2년의 사회적 분노가 2026년의 미래 위험을 영원히 입증하는 부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 법원이 유승준의 손을 들어줬다고 해서 내일 당장 그가 인천공항 게이트를 걸어 나오는 입국 프리패스가 발급된 건 아니다. 소송은 주LA총영사의 ‘비자 발급 거부’를 다투는 것이고, 이와 별개로 법무부의 ‘입국 금지 해제’라는 행정 절차는 또 다른 차원의 빗장으로 남아 있다. 상고 여부 등 후속 절차도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트랜서핑의 관점에서 볼 때, 결론을 내려야 한다.
유승준에게 문을 열어주는 게 그의 2002년을 용서하자는 것일까. 24년 동안 국가와 사회가 쓸데없이 퍼부어온 에너지의 공급 스위치를 툭, 하고 끊어버리는 일이다. 문을 여는 순간, 거대했던 사회적 펜듈럼은 극적으로 힘을 잃을 것이다. 그는 대중의 무관심 또는 차가운 평가 앞에 맨몸으로 서야 하는 한 명의 자연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실 이쯤되면 유승준의 입국시도를 '뚝심', 국가의 거부를 '집착' 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24년이면, 눈 아픈 형광 핑크색 집도 자연의 순리대로 빛이 바래도록 내버려 둘 때가 한참 지났다.
☞트랜서핑(Transurfing): 러시아 물리학자 바딤 젤란드가 창안한 개념으로 어떤 대상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집착할수록 오히려 원하지 않는 결과를 끌어당기게 된다는 원리를 뜻한다.
☞비례원칙: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목적과 수단 사이에 합리적인 비례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헌법상 원칙을 말한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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