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나는 자리마다 숨을 쉬듯 움직이는 옷. 이세이 미야케의 2027 봄과 여름.
공기를 불어넣다, ‘마’에서 시작된 이야기
지난 10월 2일(현지 시간), 파리에서 이세이 미야케의 2027 S/S 컬렉션 ‘마의 형상(Figure of Ma)’이 공개됐습니다. 쇼의 티저에는 껌 속으로 공기가 차오르는 모습과, 피아노 선율에 맞춰 바람에 자유롭게 흩날리는 흰 천, 그리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춤을 추듯 몸을 움직이는 한 사람의 모습이 담겼는데요. 공기를 머금고, 바람에 흩날리고, 숨을 쉬는 듯한 움직임의 세 장면은 이번 쇼가 지닌 자유로운 호흡의 리듬을 먼저 보여주었습니다. 2019년부터 하우스를 이끌어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토시 콘도가 이 호흡의 리듬을 보여주기 위해 주목한 것은 ‘마(間)’. 사물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비어 있지만 의미 있는 공간(여백)을 상징하는 ‘마’는 일본의 미학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죠. 그리고 이번 쇼에서의 이 비어 있는 공간은 다름 아닌 신체와 의상을 가르는 여백이 되어 여유로이 무대 위로 펼쳐졌습니다.
바람을 머금은 이세이 미야케의 2027 S/S
런웨이의 시작은 티저 영상 속 리듬과 같은, 어둠 속 무용수들의 몸짓으로 열렸습니다. 무용수들은 하나의 부드럽고 긴 천을 가지고 몸이 연결된 듯 유기적으로 얽히며 어둠 속에서 등장했죠. 마침내 긴 천이 양옆으로 넓게 퍼지고, 공기가 가득 찬 동그란 구의 형태를 만들거나 바닥과의 사이에 공간을 두며 자유로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사이에서 무용수들은 공기에 몸을 맡긴 듯 유연하게 흔들렸고요. 현대무용수이자 안무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테스 펠커(Tess Voelker)가 이끈 이세이미야케의 이번 오프닝 공연은 ‘마’라는 개념과 한 몸처럼 어우러져, 여백이 지닌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장면들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고요하고 유동적인 흐름에서 시작된 쇼는 잉크를 쏟은 것만 같은 비비드한 블루 탑과 흐르는 듯한 실루엣의 팬츠가 등장하며 본격적인 막을 올렸습니다. 신체에 밀착된 듯한 느낌의 이 블루 탑은 석고 붕대에서 영감을 받아 조형적이고 입체감 있게 완성되었죠. 이어서 깃털만큼 가벼운 소재들과 유연한 실루엣의 의상들이 차례대로 나타나 모델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듯한 움직임을 만들어냈는데요. 여러 겹의 러플 패널들로 바람의 섬세한 결을 표현한 볼륨감 있는 트렌치코트, 전체에 플리츠와 드레이프가 잡혀 있어 빛이 일렁이는 듯한 시각적 리듬을 주는 드레스, 그리고 천을 몸 앞에 대고 바람을 그대로 맞은 듯한 독특한 사각형 형태의 스커트나 케이프가 뒤따랐습니다. 여기에 라벤더, 틸 그린, 소프트 핑크, 코발트 블루, 레드, 머스타드 등 이세이미야케가 전개해오던 생동감 넘치는 컬러 팔레트들이 다채로움을 더했고요. 마지막에는 풍성한 실루엣이 공기를 머금어 더욱 극적으로 마무리된 롱코트들이 줄지어 쇼의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화려한 기교나 자극적인 연출 대신, 오직 형태와 소재의 본질에 집중한 담백한 무대였죠.
신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위하여
이세이 미야케의 이번 2027 S/S, ‘마’의 형상은 단순한 한 시즌의 컬렉션을 넘어, 옷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신체를 가두는 구조물이 아니라, 신체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옷을 대하는 방식이었죠. 데뷔 이래 천과 신체, 움직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온 이세이 미야케의 유산과도 깊이 맞닿아 있는 비전이었습니다. 껌 속에 차오르던 공기처럼, 바람에 흩날리던 흰 천처럼 파리 패션위크 한복판에서 불어온 이 신선한 숨이 다음 계절을 향한 기대를 더욱 차오르게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