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포커스] ‘한국적인 흰색’은 어떻게 만들어졌나...1975년 도쿄화랑에서 다시 보는 백색의 역사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N포커스] ‘한국적인 흰색’은 어떻게 만들어졌나...1975년 도쿄화랑에서 다시 보는 백색의 역사

뉴스컬처 2026-10-03 16:19:37 신고

3줄요약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한국미술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색이 있다. 흰색이다. 백의, 백자, 한지 등 전통문화의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흰색은 어느 순간 한국인의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색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국의 흰색’이라는 인식이 처음부터 한국 사회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백색은 시대마다 다른 이름과 의미를 얻었다. 조선을 바라본 외부인의 기록에서는 생활문화와 미감의 특징으로 묘사됐고, 근대 이후에는 조선의 미술과 문화를 설명하는 하나의 관점이 됐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 활용됐으며, 1970년대에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묶는 미학적 개념으로까지 확장됐다.

따라서 한국미술의 백색을 이해하려면 작품에 등장하는 흰색만 살펴서는 부족하다. 어떤 사람들이 흰색을 한국적인 것으로 설명했는지, 그 설명이 어떤 시대에 받아들여졌는지, 그리고 실제 작가들은 그 이름 아래에서 어떤 작업을 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기획전 ‘백색, 가장 가까운 흰색’은 이 문제를 1975년 일본 도쿄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으로부터 풀어낸다. 오는 7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 전시회의 역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백색이라는 개념이 한국미술 안에서 형성된 과정을 자료로 추적한다.

'백색, 가장 가까운 흰색' 展 포스터. 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백색, 가장 가까운 흰색' 展 포스터. 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1975년 도쿄화랑에는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이동엽, 허황이 참여했다. 다섯 작가는 각기 다른 작업을 해왔지만 당시 전시는 이들을 ‘흰색’이라는 공통된 기준으로 묶었다. ‘다섯 가지 흰색’이라는 제목 자체가 당시 한국 현대미술을 바라보던 하나의 시선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들 다섯 작가가 모두 같은 이유로 흰색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전시명 아래 묶였지만 작가들의 작업 방식과 관심은 서로 달랐다. 백색이라는 미술사적 명칭은 이들을 함께 설명하는 틀을 제공하는 동시에 개별 작업의 차이를 가릴 가능성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는 백색 담론이 지닌 특징과도 맞닿아 있다. 하나의 색을 한국미술의 고유한 미감으로 규정하면 작품을 이해하기 쉬워지는 반면, 그 명칭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작가 개인의 선택과 작업의 배경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릴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 부분을 작품과 기록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으로 살핀다.

백색에 관한 기록은 1975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부터 존재한다. 전시에서는 야나기 무네요시, 최남선, 윤희순, 최순우, 이일 등 15명의 자료가 공개된다. 1908년 최남선이 창간한 ‘소년’ 창간호,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과 그 예술’(1922), 윤희순의 ‘조선미술사연구’(1946) 등이 포함된다.

자료들이 보여주는 것은 흰색이라는 색채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의 시선이다. 근대의 기록에서 조선의 생활과 미술을 바라보는 방식은 시대적 조건에 따라 달라졌고, 이후 한국미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백색은 여러 의미를 얻었다. 백색은 고정된 미적 가치라기보다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 문화적 개념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특히 해방 이후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설명하려는 논의에서 백색은 중요한 소재가 됐다. 한국적인 미감을 찾으려는 미술계의 움직임 속에서 전통문화와 흰색의 관계가 다시 주목받았고, 이러한 인식은 1970년대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1975년 도쿄화랑의 전시는 그 결과가 국제적인 전시 형태로 나타난 사례다. 국내 미술계에서 축적된 한국미술에 대한 인식이 일본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다섯 작가의 작품과 함께 제시됐다. ‘한국 5인의 작가’라는 이름과 ‘다섯 가지 흰색’이라는 제목은 작가와 색을 동시에 전면에 내세웠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사진=한국관광공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사진=한국관광공사

전시는 이때의 기록을 다시 펼친다. 이동엽과 허황의 미공개 작품을 비롯해 당시 참여 작가들의 자료가 공개되며, 서승원과 허황의 인터뷰 영상도 선보인다. 당시 작가들의 사진과 서명, 권영우가 장정을 맡은 잡지 ‘시문학’, 박서보의 전시 자료, 이동엽의 작업실 사진 등도 포함된다.

이 자료들은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들을 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한다. 전시장에서 완성된 작품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작업실과 사진, 인터뷰, 인쇄물 같은 기록을 통해 당시 작가들이 어떤 환경에서 작업했는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백색’이라는 하나의 명칭으로 정리된 미술사를 작가 개인의 기록으로 다시 세분화하는 방식이다.

이우환과 미술평론가 이일의 자료도 이러한 접근을 보여준다. 이우환이 직접 번역한 이일의 ‘백색은 생각한다’(1975) 일문 원고와 이우환이 이일에게 남긴 미공개 첨언이 공개된다. 한 시대의 미술 담론이 어떤 기록으로 남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전시는 ‘백색의 기억, 지난날의 기록’과 ‘가까운 흰색, 지금 다시 기록하다’로 나뉜다. 앞부분에서는 190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백색을 바라본 문헌을 살펴보고, 뒷부분에서는 1975년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과 아카이브를 통해 당시의 개별적인 작업을 들여다본다.

조선시대 백의와 다듬이질 문화를 다룬 영상 자료도 함께 공개된다. 미술 작품에 나타난 흰색만이 아니라 의복과 생활문화 속에서 사용된 흰색까지 살펴보면서, 오늘날 한국미술에서 말하는 백색이 어떤 문화적 이미지와 연결돼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가 다루는 대상은 ‘흰색’이라는 색 하나에 머물지 않는다. 흰색을 한국적인 미감으로 설명해온 기록과 그 기록을 만들어낸 사람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소개된 작가들의 실제 작업을 함께 들여다보는 데 의미가 있다.

1975년 도쿄화랑에서 다섯 작가를 묶었던 ‘다섯 가지 흰색’은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50여 년이 지난 현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그 이름을 다시 불러오면서 당시의 해석만 반복하지 않는다. 작품과 문헌, 인터뷰와 사진을 나란히 놓고 백색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미술사와 그 안에서 각자의 작업을 이어간 작가들을 함께 보여준다.

‘백색, 가장 가까운 흰색’은 결국 한국미술에서 익숙하게 사용돼온 ‘백색’이라는 말을 다시 들여다보는 자리다. 무엇이 한국적인 흰색으로 불려왔는지, 그 이름 아래 어떤 작가와 기록이 존재했는지를 확인하면서 백색을 둘러싼 미술사의 의미를 새롭게 읽어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