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1444년 2월 20일 밤, 경복궁 강녕전. 하루 종일 이어진 논쟁이 끝났지만 세종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새 글자를 두고 신하들이 거센 반대의 목소리를 냈고, 결국 일곱 명의 신하가 의금부에 갇혔다. 조선의 임금은 그날 밤 홀로 남아 자신의 뜻을 되짚었다.
‘AI 드라마-부활수업’이 그날의 세종을 불러낸다. 오는 4일 방송되는 ‘세종 이도’ 편은 훈민정음을 만든 성군이라는 익숙한 이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결정을 둘러싸고 신하들과 맞서야 했던 한 임금의 하루를 따라간다.
세종이 마주한 것은 단순한 반대 의견이 아니었다.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신하들은 새 글자 창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새 문자를 사용하는 일이 기존의 학문과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임금이 직접 만든 글자를 놓고 신하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셈이다.
세종의 분노는 결국 행동으로 이어졌다. 반대 상소를 올린 신하들을 의금부에 가두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다. 왕과 신하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관계가 새로운 문자를 둘러싸고 팽팽하게 맞선 순간이었다.
하지만 강녕전에 혼자 남은 세종에게 남은 것은 분노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왜 새로운 글자를 만들려고 했는지 설명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가 바라본 조선에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이 많았다.
법과 제도가 있어도 글을 모르면 내용을 알기 어려웠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었다. 임금이 백성을 위해 마련한 정책조차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제대로 닿기 어려웠다.
세종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삼강행실도’를 펴냈지만 그림을 곁들인 책만으로 모든 사람에게 뜻을 전하기는 어려웠다. 글을 읽을 수 없는 백성에게는 책 자체가 또 하나의 벽이었다.
새 문자를 만들려 했던 이유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어려운 한자를 익히지 않아도 자신의 뜻을 적고 다른 사람의 말을 읽을 수 있는 글자. 배우기 어렵지 않고, 일상의 소리와 생각을 적을 수 있는 글자였다.
그러나 세종이 처음부터 신하들의 반대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새로운 문자는 기존 질서에 익숙한 이들에게 낯선 변화였다. 오랜 시간 이어져온 문자 생활을 뒤흔드는 일이었고, 임금이 직접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도 신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종은 물러서지 않았다. 백성이 글을 알게 되는 일이 학문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 길이라고 봤다. 글을 아는 사람만 나라의 법과 도리를 이해하는 사회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날 밤의 세종은 그래서 두 얼굴을 가진 임금으로 남는다. 반대하는 신하들을 옥에 가둘 만큼 격노했던 군왕이면서, 백성이 글을 몰라 겪는 어려움을 오래 마음에 두었던 창제자였다.
‘세종, 너희가 정음(正音)을 아느냐’라는 부제처럼 이번 이야기는 훈민정음의 탄생을 위대한 업적 하나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새로운 글자를 만들기까지 세종이 마주했던 반대와 갈등, 그리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를 따라간다.
세종에게 백성은 명령을 받아야 하는 존재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뜻을 말하고 세상의 이치를 배울 수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문자 역시 일부 학자만의 지식으로 남아서는 안 됐다.
그래서 훈민정음은 글자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임금이 백성에게 내려주는 지식이 아니라 백성이 스스로 읽고 쓰며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마련한 문자였다. 세종이 신하들의 반대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종의 이름과 훈민정음이 함께 기억되는 까닭 역시 그 밤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다. 성군이라는 이름 뒤에는 신하들의 반대에 격노하고, 자신의 뜻을 끝까지 설명해야 했던 한 사람의 시간이 있었다.
‘AI 드라마-부활수업’은 그 시간을 따라간다. 기록 속 갑자상소와 훈민정음 창제, ‘삼강행실도’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1444년 2월 20일 밤의 세종을 그린다. 신하 일곱을 옥에 가둔 뒤 강녕전에 남은 임금이 끝내 백성을 위한 글자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이 이번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AI로 살아난 세종 이도 편은 4일 밤 11시 EBS1에서 방송된다. 훈민정음이라는 위대한 이름에 가려져 있던 한밤의 분노와 고민, 그리고 백성을 향했던 세종의 마음이 이야기를 통해 다시 펼쳐진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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