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해지면서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던 검은 니트와 검은 면바지를 다시 꺼내 입는 때다. 그런데 작년까지 멀쩡하게 입던 옷을 꺼내 밝은 데서 보면 검정이 검정 같지 않고 희끗하게 떠 보이는 경우가 있다. 햇빛 아래로 나갈수록 회색에 가깝게 보여서 입고 나가기가 망설여진다.
이럴 때는 대개 검은 옷 전용 세제를 사 보거나, 세탁소에 염색을 맡길지 아예 새로 살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세제를 바꿔 다시 빨아도 마르고 나면 희끗한 기운은 그대로이고, 염색은 한 벌에 드는 값이 만만치 않아 결국 옷장 안쪽으로 다시 밀어 넣게 된다.
색이 바랜 검은 면 옷은 김이 빠져 버리려던 맥주 한 컵이면 20분 만에 눈에 띄게 진해진다. 마시기에는 밍밍해진 맥주라도 옷감에 쓰는 데는 아무 상관이 없다.
몇 번 빨지도 않은 검은 면 옷이 희끗해지는 이유
검은 면 옷이 희끗해지는 것은 염료가 빠져서만은 아니다. 세탁기 안에서 옷끼리 부딪히고 비벼지는 동안 섬유 표면이 거칠어지고 잔털이 일어나는데, 거칠어진 표면에 빛이 닿으면 한 방향으로 반사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눈에는 그 흩어진 빛이 흰 기운으로 보인다.
그래서 세제를 좋은 것으로 바꿔 봐도 희끗한 기운은 잘 가시지 않는다. 세제가 하는 일은 옷에 묻은 때를 떼어 내는 것이라서 이미 일어난 섬유 표면까지 정리하지는 못하는데, 오히려 뜨거운 물이나 강한 세탁 코스로 자주 빨수록 표면은 더 거칠어진다.
맥주에 든 홉과 당분은 물에 풀려 섬유 표면에 얇게 남으면서 일어난 결을 가라앉힌다. 표면이 고르게 정리되면 빛이 흩어지지 않고 한 방향으로 반사돼 검정이 다시 진하게 보인다. 손을 대야 할 곳이 염료가 아니라 옷감 표면이라는 뜻이다.
김빠진 맥주로 색 바랜 검은 면 옷 되살리는 방법
준비할 것은 김빠진 맥주와 찬물, 옷이 잠길 만한 대야뿐이다. 비율은 맥주 한 컵에 찬물 두 컵, 1대 2로 맞춘다. 성인 반팔 티셔츠 한 장이면 맥주 300밀리리터에 찬물 600밀리리터 정도가 적당하고, 니트나 바지처럼 두꺼운 옷은 옷이 완전히 잠길 때까지 같은 비율로 양을 늘린다.
먼저 옷을 평소대로 빤다. 손빨래를 하거나 세탁기 약한 코스로 돌리고, 헹굼까지 끝난 옷은 짜지 말고 젖은 상태 그대로 대야로 옮긴다. 마른 옷을 그대로 담그면 물이 고르게 스며들지 않아 부분만 진해져 얼룩처럼 남을 수 있다.
맥주 푼 물에 옷을 완전히 잠기게 넣고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 안쪽까지 스며들게 한 다음 20~30분 그대로 둔다. 물은 반드시 찬물을 쓰는데, 더운물을 쓰면 남아 있던 염료가 더 빠지고 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중간에 한두 번 눌러 주면 접힌 자리까지 고르게 젖는다.
시간이 지나면 옷을 건져 찬물로 여러 번 헹군다. 한두 번 헹궈서는 맥주 냄새가 남으니, 헹군 물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 때까지 물을 갈아 가며 헹구는 것이 좋다. 그다음 비틀어 짜지 말고 손으로 눌러 물기를 뺀 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널어 말린다. 햇빛이 바로 드는 자리에 널면 색이 다시 바랜다.
흰 무늬가 들어갔거나 다른 색이 섞인 옷은 밑단 안쪽에 맥주 물을 조금 묻혀 색이 번지지 않는지 먼저 보고 담그는 것이 안전하다. 울이나 캐시미어 니트는 물에 오래 담가 두면 줄어들 수 있어 면이나 면 혼방 옷에만 쓴다. 매번 빨 때마다 할 일은 아니고, 검정이 희끗해 보일 때 한 번씩이면 충분하다.
버리려던 맥주가 남았다면 옷장에서 가장 희끗해진 검은 옷 한 벌부터 담가 보길 권한다. 아직 멀쩡한 옷을 색 하나 때문에 못 입고 두는 일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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