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오웬스가 외치는 힘과 해방의 메시지.
물 위를 가로지른 비현실적인 행렬
릭 오웬스(Rick Owens)가 그리는 천사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난 10월 1일(현지 시간),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의 수면 위로 길게 뻗은 철제 런웨이에서 릭 오웬스의 2027 S/S 컬렉션 ‘STONE’이 공개됐습니다. 런웨이 양옆으로 분수가 높이 솟구치는 가운데, 모델들은 길게 늘어진 옷자락을 끌며 물 위를 천천히 가로질렀죠. 이번 시즌 브랜드 특유의 기묘하고 낯선 분위기는 옷뿐만 아니라 얼굴 위로도 옮겨 왔습니다. 눈 주위를 사방으로 감싼 기다란 속눈썹과 핑크빛 아이 메이크업, 눈의 흰자까지 검게 물들인 렌즈가 만나 기이하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인상을 만들었죠. 여기에 블론드와 블랙으로 나뉜 헤어까지 더해지며 어둡고 기묘한 동화 속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초현실적인 분위기까지 감돌았습니다.
돌에서 태어난 음산한 천사
이번 컬렉션에서 ‘돌’은 그저 무겁고 단단한 물질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우아한 절제, 예수의 부활과 함께 무덤 앞에서 치워진 돌이 상징하는 해방,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 돌을 던지는 행위에 담긴 편견과 배척에 대한 저항을 함께 품고 있었죠. 런웨이 역시 단단하게 버티는 힘에서 출발해 그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며 자유의 순간으로 나아갔는데요. 쇼의 시작을 알린 건 바닥까지 곧게 떨어지는 긴 드레스. 릭 오웬스는 화물 상자를 운반할 때 사용하는 두꺼운 나일론 웨빙 스트랩을 힘 있는 더블 뒤셰스 원단으로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몸선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는 일반적인 드레스와 달리, 옷 자체가 각을 유지하며 떨어져 마치 단단한 기둥을 세운 듯한 실루엣을 완성했죠. 이는 지난 시즌 강인한 전사를 떠올리게 했던 실루엣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바닥을 쓸 듯 길게 떨어지는 로브와 어깨 위로 날개처럼 벌어진 뾰족한 칼라가 단단한 형태에 묘한 가벼움을 더하며 어딘가 음산한 천사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죠.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간 소재
쇼가 이어지자 뻣뻣하게 서 있던 드레스에도 조금씩 공기가 스며들었습니다. 얇은 패러슈트 실크로 제작된 드레스는 모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넓은 옷자락이 바람을 받아 둥글게 부풀었다가 금세 가라앉았는데요. 단단하게 굳어 있던 초반의 실루엣이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한 듯했습니다. 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죠. 지난 남성복 컬렉션에서 레더와 고무로 단단하게 세운 뼈대를 이번에는 튤과 탄성이 있는 끈으로 감싸, 몸 밖으로 크게 부풀어 오른 구조마저도 부드러워 보이게 했거든요. 한 벌을 완성하는 데 약 45시간을 들인 밀푀유 재킷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재활용 나일론 튤을 수천 장 잘라 이어 붙여 제작된 피스로, 완성된 모습은 복잡한 제작 과정이 무색할 만큼 깃털처럼 가볍게 나부꼈습니다.
여기에 러프한 데님과 레더는 런웨이에 다시 한번 묵직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는데요. 자연스럽게 바랜 듯한 데님은 긴 튜닉과 팬츠, 재킷으로 다시 태어났고, 천연 왁스를 바른 얇은 램스킨은 열을 받아 매끈한 광택을 띠었죠. 이렇듯 단단하고 유연한 소재를 오가는 사이, 런웨이 곳곳에 등장한 펜타그램은 이번 시즌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비췄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별 모티프를 사회의 고정관념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맞서는 작은 저항의 심볼로 사용해 온 릭 오웬스. 그는 이번 컬렉션에서도 저지 드레스와 이어링에 펜타그램을 새겨 넣으며 자신이 오랫동안 이어온 저항의 메시지를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버티는 힘은 남겨두되, 그 단단함이 누군가를 밀어내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기를 바라는 태도까지 함께 담긴 셈이죠. 돌처럼 버티되 돌처럼 굳어버리지는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릭 오웬스가 말하는 새로운 강인함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