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리에 반센이 제안하는 로맨틱한 옷을 매일 즐기는 방법.
특별한 드레스를 위한 평범한 하루
별다른 약속이 없어도 근사하게 차려 입고 집을 나서고 싶은 날이 있죠. 이번 시즌 세실리에 반센(Cecilie Bahnsen)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옷장 속에 아껴두는 대신, 매일의 옷차림 위로 끌어들였습니다. 지난 10월 1일(현지 시간),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공개된 2027 S/S 컬렉션 이름은 ‘애니 기븐 데이(Any Given Day)’. ‘어느 날이든’이라는 제목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 평범하고도 특별한 매일을 채울 룩이 런웨이 곳곳에 피어났습니다. 거리에서 쇼장 안으로 걸어 들어온 모델들은 관객 앞을 지나 다시 바깥으로 향했는데요. 런웨이의 마지막 걸음이 마치 일상으로 향하는 첫걸음처럼 이어졌죠. 지난 시즌 무용수의 움직임을 살폈던 세실리에 반센은 이번에는 드레스와 데님, 실크 티셔츠, 워크웨어까지 아우르며 한결 가볍고 자유로운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로맨티시즘
풍성한 드레스만큼 세실리에 반센의 로맨틱한 세계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옷이 또 있을까요? 이번 시즌 주목해야 할 것은 드레스의 달라진 윤곽입니다. 둥글게 퍼지던 볼륨을 덜어내는 대신 길고 슬림하게 떨어지는 실루엣을 내세웠거든요.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에 꽃 자수를 섬세하게 놓으며 브랜드 특유의 사랑스러움까지 놓치지 않았고요. 새로운 시도는 소재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로맨틱한 소재라면 누구보다 익숙할 세실리에 반센답게 레이스 위로 비즈와 스팽글을 촘촘히 수놓아 은은한 반짝임을 만들었죠. 여기에 자카드 패턴을 유연하게 풀어내는가 하면, 초기 컬렉션부터 즐겨 사용해온 필 쿠페(Fil Coupé)도 다시 손봤는데요. 필 쿠페는 무늬를 짠 뒤 표면에 남은 실을 잘라 입체적인 결을 만드는 직물입니다. 이번에는 촘촘했던 짜임의 무게를 덜어 풍부한 질감은 남겨둔 채 옷이 몸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만들었죠. 가느다란 어깨끈이 달린 실크 드레스는 풍성한 볼륨 없이도 세실리에 반센다운 낭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실루엣
세실리에 반센의 런웨이에서 빠지면 아쉬울 풍성한 실루엣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드레이핑 기법을 끌어와 천을 주름 잡고 겹치며 입체적인 실루엣을 만들었죠. 앞쪽은 볼륨을 한껏 모으고 뒤는 날렵하게 떨어뜨리며 하나의 드레스 안에서도 서로 다른 형태가 이어지도록 했고요. 치마 양옆을 넓히는 파니에와 치맛자락을 둥글게 받치는 크리놀린도 등장했습니다. 끈을 당기고 풀어 원하는 만큼 부피를 덜어낼 수도 있었죠. 재킷 역시 허리선을 조절하는 끈으로 꼭 맞게 조이거나 느슨하게 풀어 원하는 모양으로 입을 수 있었고요. 세실리에 반센은 이번 시즌 정해진 모양 그대로 입는 지루함을 벗어던지고, 원하는 모습에 따라 자유롭게 손볼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데님과 손잡은 드레스
드레스의 풍성한 실루엣만큼 눈길을 사로잡은 건 치맛자락 사이로 불쑥 모습을 드러낸 인디고 청바지. 매끄러운 실크와 반짝이는 장식들 사이에서 드레스의 우아한 분위기를 한결 산뜻하게 바꿔놓았는데요. 모델들은 이 낯선 조합이 익숙하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고 편안하게 걸었습니다. 후드 티셔츠는 꽃 자수가 피어난 바람막이와 만났고, 브라 톱은 티셔츠와 스커트 사이에서 뜻밖의 짝을 찾았죠. 잠옷을 떠올리게 하는 실크는 밤을 벗어나 한낮의 거리로 나왔고요. 스니커즈 옆면마저 반짝이는 스팽글을 둘러 일상복과 드레스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시도를 발끝으로도 이어갔습니다.
편안한 옷에는 섬세한 장식을 얹고, 우아한 옷에는 데님과 스포츠웨어의 여유를 빌려온 세실리에 반센.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헤어와 흉터와 점을 감추지 않은 내추럴한 메이크업에서도 이번 컬렉션의 자유로운 태도가 엿보였는데요. 헝클어진 머리카락에도 개의치 않고,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는 것. 이보다 세실리에 반센과 어울리는 장면이 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