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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이재명 대통령이 1일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4시간 동안 만찬을 함께했습니다. 명분은 최근 퇴원한 정 전 대표에 대한 위로였고 메뉴는 전복죽이었습니다. 전복죽 한 그릇을 비우는 데 4시간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두 사람이 “다양한 국정 현안 및 당내 사안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습니다.
병문안 자리에 ‘당내 사안’이라는 말이 붙었고 사의를 표명한 뒤 거취가 정해지지 않은 강훈식 비서실장까지 배석했습니다. 일부에서 ‘독대’라고 했지만 엄밀하게는 3인 회동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고, ‘보안’에 철저한 정 전 대표의 성향상 쉽게 흘러나올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여권을 흔드는 웬만한 현안은 두루 식탁에 올랐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상대가 이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정청래라는 점과 4시간이라는 적잖은 물리적 분량입니다. 정 전 대표는 지난 8·17 전당대회에서 친명계가 결집한 김민석 현 대표와 치열한 계파전쟁을 치렀고 이 대통령에게도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대표적인 ‘반명 인사’로 분류됩니다.
그는 최종 45.92%를 얻었고 서울·경기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김 대표와의 격차가 0.38%포인트에 불과했습니다. 이 수치를 민주당의 절반이 정 전 대표를 지지한다고 단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과 친명계가 당내 다른 흐름을 무시한 채 독자적으로 국정을 끌고 가기 어렵다는 사실만큼은 보여줬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이 대통령은 여권 강경파가 거세게 반대해온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안을 재가했습니다. ‘친윤 검사’ 논란으로 추가 검증까지 거친 인사입니다. 이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서도 직접 반박에 나섰습니다.
검사 출신이라고 다 버리자면 박은정 의원도, 임은정 검사장도, 이성윤 의원도 설 자리가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고 “검찰개혁의 목표가 검찰에 대한 복수를 하자거나 검찰을 망가뜨리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했습니다. 만찬에서 김 후보자 문제가 실제로 논의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권의 최대 갈등 현안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가 오갔을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한 손으로는 반대 진영의 핵심 인사에게 전복죽 그릇을 내밀고, 다른 손으로는 그들이 반대하는 인사를 밀어붙인 하루였습니다. 두 장면이 하나의 정치적 기획이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향후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생각해볼 단초는 됩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여권 내 합리적인 친문 세력과 강경파를 분리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비판 세력을 ‘친문 강경파’라는 한 묶음으로 상대할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을 나눠 대응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친문’의 뿌리 가운데 하나가 2019년 ‘서초동’에 있다고 봅니다. 검찰개혁을 문재인 정부가 끝내 완수하지 못한 숙제로 여기고 그 완성을 민주당 정권의 중요한 존재 이유로 받아들이는 정치적 정서입니다. 사람의 계보가 아니라 ‘정서의 계보’인 셈입니다. 문제는 이 정서를 하나의 묶음으로 상대할 때 발생합니다. 전부 달래면 대통령의 판단이 특정 지지층의 요구에 묶이고 전부와 싸우면 지지 기반을 스스로 적으로 돌리게 됩니다.
정치에서 가장 어리석은 싸움 가운데 하나는 흩어져 있는 상대를 하나로 뭉쳐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친문 강경파’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순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까지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한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묶음을 풀어야 합니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만찬을 ‘유시민 고립 작전’의 본격화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검찰개혁을 두고 대통령을 향한 비판 수위를 높여온 유시민 작가의 영향력을, 정 전 대표를 끌어안는 것으로 차단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유시민=정청래’로 이어지는 반명 세력의 구심점을 둘 사이의 차단과 이격을 통해 따로 대응할 경우 그 응집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 있습니다.
또한 두 사람은 서 있는 자리가 다릅니다. 정 전 대표는 현역 정치인입니다.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아야 하고 그 뒤의 정치도 남아 있습니다. 대통령과 주고받을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유시민 작가는 정계를 떠난 지 오래고 공천과도 거리가 멉니다. 대통령이 줄 것도 빼앗을 것도 없습니다.
이 대통령이 ‘정청래-유시민 연합군’을 동시에 대적하기에는 힘이 부치는 게 사실입니다. 친문계의 양대 세력을 따로 떼 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특정인을 직접 겨냥해 고립시키려 하면 오히려 그 사람을 중심으로 지지층이 다시 뭉칠 수 있습니다. 유시민을 직접 공격할수록 유시민의 정치적 영향력만 키워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풀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검찰개혁에 강경한 쪽과 온건한 쪽으로 나누는 것은 위험합니다. 검찰개혁의 후퇴를 우려하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까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주장의 강도를 기준으로 선을 그으면 대통령이 자기 지지층 한복판에 금을 긋는 꼴이 됩니다.
그 선은 ‘입장’이 아니라 ‘방식’에 그어야 합니다. 조국혁신당은 자신들이 문제 삼는 것이 김 후보자의 출신이 아니라 과거 행적과 ‘검찰주의’라고 반박했습니다. 뼈아프지만 논점이 있는 비판입니다.
필자가 말하는 ‘합리적 세력’은 대통령에게 마냥 우호적이거나 온건한 집단이 아닙니다.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만 합리적이고 반대하는 사람은 강경파라는 뜻도 아닙니다. 대통령과 생각이 달라도 사실과 제도를 근거로 비판하고 자신의 요구와 다른 결정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곧바로 ‘배신’이나 ‘변절’로 규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여기서 말하는 강경파 역시 억지 주장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검찰개혁을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 노선만을 유일한 개혁으로 규정하고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을 모조리 배신자로 몰아가는 배타적인 정치입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로 편을 가르는 정치가 아닙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도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정치적 파트너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시사타파TV가 한 예입니다. 조국 사태 당시 서초동 촛불집회를 주도한 개국본에서 출발한 진보 유튜브 채널입니다. 이종원 대표가 김지용 후보자 인선을 비판하는 것 자체는 정치적 의견의 영역입니다. 문제는 그 주변의 언어입니다. 뉴탐사는 전당대회 전후 이 채널 방송 17회의 채팅창에서 이 대통령을 겨냥한 ‘처단’ 31건, ‘탄핵’ 47건 등 제거·처벌 표현 169건을 확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탐사가 이 대표와 갈등 관계인 매체이고 시청자의 글이 곧 이 대표의 주장은 아니라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지지해 탄생시킨 대통령을 향한 ‘처단’과 ‘탄핵’까지 검찰개혁의 이름으로 용인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진보진영 내에서 나옵니다.
지금도 일부 강경 유튜브 채널들은 이 대통령에 대해 정치비판이라는 이름으로 비관적인 전망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할 정도로 그 비판은 도를 넘고 있습니다.
사실 같은 진영에서도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이슈에 따라 분리 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비판 자세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유시민 작가와 일부 장외 강경 유튜버들은 ‘이재명’ 하면 일단 까고 봅니다.
그 어떤 논리적 배경이나 합리적인 논거가 있는 게 아니고 무조건 반대에 가깝습니다. 친문이라고 해도 이 대통령에게 무조건 비난만 퍼붓는 일부 스피커들에게 동조를 하지 않는 세력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강경파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최악의 선택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그들을 공격하면 오히려 흩어져 있던 지지층이 ‘탄압받는 개혁세력’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뭉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즘 일부 강경 유튜버를 보면 권위주의 독재 시대 때 대정부 투쟁 선언을 하는 것처럼 공격적이고 투쟁적입니다.
이제 대안은 합리적인 세력이 스스로 강경한 정치와 거리를 두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대통령도 이들에게 손에 쥘 것을 줘야 합니다. 강온 양면 전략의 다음 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사에서는 물러서지 않되 보완수사와 공조수사의 범위 같은 제도 설계에서는 비판 진영과 협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대통령이 고르되 제도는 함께 짜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인사권을 행사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은 제도 설계에서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관철시키는 정치적 교환입니다. 그러면 타협 자체를 거부하는 세력에는 점점 ‘배신’이라는 말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현재 ‘반명계’의 결집과 공격력은 제어가 힘들 정도로 거셉니다. 윤석열 정권 치하의 강도는 아니지만 갈수록 공세가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반명계’의 집중 화력을 견디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결국 상대의 전력을 분산, 약화시키고 일정 수준의 계파 협력과 권력 균점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강경파 공세-지지율 약화-국정 동력 추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봅니다.
정청래 전 대표의 정치적 쓸모도 바로 이 지점에서 생깁니다. 그는 강경 지지층의 정서를 이해하면서 대통령과 직접 조율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를 굳이 ‘합리파’ 또는 ‘강경파’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분류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어느 한쪽에 완전히 속하지 않기 때문에 활용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친문 분할 작전’은 친문을 억지로 갈라놓는 정치공작이 아닙니다. 원래부터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적으로 만들지 않는 정치입니다. 친문 전체를 적으로 돌리면 친문은 하나가 됩니다.
그 가운데에는 이 대통령과 끝까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을 것이고 특정 사안에서는 반대하지만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그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입니다.
전복죽은 센 불에 끓이면 눌어붙습니다. 그렇다고 젓지 않고 내버려 두면 덩어리집니다. 약한 불에서 오래 저어야 쌀알이 풀립니다. ‘친문’이라는 묶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싸워야 할 정치와 설득해야 할 정치를 구별해야 합니다.
비판하는 사람과 적대하는 사람도 구별해야 합니다. 4시간은 전복죽 한 그릇을 먹기에 지나치게 긴 시간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엉켜온 정치적 묶음 하나를 풀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정청래와 마주한 그날 식탁에서 진보진영의 오랜 혼란과 분열로 쌓인 체증을 내려줄 달콤한 디저트가 마지막에 나왔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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