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발생한 서울 압구정 한양아파트 화재 원인이 밝혀졌다. 당초 의심받았던 로봇청소기가 아닌 벽체 내부 콘센트에서 시작된 불이었다.
지난 7월 2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하파트 5층의 한 세대에서 화재가 발생해 검게 그을려 있다. / 뉴스1
2일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화재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소방 화재조사팀은 압구정 한양아파트 화재 원인을 '트래킹에 의한 단락'으로 최종 판단했다.
트래킹은 전기가 통하지 않아야 할 절연물 표면에 습기나 먼지 등 이물질이 붙으면서 미세한 누설전류가 흐르고 표면이 점차 탄화돼 전류가 흐르는 통로가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고열과 불꽃방전이 발생하면 주변 가연물에 불이 붙어 화재로 번질 수 있다.
로봇청소기 옆에서 불났지만…실제 발화점은 벽 안쪽
화재 당시에는 로봇청소기가 원인일 가능성이 먼저 제기됐다. 최초 목격자인 가사도우미는 주방에서 청소하던 중 이상한 소리를 듣고 안방으로 가보니 로봇청소기 주변에 불이 붙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로봇청소기는 2023년부터 사용된 제품이었다. 센서 고장으로 수리를 받은 이력은 있었지만 충전 문제나 배터리 교체 이력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화재 당시 충전 기기는 벽에 붙은 채 전원이 들어와 있었고 불이 꺼진 뒤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바닥과 융착된 상태로 발견됐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충전 기기 자체에서는 화재의 원인으로 볼 만한 전기적 특이점이 나오지 않았다. 단자와 퓨즈뿐 아니라 전원선, 통신선, 모터 등에서도 이상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소방 조사팀은 불에 탄 흔적도 비교했다. 로봇청소기 충전 기기 주변 목재보다 벽체 안쪽 목재 지지대의 연소 흔적이 훨씬 강하게 나타났다. 조사팀은 국과수 감정 결과와 현장 연소 패턴 등을 종합해 로봇청소기 발화 가능성을 배제했다.
발코니 확장 뒤 만들어진 폐쇄 공간…습기까지 겹쳤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소방당국이 최종적으로 지목한 곳은 안방 우수관과 전기배선 등이 지나가는 벽체 내부 공간이었다. 해당 세대는 인테리어 과정에서 발코니를 확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원래 발코니에 있던 우수관과 전기배선 등을 가리기 위해 가벽을 세웠고 이 과정에서 내부에 폐쇄된 공간이 형성됐다.
발화 원인으로 지목된 노출형 콘센트도 이 공간 안쪽에 설치돼 있었다. 인터넷 모뎀 등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벽 안으로 넣어둔 구조였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화재감정연구센터가 이 콘센트를 분석한 결과 인입·접지 단자에서 전기적 고열로 녹은 흔적이 발견됐다. 센터는 외부에서 불길이 덮쳐서는 이 같은 형태의 용융흔이 생기기 어렵다고 보고 콘센트 주변에서 트래킹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당시 날씨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화재 발생 전까지 장맛비가 이어졌고 화재 당일에도 습도가 높았다. 우수관 주변에 습기나 결로가 생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상태에서 벽체 안쪽의 먼지와 이물질이 함께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사팀은 "우수관 주변 습기·결로와 공간 내부 분진·이물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콘센트 절연물 표면의 누설 전류 발생 및 트래킹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불이 벽 안쪽에서 시작돼 외부에서 곧바로 알아채기 어려웠던 점도 화재가 커지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봤다.
스프링클러 없었지만 인명피해는 없어
지난 7월 2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하파트 5층의 한 세대에서 화재가 발생해 검게 그을려 있다. / 뉴스1
불은 지난 7월 21일 오전 10시 27분께 압구정 한양아파트 한 세대에서 발생했다. 주민 20여 명이 스스로 대피했고 일부 주민은 출동한 소방대원에게 구조됐다. 불은 약 1시간 30분 뒤 완전히 꺼졌으며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1978년 준공된 이 아파트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당시 해당 세대 거주자가 집을 비운 상태였지만 경비원이 복도를 뛰어다니며 각 세대 현관문을 두드려 주민들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고 대피를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
눈에 안 보여 더 위험한 콘센트…이렇게 관리해야
이번 화재처럼 콘센트 주변에 습기와 먼지가 쌓이면 겉으로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여도 내부에서 트래킹이 진행될 수 있다. 특히 싱크대나 베란다, 우수관 주변처럼 습기가 생기기 쉬운 곳이나 가구·가벽에 가려 통풍이 잘되지 않는 공간에 설치된 콘센트는 평소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소비자원도 습기와 먼지가 전기제품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느슨한 콘센트나 손상된 플러그·전원선을 사용하지 말고 플러그를 끝까지 꽂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콘센트가 헐거워 플러그가 쉽게 빠지거나 꽂았을 때 흔들린다면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플러그와 콘센트의 접촉이 불완전하면 접촉 부위에 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콘센트 주변이 누렇게 또는 검게 변했거나 플라스틱이 녹은 흔적이 있을 때, 사용 중 평소보다 뜨겁게 느껴지거나 탄 냄새가 날 때도 이상 신호로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계속 사용하거나 임의로 분해하지 말고 전원 사용을 중단한 뒤 전기설비 점검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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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관리도 중요하다. 사용하지 않는 콘센트와 멀티탭 주변에 먼지가 오래 쌓이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청소할 때는 전원을 차단한 상태에서 물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콘센트가 가구 뒤나 벽체 안쪽에 숨어 있으면 청소와 육안 점검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인테리어 과정에서 콘센트나 전기배선을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 가두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습기가 잦은 장소에서는 플러그와 전선 주변에 물기가 맺히지 않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먼지가 많이 쌓인 콘센트를 청소할 때는 먼저 해당 구역의 차단기를 내려 전원을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 플러그가 꽂혀 있다면 모두 뺀 뒤 마른 천이나 부드러운 솔로 콘센트 겉면의 먼지를 털어낸다. 좁은 가장자리와 틈에 낀 먼지는 마른 면봉을 이용해 가볍게 닦을 수 있다. 다만 면봉이나 다른 도구를 콘센트 구멍 안쪽 깊숙이 넣어 청소해서는 안 된다.
먼지가 많다면 진공청소기의 약한 흡입력을 이용해 콘센트 주변 먼지를 빨아들이는 방법도 있다. 물티슈나 젖은 천, 세정제를 직접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내부에 수분이 남으면 오히려 누설전류나 트래킹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를 마친 뒤에도 습기나 물기가 전혀 없는지 확인하고 차단기를 다시 올려야 한다. 콘센트 주변이 검게 변했거나 녹은 흔적, 탄 냄새, 헐거움이 발견되면 직접 청소해 계속 사용하기보다 전기 전문가에게 점검을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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