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한 영웅들의 승리 이후, 다음 세대의 삶은 계속된다. 1989~1990년 소설로 출간된 ‘기동전사 건담’의 외전인 ‘기동전사 건담: 섬광의 하사웨이’는 2021년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해 일본에서 22억 3000만 엔의 흥행을 기록했고, 2026년 개봉한 후속편 ‘키르케의 마녀’ 역시 전편을 넘어서는 성과를 거뒀다. 40년 가까이 된 이야기가 다시 호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경은 ‘역습의 샤아’ 12년 뒤다. 전쟁 후에도 지구연방의 부패는 계속되어 특권층만 지구에 남고, 평범한 이들은 ‘인간 사냥’ 단속으로 우주로 쫓겨난다. 이에 맞서 고위 관료를 암살하는 조직 마프티의 지도자가 하사웨이 노아다.
기술은 발전했으나 삶의 가능성은 닫힌 역설이 오늘의 청년과 맞닿아 있다. 일터 근처에 집을 얻고 미래를 계획하는 평범한 소망이 도달하기 힘든 목표가 된 현실에서, 불평등은 통장 잔고를 넘어 미래를 상상할 여유의 차이로 나타난다. 누군가는 10년 뒤를 준비하지만, 누군가는 다음 달을 견디는 데 모든 힘을 쓴다.
하사웨이의 출신은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1년 전쟁의 영웅인 브라이트 노아의 아들이 아버지가 지킨 질서에 총을 겨누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가 지켜낸 세계와 자녀 세대가 살아갈 세계는 다를 수 있으며, 과거의 성취만으로는 다음 세대의 불안을 설명할 수 없다.
또 다른 접점은 무력감이다. 잘못된 점을 알아도 바꿀 길이 보이지 않는다. 노력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돼야 노력하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그렇다고 작품이 폭력을 해답으로 건네지는 않는다. 부패를 향한 분노가 타당하더라도 암살의 정당성은 별개다. 구하겠다는 목적만으로 타인의 생명을 재판할 권리는 생기지 않는다.
마프티의 이상에도 모순이 존재한다. 지구 환경 보호라는 거대 이상에 밀려, 정작 평범한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는 과정은 후순위가 된다.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일과 눈앞의 개인을 존중하는 일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하사웨이는 영웅보다 외면하기 어려운 청년에 가깝다. 부조리를 알아보지만 자신의 모순까진 해결하지는 못한 인물이다. 부당함을 알면서도 생계 때문에 견디고, 변화를 바라면서도 잃을 것을 걱정하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그 모순을 곧바로 위선으로 단정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삶이 보인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하라는 격려나 참으라는 훈계가 아니다. 말하면 들어주고, 참여하면 달라지며,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경험이다. 사회가 감당할 일을 개인의 용기와 희생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청년에게 세상을 구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그들이 살아갈 자리가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청춘은 잠시 타오르고 사라질 섬광이 아니라, 그들의 자리에서 오래, 평범하게, 때로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컬처인컬처’(Culture in Culture)는 문화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문화를 성찰해 그 연결 고리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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