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류석만 기자] 무너질 듯 방치된 농촌 빈집과 대규모 송전망 건설에 따른 지역 부담을 놓고 부여군이 충남 15개 시·군의 공동 대응을 공식 제안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농촌지역 빈집이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안전사고와 범죄 우려를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과, 국가 전력망 확충 과정에서 특정 지역에 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광역 차원의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용우 부여군수는 지난 30일 홍성군 에덴힐스 힐링파크에서 열린 민선 9기 1차 년도 제1차 충청남도시장·군수협의회에서 ‘농촌지역 위험 빈집정비를 위한 제도 개선’과 ‘(가칭) 충남 송전탑 공동대응기구 구성’ 등 2건의 현안을 공식 건의했다.
이 군수는 농촌지역의 인구감소와 고령화, 국가 전력망 확충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개별 시·군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충남 15개 시·군이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빈집은 방치할수록 위험”… 농촌 현실에 맞는 정비 절차 필요
첫 번째 현안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농촌지역 위험 빈집 문제’다.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지속되면서 농촌지역에는 사람이 떠난 뒤 장기간 방치되는 빈집이 늘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미관 훼손에 그치지 않는다.
관리되지 않은 빈집은 건축물 붕괴에 따른 안전사고 위험은 물론 청소년 범죄나 각종 사회문제의 공간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어 지역 주민들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철거 과정에서는 농촌지역의 현실과 맞지 않는 일률적인 행정절차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부여군의 설명이다.
현행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건축물 해체 신고를 할 경우 해체계획서를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 건축사 또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기술사가 검토해야 한다.
■ 해체계획서만 최대 200만원… “소규모 농촌 빈집에 과도한 부담”
부여군이 문제로 지적한 것은 ‘절차와 비용의 현실성’이다.
농촌지역 빈집의 상당수는 소규모 단독주택이고, 주변 건축물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도시지역의 건축물과 동일한 기준과 절차가 적용되면서 빈집 철거를 추진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여군에 따르면 해체계획서 작성 등에 드는 비용은 약 50만원에서 200만원 수준으로, 빈집 소유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철거해야 할 빈집이 있어도 비용과 절차 때문에 정비가 지연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부여군 “철거계획 확정된 빈집은 절차 간소화해야”
부여군은 농촌지역 현실에 맞는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농어촌정비법」에 따른 빈집정비계획 가운데 철거계획이 수립된 주택에 대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담당 공무원이 해체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건축물관리법」을 개정해 달라’고 건의했다.
또 인접 건축물이 없어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되는 농촌지역 빈집에 대해서는 별도의 가이드라인이나 시·군 조례를 통해 관련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 줄 것도 제안했다.
핵심은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가 아니라 건축물의 규모와 주변 환경, 안전성 등을 고려해 위험도가 낮은 농촌 빈집에는 현실적인 행정절차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 두 번째 현안은 ‘송전탑’… 충남 곳곳서 전력망 건설 추진
부여군이 동시에 꺼내든 또 하나의 현안은 ‘대규모 송전망 건설에 따른 지역 부담 문제’다.
국가 전력수요 증가와 재생에너지 확대 등에 따라 현재 충남을 경과하는 ‘12개 송전망 건설사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부여군의 설명이다.
국가 차원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송전망 확충이 필요한 가운데, 실제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에서는 토지 이용 제한과 경관 훼손, 주민 생활환경 변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 차원의 대응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시·군별 대응만으로는 한계”… 충남 공동대응기구 제안
부여군은 현재 한국전력공사 중부건설본부가 도내 송전망별로 입지선정위원회를 개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송전선로 노선과 주민 의견을 광역 차원에서 조정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충청남도와 관련 시·군이 참여하는 ‘충남 송전탑 공동대응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개별 시·군이 각각 대응할 경우 지역별 이해관계가 분산될 수 있는 만큼, 충남 차원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주민 의견을 모아 국가 전력망 정책에 지역의 요구를 전달할 수 있는 공동 창구를 만들자는 취지다.
■ “전력은 생산지역에서 소비”… 에너지 지산지소 원칙도 제시
부여군은 단순히 송전선로 건설을 반대하는 차원의 대응이 아니라 ‘국가 전력망 확충과 지역발전을 연계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에 부담만 떠넘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에너지 지산지소 원칙과 지방소멸 대응, 지역발전 전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가 전체의 전력망 안정이라는 목표와 송전선로 경과지역 주민들의 부담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충남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빈집과 송전탑… 서로 다른 문제지만 핵심은 ‘지역의 부담’
이번 부여군의 두 건의는 겉으로는 전혀 다른 현안처럼 보인다.
하나는 사람이 빠져나간 농촌에 남겨진 ‘위험 빈집’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산업과 에너지 정책에 따라 지역에 들어서는 ‘대규모 송전망’이다.
그러나 두 현안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부담과 위험을 개별 지자체가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빈집 문제는 지방소멸과 고령화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고, 송전망 문제 역시 국가적 에너지 정책과 지역 주민의 생활환경이 맞물린 사안이다.
부여군이 두 현안을 충남 전체의 공동 의제로 끌어올린 이유다.
■ 이용우 군수 “충남이 함께 고민하고 대응해야”
이용우 부여군수는 “농촌의 위험 빈집 문제나 대규모 송전망 건설 문제는 어느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충남이 함께 고민하고 대응해야 하는 공동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농촌 현실에 맞는 제도 개선을 통해 주민들의 부담을 덜고, 국가 전력망 확충 과정에서도 지역의 목소리와 발전 방안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충남 시·군과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지방소멸·안전·에너지’ 세 마리 토끼… 충남 공동 대응 시험대
이번 제안은 단순한 제도 개선 요구를 넘어 지방소멸 시대에 지방정부가 중앙정부 정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방치된 빈집을 신속하게 정비해 주민 안전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국가 전력망 확충에 따른 지역의 부담을 줄이고 지역발전의 기회로 연결하는 것은 모두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다.
부여군의 제안이 충남 15개 시·군의 공동 의제로 확산될 경우 빈집 정비제도 개선과 송전망 건설에 대한 지역 대응체계 마련을 둘러싼 논의도 한층 구체화될 전망이다.
‘무너지는 빈집’과 ‘늘어나는 송전탑’
부여군이 던진 두 가지 화두가 충남의 지방소멸·주민안전·에너지 문제를 관통하는 새로운 공동 대응 의제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