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찬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에너지 투자 사업 계획을 공개하면서 국내 에너지 기업들의 미국 인프라 시장 진입 기회도 구체화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스터빈과 원전 주기기 공급망을,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지분과 도입권을 기반으로 대형 프로젝트 참여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2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주요 에너지 인프라 사업으로는 6GW 규모 가스발전 설비와 대형 원전 8기,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 건설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는 원전 8기 건설에 1200억달러,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소에 220억달러가 투입된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는 500억달러가 넘는 금액이 투자될 예정이다.
앞서 한국 정부가 대미 전략투자 가운데 첫 사업으로 확정한 것은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다. 총사업비는 약 223억달러 규모로 6.4GW급 발전설비를 구축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미국 내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사업이다.
문제는 원전과 알래스카 LNG 사업의 구체적인 확정 여부다. 특히 알래스카 LNG를 두고 한미 양국의 입장에 온도차가 명확한 상황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대미투자 관련 브리핑에서 미국 측이 양국 합의보다 나아간 내용을 발표했다며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에게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한미가 공동 팩트시트에 담은 알래스카 LNG 관련 합의는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 요건 충족을 전제로 한 검토 착수와 한국 기업의 참여 지원, LNG 구매계약 및 우선 접근권 부여 등으로, 구체적인 투자액이나 사업 확정을 담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핵심은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LNG 사업 인허가와 인력 확보 등 사업성 개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한국 정부 역시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확인한 뒤 현지 실사를 진행해 상업성을 따진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에너지 인프라 사업이 현실화하면 국내에서 가장 폭넓은 사업 기회가 예상되는 기업은 두산에너빌리티다. 두산에너빌리티는 1호 사업인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와 2호 사업인 원전 8기에 모두 연결될 수 있어서다.
가스발전에서는 대형 가스터빈 공급 역량이 핵심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미 미국에서 가스터빈 공급 실적을 확보하며 현지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엔시날 프로젝트가 실제 발주로 이어질 경우 발전소 핵심 기자재인 가스터빈 공급을 통해 미국 대형 가스발전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가스복합화력발전은 글로벌 가스터빈 업체들과의 경쟁을 거쳐야 하는 만큼 실제 공급망 진입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엔시날 프로젝트 역시 구체적인 발주 물량과 공급 일정 등이 확정되지 않았다.
원전은 가스발전보다 상대적으로 사업 기회가 큰 분야로 꼽힌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한국형 APR1400의 주기기 제작사로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핵심 기자재 제작 역량을 갖추고 있다. 동시에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전 공급망에도 참여하고 있어 미국 측이 검토 중인 원전 8기 가운데 어떤 노형이 채택되더라도 사업 기회를 확보할 여지가 있다.
현재 논의되는 원전 8기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와 한국형 APR1400 2기를 건설하는 방안이다. 계획대로면 미국에 한국형 APR1400이 처음 건설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다만 원전 사업 역시 발주와 사업 구조가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와 관련한 한미 간 협상도 진행 중인 만큼 실제 두산에너빌리티가 확보할 수 있는 공급 물량과 금액 역시 향후 협상 결과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얻을 기회의 핵심은 이번 투자 계획 자체보다 미국이 추진하는 대규모 에너지 인프라 사업에서 실제 기자재 공급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알래스카 LNG 사업에서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상대적으로 앞선 위치에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미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지분 약 3.5%를 확보한 상태다. 지난해 미국 에너지 기업 글렌파른과 연간 100만톤 규모의 알래스카 LNG를 20년간 공급받는 내용의 예비계약도 체결했다. 알래스카 LNG 사업이 실제 투자 단계로 넘어갈 경우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기존에 확보한 지분과 LNG 도입권을 바탕으로 사업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미국 알래스카 북부 노스슬로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약 1300㎞ 길이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남부 니키스키로 운송한 뒤 액화해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전체 사업비가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만큼 사업이 현실화할 경우 LNG 개발부터 운송·도입까지 국내 에너지 기업들의 참여 기회도 커질 수 있다.
특히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번 프로젝트가 실제 투자로 이어질 경우 기존 지분의 사업 가치가 커지는 동시에 장기 LNG 도입을 통한 에너지 트레이딩 사업 확대도 기대할 수 있다.
변수는 사업의 경제성이다. 한국 정부 역시 대규모 투자에 앞서 사업의 상업성과 수익성을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사업 추진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지만 실제 최종 투자 결정과 국내 기업의 추가 참여 규모는 별도 협상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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