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며칠째 가라앉지 않고 있다. 논란은 영화 자체에서 시작해 리뷰를 남긴 영화평론가 이동진에게까지 번졌다. 이동진은 자신의 블로그에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긴 입장 글을 올렸다. 그는 "그 리뷰에서 제가 했던 평가를 철회하거나 그 평가 자체에 대해 사과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 유튜브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1974년 8월 15일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소재가 된 사건은 실제 역사다.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총을 쐈고, 이 과정에서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다.
논란의 출발점은 영화가 이 사건의 발생 배경과 배후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점이다. 극 중 일부 인물이 당시 박 대통령 측 또는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계획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하는 장면이 있다. 일각에서는 이 장면을 두고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번진 논쟁은 며칠 동안 이어졌다.
비공개로 전환된 리뷰 영상
파장이 커지자 이동진의 리뷰 영상이 비공개로 전환됐다. 유튜브 채널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측은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어 지난달 25일에 업로드한 리뷰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해당 채널에서 영상이 비공개로 전환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동진은 이 영화에 별 5점 만점에 3점을 줬다. 리뷰에서는 "사건의 흐름과 틈새를 밀도 높게 파고든 시선"이라고 호평했다. 영상이 내려가기 전까지 쟁점이 된 대목은 영화 내용을 언급하며 한 발언이었다. 그가 리뷰 중 "단순히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부분이 따로 인용되면서 댓글창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영상 재공개 여부와 시점은 채널 측이 밝히지 않았다. 입장 글에 따르면 이동진은 전날 오후 제작진으로부터 비공개 전환 방침을 연락받았고, 이후 영상이 비공개로 바뀌었다.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이동진이 직접 밝힌 '그 발언'의 맥락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동진은 지난달 30일 오후 자신의 블로그에 입장 글을 올렸다. 핵심은 문제의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이동진은 리뷰에서 '암살자(들)'의 완성도와 장점, 단점에 대해 여러 점을 함께 지적하며 견해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그중 "그냥 음모론 정도로 치부할 수가 없어요"라는 한 대목만 따로 인용되면서 발언의 취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 말을 한 배경으로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발사된 총탄들의 행방과 소재를 둘러싼 의문을 꼽았다. 당시 공식 발표만으로는 선뜻 해소되지 않는 지점들을 영화가 어떻게 다루는지 설명하던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는 설명이다. 영화가 제기하는 모든 가설이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이 육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였다는 주장은 자신의 발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동진은 "그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주장은 이 영화에 대사로든 장면 묘사로든 담겨 있지 않다고 저는 본다"는 취지로 적었다.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 암살의 배후'라는 해석을 떠올리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영화 '암살자(들)' 스틸컷. /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유족 질타에 대한 반박
이동진은 유족이 살아 계신데 어떻게 그런 음모론을 제기할 수 있느냐는 질타에도 입장을 냈다. 그는 해당 비판이 존재하지도 않는 주장을 가정한 뒤 공격하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적었다. 자신이 리뷰에서 논한 것은 영화가 제기하는 의문과 그 의문을 극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며, 특정 인물을 암살의 배후로 단정하는 주장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하지 않은 주장이 자신의 견해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입장 글을 쓴 이유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는 분명하게 남겨두고 싶었다고 밝혔다.
19년 전 '관타나모로 가는 길' 발언과 모순인가
일각에서는 이동진 과거 발언과의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19년 전 다큐멘터리 '관타나모로 가는 길'에 대해 이동진이 했던 말과 해당 발언이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동진은 이 비판에도 답했다. 당시 자신이 지적한 것은 강한 정치적 주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안에서 실제 사건과 배우들의 재연 장면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가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눈앞에서 사실로 보고 있다는 감각에 기반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암살자(들)' 스틸. /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반면 '암살자(들)'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극영화다. 관객도 극화된 이야기라는 점을 인지한 상태에서 영화를 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와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이동진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극영화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는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암살자(들)'도 그런 관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고, 그런 토론은 필요하다고 봤다.
평가 철회나 사과는 없다
입장 글에서 가장 분명한 대목은 평가 유지다. 이동진은 '암살자(들)'에 대해 했던 영화적 판단이 지금도 같다고 밝혔다. 3점이라는 별점과 리뷰의 평가를 철회하거나 평가 자체에 사과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그가 구분한 것은 영화에 대한 평가와 발언의 오해다. 평가는 유지하되, 자신이 하지 않은 주장이 자신의 견해로 알려지는 일은 바로잡겠다는 입장이다.
이동진은 정치적 해석과의 선도 그었다. 영상에서 밝힌 견해는 현재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견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영화를 평하면서 작품에 따라 정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번갈아 비판을 받아왔다고도 적었다.
'암살자(들)' 스틸컷. /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를 보고 논쟁해 달라는 요청
입장 글의 마지막 요청은 논쟁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동진은 이 영화에 대한 논쟁이라면 가능하면 영화 전체를 본 뒤에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리뷰에 대한 비판 역시 전반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했는지를 바탕으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특정한 장면이나 설정에서 다른 함의를 읽어내는 관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도 남겼다. 극 중 일부 인물이 제기하는 가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관객의 해석이 갈릴 수 있다는 취지다.
이동진의 해당 입장 글에는 게시 직후 단시간에 댓글이 1000개 넘게 달렸고, 글의 취지를 두고 찬반이 엇갈리며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다음은 영화 ‘암살자(들)’ 논란 관련해 이동진이 남긴 입장 전문이다.
어제 오후,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제작진으로부터 영화 <암살자(들)>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어 9월 25일 업로드한 리뷰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후 해당 영상은 비공개로 전환됐습니다.
이번 영상에서 저는 <암살자(들)>의 완성도, 장점과 단점에 대해 다양한 점들을 함께 지적하며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제가 말한 "그냥 음모론 정도로 치부할 수가 없어요"라는 한 대목이 따로 인용되면서, 제가 어떤 취지로 그 말을 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그 말을 한 것은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발사된 총탄들의 행방과 소재를 둘러싼 의문을 비롯해, 당시의 공식 발표만으로는 선뜻 해소되지 않는 지점들을 이 영화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영화가 제기하는 모든 가설이 사실이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더불어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였다는 주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특정한 장면이나 설정에서 다른 함의를 읽어내는 관객이 있을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주장은 이 영화에 대사로든 장면 모사로든 담겨 있지 않다고 저는 봅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의 암살 배후'라는 해석을 떠올리기는 어렵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러니 유족 분들이 살아계시는데 어떻게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의 암살 배후'라는 음모론을 제기할 수 있느냐는 질타는, 존재하지도 않는 주장을 가정한 후 공격하는 것이기에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실제로 하지 않은 주장이 제 견해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대해 분명히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리뷰에서 논한 것은 영화가 제기하는 의문과 그 의문을 극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이었으며, 특정 인물을 암살의 배후로 단정하는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19년 전 다큐멘터리 <관타나모로 가는 길>에 대해 제가 했던 말과 이번 발언이 모순된다는 지적도 접했습니다. 당시 제가 지적했던 것은 강한 정치적 주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안에서 실제 사건과 배우들의 재연 장면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직접 눈앞에서 사실로서 보고 있다는 감각에 기반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반면 <암살자(들)>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극영화이며, 관객 역시 그것이 극화된 이야기라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영화를 보게 되기에 다큐멘터리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극영화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는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기에 <암살자(들)> 역시 그런 관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고, 그런 토론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영화에 대한 논쟁이라면 가능하면 영화 전체를 본 뒤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제 리뷰에 대한 비판 역시 전반적으로 제가 어떤 맥락으로 이야기했는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영화를 평하면서 작품에 따라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번갈아가며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이번 영상을 통해 밝힌 제 견해는 현재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제 견해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번 <암살자(들)>에 대해 제가 했던 영화적 판단은 현재도 같습니다. 따라서 그 리뷰에서 제가 했던 평가를 철회하거나 그 평가 자체에 대해 사과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는 분명하게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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