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완벽한 날들] 초상편은 인물의 심연을 포착해 온 서대호 사진작가와 함께 암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과 그 안의 내밀한 이야기를 기록한다. 사진은 두 장의 연작 초상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복합적인 기억과 감정을 바탕으로 그 사람에게 남아 있는 ‘기억의 원형’을 재현한 얼굴이다. 두 번째는 질병 이후 달라진 삶을 지나며 새롭게 발견한 자신, 그리고 렌즈를 통해 비로소 마주하게 된 온전한 ‘자기다움’을 담은 현재의 얼굴이다. 상실과 불안뿐 아니라 새롭게 발견한 생의 기쁨과 지향, 관계와 삶의 태도까지 계속 확장되는 ‘나’의 모습을 조명한다. 두 장의 초상을 통해 각자가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전하고자 한다.
이정아(56)씨에게서는 시린 마음을 데워주는 엄마의 품 같은 따스함이 느껴진다. 뽀얗게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정성스레 만두를 빚고 국수를 삶으며 세 아이를 품어온 세월. 그중에서도 몸이 불편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살아온 그에게 아이들은 언제나 지켜내야 할 약속이자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가장 절실한 이유였다.
그렇기에 불쑥 찾아온 암 앞에서도 쉽게 주저앉을 수 없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선명했고 함께 살아갈 날들이 간절했다. 그러나 두 번의 암을 지나며 그는 아이들 곁을 지키는 일만큼 자신을 돌보는 일도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다. 알록달록 고운 원피스를 입고 렌즈 앞에 서기를 좋아하는 본래의 밝고 사랑스러운 자신을 다시 마주했다. 늘 강해야만 했던 엄마의 자리에서 잠시 내려와 스스로를 끌어안은 그의 미소 앞에서 그 누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억의 초상 앞치마에 묻은 세월, 하늘을 향해 올린 숨
“그때는 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늘 아이들이 먼저였고 저는 맨 마지막이었어요.”
식당을 운영하고 세 아이를 돌보는 이씨의 하루에는 자신을 위한 자리가 좀처럼 없었다. 몸이 불편한 두 아이의 치료와 돌봄까지 챙기다 보면, 지친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일은 늘 마지막으로 밀렸다.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조차 희미해져 갔다.
그 고단한 일상에 암이 찾아왔을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이들이었다. 자신이 사라진 뒤 남겨질 아이들을 생각하면 두려움은 더욱 깊어졌다. 아이들 곁에 더 오래 머물고 싶었기에 아픈 몸으로도 다시 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엄마이기에 아프고 힘든 내색조차 하지 못한 채 참고 또 참으며 애써 웃어 보였다. 그렇게 모든 순서의 맨 마지막에 서서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마주한 것은 서서히 닳아 없어지는 소멸의 그림자뿐이었다.
해방의 초상 나를 품에 안은 순간, 비로소 피어난 찬란한 삶
“이제는 내가 1순위예요.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입고 싶은 것도 입고 살 거예요.”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느라 정작 자신을 향해 팔을 벌려본 적 없던 그 손이, 마침내 스스로의 어깨를 보듬었다. 예쁜 옷을 걸치고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던 본래의 유쾌한 ‘나’를 되찾은 순간, 암이라는 질병의 그림자는 더 이상 그의 내일을 가로막지 못했다.
첫 번째 자궁내막암 수술을 지나 5년 뒤 찾아온 대장암 3기와 여덟 차례의 항암치료까지, 피할 수 없던 시련을 건너오며 삶의 순서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두 번의 암을 이겨낸 뒤 이씨는 마음속 고삐를 완전히 풀었다. 미뤄뒀던 여행을 떠나고, 기타와 우쿠렐레도 배우고 오색빛깔의 원피스로 옷장을 가득 채웠다.
언제 다시 계절이 저물지 장담할 수 없기에 다음 해를 막연히 기다리기보다 지금 눈앞에 도착한 눈부신 오늘을 온 마음에 품어 안는다. 이씨의 티 없는 미소에는 지나온 어둠을 딛고 마침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선 오늘의 찬란함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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