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에 보리차를 한가득 끓여 두고 식구들이 오가며 따라 마시는 집이 많다. 한 번 끓여 두면 이삼 일은 마실 수 있어 번거로움이 덜하고, 물맛도 구수해서 생수 대신 보리차만 마시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다 끓인 주전자는 대개 식탁 한쪽이나 싱크대 위에 그대로 올려 두고, 목이 마를 때마다 컵에 따라 마시게 된다.
팔팔 끓인 물이라 상할 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틀이 지나든 사흘이 지나든 별 고민 없이 따라 마시는데, 맛이 텁텁해지거나 병 입구가 미끈거릴 때쯤에야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버린다. 끓이는 동작 하나로 보관까지 끝났다고 여기는 셈이지만, 실온에 놓인 보리차는 그보다 훨씬 빨리 변한다.
보리차를 안심하고 오래 마시려면 손을 대야 할 곳은 두 군데다. 끓인 뒤 주전자 안에 그대로 남겨 둔 보리알과, 다 식은 물을 어디에 두느냐다. 재료를 더 사거나 끓이는 방법을 바꿀 일은 없고, 이 두 가지만 바꿔도 같은 보리차를 며칠은 더 마실 수 있다.
끓인 보리차가 실온에서 나흘 만에 상하는 이유
보리차가 변하는 출발점은 대부분 주전자에 남아 있는 보리알이다. 보리알이나 티백에는 열에도 살아남는 미생물 포자가 들어 있어서 물이 팔팔 끓는 동안에도 다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물이 미지근해지면 그 안에서 다시 늘어난다. 끓인 뒤에도 건져 내지 않고 계속 담가 두면 물이 상하는 시점이 그만큼 앞당겨진다.
여기에 온도가 더해진다. 25~30도쯤 되는 실온에 끓인 보리차를 그대로 두면 나흘째에 일반세균 수가 1mL당 100CFU를 넘어 먹는 물 기준치를 넘긴다. 나흘이라는 숫자만 보면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실온에서는 몇 시간 만에도 세균이 빠르게 늘기 때문에, 다 식은 물을 반나절 넘게 밖에 두는 것부터 피하는 것이 좋다.
같은 보리차라도 4~5도 냉장실에 넣어 둔 것은 이레가 지나도 세균이 검출되지 않는다. 물을 얼마나 세게 끓였느냐보다 끓인 다음에 어떻게 두느냐가 마실 수 있는 기간을 가른다는 뜻이라서, 손을 대야 할 자리는 끓이는 단계가 아니라 불을 끈 뒤의 몇 분이다.
끓인 보리차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
보리차를 끓일 때는 물이 끓어오른 뒤 불을 줄여 구수한 색이 우러날 때까지 두었다가, 다 우러났으면 곧바로 보리알이나 티백을 체나 국자로 건져 낸다. 불을 끄면서 바로 건져 내는 것을 습관으로 두는 것이 좋고, 티백은 국물을 짜내지 말고 그대로 들어 올려 버린다.
건져 낸 보리차는 뚜껑을 살짝 열어 둔 채로 식힌다. 주전자째 찬물을 받은 개수대에 담가 두면 한 시간 안에 손으로 만질 만큼 식는다. 뜨거운 물을 그대로 냉장실에 넣으면 안에 있던 반찬 온도까지 같이 올라가니, 어느 정도 식힌 다음에 옮기는 것이 안전하다.
미지근해졌으면 뚜껑이 꼭 닫히는 유리병이나 물병에 담아 냉장실에 넣는다. 병은 쓰기 전에 세제로 씻어 물기를 말려 두는 것이 좋은데, 병 안쪽에 물때가 남아 있으면 아무리 깨끗한 물을 담아도 금방 냄새가 난다. 식탁에 두었다가 나중에 옮기지 말고 식은 그 길로 냉장실에 넣는다.
마실 때는 병째 입을 대지 말고 컵에 따라 마시는 것이 좋은데, 입을 댄 자리로 들어간 침 때문에 남은 물까지 빨리 상한다. 냉장 보관이라도 날이 지나면 구수한 맛이 옅어지고 세균이 다시 생길 수 있어, 한 번에 이삼 일 안에 마실 만큼만 끓이고 남은 것은 아깝더라도 버리는 편이 낫다. 물이 뿌옇게 흐려졌거나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면 날짜와 상관없이 마시지 않는다.
보리차는 끓이는 정성보다 불을 끈 뒤의 몇 분이 마실 수 있는 기간을 가르니, 오늘부터는 보리알부터 건져 내고 식자마자 냉장실에 넣어 보길 권한다. 식구들이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는 물이라 그 몇 분을 들일 값어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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