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경찰 고발로까지 번졌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건의 배후에 있었던 것처럼 묘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암살자(들)’ 스틸컷 / 하이브미디어코프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29일 서울경찰청에 허진호 감독과 ‘암살자(들)’ 제작진을 형법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고발 대상에는 영화 연출을 맡은 허진호 감독과 작품 제작에 참여한 관계자들이 포함됐다.
이 전 시의원은 영화가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당시 공식 수사 결과와 다른 가능성을 관객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작품의 제목부터 문제를 제기했다. ‘암살자’가 아니라 ‘암살자(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한 점이 문세광 외에 또 다른 암살 주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전 시의원은 "영화 제목도 '암살자'가 아니라 복수형인 '암살자(들)'로 정해 문세광 외에 다른 암살 주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며 "관객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 배후에 있었거나 범행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문제로 든 부분은 제목에만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 방탄 연설대 교체 장면과 총격을 둘러싼 의문을 제기하는 장면, 정체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인물의 등장 등이 사건에 또 다른 주체가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치라는 것이 고발인 측의 설명이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제작됐다.
당시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해 총을 발사했고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 특별수사본부는 문세광이 북한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이른바 조총련의 지령을 받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 영화는 이 사건을 중심으로 당시 기록에 남은 여러 의문과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품은 지난 23일 개봉했다. 허진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등이 출연했다. 특별 출연으로도 정우성, 배성우, 오정세, 유연석, 박정민 등 충무로 스타들이 대거 등장해 그야말로 역대급 캐스팅이다. 영화는 실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기보다 당시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의문을 바탕으로 인물과 상황을 구성한 미스터리 추적극으로 만들어졌다.
‘암살자(들)’ 스틸컷 / 하이브미디어코프
‘암살자(들)’ 스틸컷 / 하이브미디어코프
개봉 이후 관객들 사이에서는 영화가 실제 역사와 영화적 상상력을 어느 선까지 결합했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역사 왜곡 논란에 의해 흥행도 저조해지고 있다. 지난 28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의해 밀려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다.
논란이 커지자 제작진도 공식 입장을 내놨다. 제작진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암살자(들)'은 1974년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당시 사건과 관련해 작성된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라며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고 밝혔다.
또한 제작진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공개된 기록과 자료를 비롯해 관련 서적과 다큐멘터리 등을 폭넓게 살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작품 속 설정과 실제 역사적 사실을 동일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제작진은 관련 의견을 존중한다면서도 "특정한 정치적 목적 의도로 제작된 영화가 아니다"라며 작품을 창작물로 봐달라고 요청했다.
영화에서 논란이 집중된 지점 가운데 하나는 결말이다. 당시 특별수사본부가 문세광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린 역사적 사건과 달리, 작품은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관객들은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당시 권력기관의 개입 가능성을 암시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암살자(들)’ /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에 대한 논쟁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국민의힘 일부 인사들은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며 비판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 측근인 유영하 의원과 장동혁 대표, 주진우 의원 등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개혁신당 역시 영화적 상상과 역사적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법적 쟁점은 이제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이종배 전 시의원이 제기한 고발이 어떤 절차로 진행될지, 영화의 표현과 설정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와 관련해 어떤 판단을 받게 될지는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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