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신문 김재훈 기자] 2026년 9월 9일을 기준으로 그의 수식어는 ‘한국 벤처의 신화’에서 ‘세기의 이혼’이 돼 버렸다. 스마일게이트그룹 창업주 권혁빈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 얘기다.
그는 한국 벤처 역사의 산증인이다. 엔지니어를 꿈꾸던 그는 안정적인 대기업 입사를 뒤로하고 벤처 시장에 뛰어들었다. 창업 초기 뼈아픈 실패를 맛봤다.
시장 흐름과 자금 운용, 마케팅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사업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권혁빈 CVO는 2년 만에 대표직을 내려놓고 사업을 정리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권혁빈 CVO는 첫 번째 실패에 대해 “좋은 기술이 반드시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며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시장에서 살아남는지, 자금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로소 눈을 뜨게 됐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런 실패를 극복하고 단일 게임 하나로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사로잡는 등 국내 게임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권혁빈 CVO가 자본금 1억 원으로 시작한 스마일게이트는 크로스파이어, 로스트아크 등 성공으로 연매출 1조 원이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연매출 1조 원이 넘는 국내 게임사는 넥슨, 엔씨, 넷마블, 크래프톤, 스마일게이트 등 5곳뿐이다. 이중 비상장사는 스마일게이트가 유일하다.
권혁빈 CVO의 성공 스토리는 스마일게이트그룹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창업 초기 겪었던 고초를 잊지 않고 그룹 역량을 동원해 인디 게임과 벤처 등 청년 창업가의 초기 성장을 지원하는 등 사회적 가치 창출까지 이어지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권혁빈 CVO 행보는 최근 개인사에서 비롯된 거대한 파도가 들이닥치며 변곡점을 맞았다. 배우자 이 모 씨가 2022년 제기한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의 1심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모 씨가 스마일게이트 성장에 일부 기여했다고 판단해 지분 35%를 분할하라고 명령했다. 권혁빈 CVO가 스마일게이트 지분을 사실상 100% 소유하고 있는 만큼, 향후 그룹 지배구조 향방에 중요한 변곡점에 섰다는 평가다.
2.5조 역대 최대 재산분할
지난 9일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3부는 권혁빈 CVO 배우자 이 모 씨가 낸 이혼 청구를 인용하며 “권혁빈 CVO가 배우자에게 재산분할로 스마일게이트 주식 35% 현물과 현금 650억 원 등 총 2조5500억 원 상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대한민국 이혼 소송 사상 역대 최대 재산분할 금액이다.
두 사람은 2002년 스마일게이트 설립 당시 초기 지분을 나누어 가지며 함께 사업에 발을 들였다. 이후 이 모 씨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권혁빈 CVO가 모든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2022년 이 모 씨가 권혁빈 CVO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재판의 최대 쟁점은 ‘기업 가치 성장에 대한 배우자의 기여도’였다.
이 모 씨 측은 “창업 초기 공동대표 수준으로 기여했다”며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 권혁빈 CVO가 경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라고 주장하며 지분 50% 분할을 요구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창업 초기 배우자의 실질적 기여를 법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심리 과정에서 비상장사 스마일게이트의 전체 기업가치를 약 7조1049억 원(순자산 약 7조3375억 원 중 주식 가치 96.8%)으로 평가했다. 크로스파이어, 로스트아크 등 핵심 IP 경쟁력과 글로벌 영향력 등을 고려한 수치다.
법원은 권혁빈 CVO의 독보적 경영 능력과 사업적 안목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창업 초기 배우자의 출자, 초기 대표이사 및 등기이사 등재, 장기간에 걸친 가사 및 양육 전담 등의 기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우자의 기여도를 35% 수준으로 인정했다.
권혁빈 ‘1인 지배’ 균열 가능성
이번 선고는 1심 판결로 향후 상급심에서 판결 내용 및 지급액이 변경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 가장 큰 파장은 지배구조의 변화다.
스마일게이트는 최상위 지주사인 스마일게이트홀딩스가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구조다. 지금까지 권혁빈 CVO는 이 모 씨의 경영 미참여 이후 지분을 사실상 단독으로 보유해 왔다.
판결대로 주식 35% 현물 이전이 이루어지면 권혁빈 CVO의 지분율은 65%로 줄어들고, 배우자 이 씨가 35%를 확보해 단숨에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권혁빈 CVO가 65%의 지분을 유지하는 한 이사회 구성이나 대표이사 선임, 일반적 안건의 과반수 의결 등 실질적 경영권 행사에는 즉각적인 차질이 크지 않다.
그러나 상법상 ‘특별결의 사안’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회사 정관 변경, 이사 및 감사 해임, 회사 합병·분할, 해산, 영업양도 등 그룹의 존폐와 관련된 중대 의사결정에는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66.7%)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배우자 이 씨가 35% 지분을 확보하게 될 경우, 단독으로 특별결의를 저지할 수 있는 사실상 ‘비토권’을 갖게 된다.
이는 권혁빈 CVO가 향후 지배구조 재편, 대규모 인수·합병(M&A), 신사업 추진을 위한 법인 분할 등을 추진할 때 2대 주주와의 동의나 협의가 불가피함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1심인 만큼 상급심(항소심 및 대법원)에서 지분율 산정이나 분할 방식(현물 이전 vs 현금 정산)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항소심에서 현물 주식 이전 대신 현금 지급으로 판결이 바뀔 경우, 권혁빈 CVO 측의 대규모 자금 조달 방안(지분 담보 대출, 외부 투자 유치 등)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대주주의 개인사에 관해 회사가 특별히 언급할 내용은 없다”면서도 “회사는 종전과 다름없이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스마일게이트는 비상장 지주사 체제로 그동안 대주주 1인의 신속한 의사결정이 강점이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경영권 자체의 흔들림은 크지 않더라도 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와 주주 간 관계 설정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고 분석했다.
김재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rlqm9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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