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입국해 모텔 합숙 '계획범죄' 정황…경찰, 국제사법공조 착수키로
업주 "APEC 앞둔 작년부터 '상호 바꿔라' 항의 잇달아"…"상호 변경 예정"
(성남=연합뉴스) 강영훈 김지원 기자 = 중국 최고지도자 이름을 상호로 쓰는 경기 분당의 중식당에 '래커 테러'를 저지른 용의자 4명이 모두 중국인으로 밝혀졌으며, 이들이 범행 당일 본국으로 도주해 경찰이 국제사법공조에 나섰다.
소속과 직업이 베일에 가려진 용의자들은 과거 한국 방문 이력이 없는 이들로, 사건 한 달여 전부터 차례로 입국해 같은 숙소에 머물다가 범행 후 곧바로 도주하는 등 계획범죄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피해 업주는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직전부터 가게 이름을 바꾸라는 항의를 받아왔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 래커·페인트칠에 농약 추정 물질까지 뿌려
경기 분당경찰서는 공동재물손괴 등 혐의를 받는 이 사건 용의자로 40대 A씨 등 20~40대 중국 국적 남성 4명의 신원을 특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들은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24일 오전 2시 40분께 성남시 분당구 소재 중식당에 침입해 매장 내부 곳곳에 래커와 페인트를 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농약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물질을 식재료에 뿌린 혐의도 받는다.
마스크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1시간가량 범행한 A씨 등은 함께 택시를 타고 숙소인 서울 성동구의 모텔에 들렀다가 3명은 오전에, 다른 1명은 오후에 인천공항을 통해 본국으로 도주했다.
이들은 중국 옌타이와 상하이 등지로 달아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날 오전 8시 30분께 피해 업주로부터 "누군가 가게에 침입해 내부 집기 등을 파손했다"는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CCTV 등을 토대로 추적에 나서 이튿날인 25일 오후 용의자들이 공항으로 간 사실을 파악하고 신원을 특정했으나, A씨 등은 이미 사건 당일인 24일 항공편으로 출국한 뒤였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후 택시를 타고 달아나는 용의자가 총 4명인 것을 확인하고 신속하게 신원을 특정했지만, 그때는 이미 용의자들이 비행기에 몸을 실은 뒤였다"며 "국제사법공조 등을 통해 용의자 추적을 계속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 한 달 전부터 입국해 같은 숙소 머물러…계획범죄 정황
경찰은 A씨 등이 지난 8월 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두 차례에 걸쳐 무비자로 입국해 서울의 모텔에 방을 잡고 숙소 생활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피해 중식당은 추석 연휴를 맞아 사흘간(9월 24~26일) 휴무였는데, A씨 등이 휴무 시작일을 노려 사전에 준비한 대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다만 A씨 등은 모텔을 26일까지 예약해놓고도 이보다 이틀이나 앞선 24일 범행한 뒤 곧바로 출국해 중간에 도주 계획을 앞당긴 정황도 나타났다.
A씨 등은 한국 거주는 물론 방문 이력도 대부분 없었다. 4명 중 3명은 이번이 첫 국내 입국이며, 나머지 1명만이 올해 제주에 한 차례 방문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용의자 중 1명은 이번 범행 며칠 전 해당 중식당이 있는 분당 서현동에 다녀갔으나 이 행동이 사전 답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A씨 등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사건을 일으켰는지 등은 아직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 등이 중국으로 달아나면서 사실상 조기 검거가 어려워져 범행 동기는 미궁에 빠질 우려가 커졌다.
현재로선 A씨 등이 중국의 최고 지도자 이름과 동일한 상호를 쓴 해당 중식당에 불만을 품고 범행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 지난해 APEC 앞두고 "상호 바꿔라" 항의 잇달아…실제 테러로
피해 업주는 지난해 10월 3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를 몇 개월 앞두고 곳곳에서 가게 이름을 바꾸라는 요청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의 방한이 예정된 상황에서 상호명이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항의가 여럿 있었다는 것이다.
피해 업주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시진핑이 중국 최고지도자니까 우리도 중식에서 최고가 되자는 의미에서 8년 전부터 같은 상호로 매장을 운영해왔다"면서 "구청에 영업신고를 할 때도 별문제 없어서 그대로 썼다" 말했다.
그러나 그는 "APEC을 앞둔 지난해 7~8월께부터 갑자기 이를 문제 삼는 항의가 이어졌다"며 "서로 다른 목소리의 전화만 30~40통을 받았으며, 그중에는 상호를 바꾸면 거액을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지만, 막상 돈을 지급한 사람은 없었다"고 전했다.
APEC 이후에는 별다른 소란이 없다가 최근 들어 실제 '식당 테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21일 새벽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이 가게 바깥쪽의 간판에 검은 페인트칠을 하고 달아난 것이다.
당시 경찰은 수사를 벌였으나, CCTV 영상을 통한 동선 파악에 한계가 있어 검거에 실패했다.
이로부터 두 달여 만에 일어난 이번 사건과 앞서 있었던 수많은 '전화 항의' 및 '간판 테러'와의 연관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피해 업주는 "수습을 마칠 때까지는 휴무할 예정이며, 앞으로는 상호를 변경해 영업을 재개할 예정"이라며 "그동안 그 누구도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가게 이름을 바꿔라'라고 항의하기만 해서 상호 변경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제는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k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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