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지대병원 김정우 소화기내과 교수
# 40대 직장인 윤 씨는 20년 가까이 영업 현장에서 잦은 술자리를 이어왔다. 며칠 전에도 회식 다음 날 아침, 명치에서 등까지 뻗치는 통증을 몇 시간 동안 느꼈지만 숙취라고 생각해 넘겼다. 이후 거래처와의 술자리에서도 속이 울렁거리고 통증이 느껴졌지만 다시 술잔을 들었다. 그날 밤, 등까지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구토를 해도 나아지지 않았고 몸이 절로 웅크려졌다. 결국 응급실을 찾은 윤 씨는 '알코올성 췌장염' 진단을 받았다.
▲스스로를 손상시키는 췌장
알코올성 췌장염은 음주와 관련해 췌장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갑자기 발생하는 급성 췌장염으로 나타날 수 있고, 손상이 반복되면 췌장 조직이 굳어 기능이 떨어지는 만성 췌장염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통증이 가라앉았다고 해서 이후의 음주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췌장은 명치 뒤쪽 깊은 곳, 위 뒤쪽에 가로로 놓여 있다. 음식물을 분해하는 소화효소를 만들어 장으로 보내고,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과 글루카곤도 만든다. 따라서 췌장 기능이 손상되면 심한 복통뿐 아니라 소화 장애나 당뇨병이 나타날 수 있다. 평소 눈에 띄지 않는 기관이지만 소화와 혈당 조절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셈이다.
췌장에서 만들어진 소화효소는 원래 장에 도착한 뒤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과도한 음주가 지속되면 알코올과 그 대사 과정에서 생긴 독성 물질이 췌장 세포 안의 칼슘 흐름과 에너지 생성을 교란하고, 췌장액이 빠져나가는 길도 방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소화효소가 췌장 안에서 너무 일찍 활성화되면 장에서 음식물을 분해해야 할 효소가 췌장 조직을 먼저 손상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여기에 미세혈관 손상과 강한 염증 반응이 더해지면 췌장이 붓고, 심한 경우 일부 조직에 괴사가 생길 수도 있다. 다만 술을 마신 사람에게 모두 같은 형태로 췌장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 요인이나 영양 상태, 흡연 여부 등 개인의 건강 상태도 발병과 경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숙취로 넘기기 쉬운 통증
알코올성 췌장염의 대표적인 증상은 갑자기 시작해 몇 시간 동안 지속되는 심한 명치 통증과 구토다. 통증이 등이나 양옆으로 퍼지기도 한다. 술을 마신 뒤 속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췌장염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통증이 강하고 오래 지속된다면 단순한 숙취로 넘겨서는 안 된다. 특히 구토를 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거나 일상적인 움직임조차 힘들다면 진료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소화불량은 더부룩함, 속쓰림, 트림 등이 주로 나타나고 증상의 정도도 달라질 수 있다. 반면 췌장염은 일상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울 만큼 통증이 심한 경우가 많다.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김정우 교수는 "알코올성 췌장염의 통증은 특히 등이나 양옆으로 퍼지는 양상을 보이며, 심할 경우 숨이 차는 호흡부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이 같은 증상을 단순한 숙취나 위장병으로 여기지 말고 의심이 된다면 즉시 가까운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병원에서는 통증의 양상과 음주력 등을 확인하고 혈액검사와 필요한 영상검사를 통해 췌장염 여부와 상태를 살핀다. 비슷한 복통을 일으키는 다른 원인도 있으므로 환자가 통증만으로 질환을 구별하기는 어렵다. 심한 명치 통증이 계속될 때 술을 마신 탓이라고 스스로 결론 내리고 진료를 미루면 상태를 확인할 기회도 늦어진다.
알코올성 췌장염으로 진단되면 수액을 공급해 탈수를 막고 통증을 조절하면서 장기 기능 저하나 감염 등 합병증이 생기는지 관찰한다. 치료 과정에서는 통증과 구토의 정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상태인지 등을 함께 살핀다. 증상의 강도와 질환의 경과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 치료와 회복 과정도 개인의 상태에 맞춰 진행된다.
이후 췌장의 소화기능이 떨어지면 지방 흡수가 어려워져 설사와 체중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가 손상되면 '3c형 당뇨병'이라 불리는 췌장성 당뇨병이 생길 수도 있다. 만성 췌장염은 췌장암 발생 위험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초기 통증이 가라앉았다고 치료를 중단하지 말고 혈당과 영양 상태 등 췌장 기능을 지속해서 살펴야 한다.
▲'금주'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알코올성 췌장염을 한 번이라도 겪었다면 가장 확실한 재발 방지책은 술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끊는 것이다. 통증이 없어졌다고 다시 마시거나 술의 종류를 바꾸는 것으로는 췌장을 보호할 수 없다.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김정우 교수는 "음주 종류나 개인의 알코올 흡수 능력과 상관없이 몸에 들어오는 알코올의 총량 자체가 췌장을 직접적으로 손상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흡연 역시 췌장 손상을 가속화하므로 금주와 함께 금연을 실천해야 한다. 혼자 술을 끊기 어렵다면 중독클리닉이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과 약물 치료 등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술자리가 잦은 업무 환경이라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주변에 알리고 음주를 권하는 상황을 피할 방법을 미리 마련하는 것도 금주를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회복기에는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식사를 조절하고, 이후에는 기름진 음식을 줄이며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증상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이전의 음주 습관으로 돌아가기보다 정기적인 진료를 통해 췌장 기능과 관련 위험 요인을 살펴야 한다. 췌장염을 겪은 뒤의 금주는 한동안 몸을 쉬게 하는 조치에 그치지 않는다. 다시 찾아올 수 있는 통증과 췌장 기능 저하를 막기 위해 이어가야 할 생활 원칙이다.
임병안 기자·도움말=대전을지대병원 김정우 소화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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