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콩코르드 광장서 야외 미사…18년만의 방문에 콘서트장 같은 열기
"물질 아닌 신앙서 행복 찾자"…대선 주자 등 정·재계 인사 대거 참석
AI·평화 메시지에 청년들 호응…'이민자와 공존'도 강조
훈장·환대 행사 모두 거절…성직자 성학대 피해자도 만날 예정
(파리·브뤼셀=연합뉴스) 황윤정 현윤경 특파원 = 26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샹젤리제 거리.
레오 14세 교황이 탄 흰색 '포프모빌'(교황 의전 차량)이 모습을 드러내자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곳곳에서 "레오" "레오" "교황 만세"를 연호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고, 각지에서 온 사람들은 노란색과 흰색의 바티칸 국기 등을 흔들며 교황을 반겼다.
명품 매장이 즐비한 쇼핑 명소 샹젤리제 거리는 이날 야외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환호로 뒤덮였다. 레오 14세 교황은 록스타와 같은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교황은 이날 포프모빌을 타고 개선문부터 콩코르드 광장을 잇는 약 2㎞ 길이의 샹젤리제 대로를 이동했다. 교황은 거리 곳곳에 모인 환영 인파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들어 올린 아기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기도 했다.
전날 파리에 도착해 나흘간의 프랑스 방문 일정을 시작한 레오 14세는 이날 파리 중심부 콩코르드 광장과 샹젤리제 거리 일대에서 대규모 야외 미사를 집전했다. 야외 미사에는 60만명이 참가 등록을 했으나, 실제로 나온 사람은 이보다 20만명 많은 80만명에 달한다고 교황청은 추산했다.
이날 파리 시내는 삼엄한 경비 속에 도심 차량 통행이 차단됐지만,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교황을 보러 나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은 프랑스 방문 기간 중 가장 큰 행사인 이날 미사에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신앙에서 행복을 찾을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오직 신앙만이 가톨릭 신자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서 "우리 안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또한 신앙을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하지 말고 "신앙이 넘쳐흘러 여러분이 만나는 이들이 새 힘을 얻고 갈증이 해소되도록 하라"고도 당부했다.
그는 "이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성령의 생수가 프랑스 전역으로 흘러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했다. 또 프랑스를 방문할 수 있게 된 것에 신께 감사드린다고 말하자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 속에서 환호성이 터지기도 했다. 교황의 프랑스 공식 방문은 2008년 9월 베네딕토 16세 교황 이후 18년 만이다.
이날 미사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대선 주자 마린 르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 프랑스 명품 그룹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다만, 프랑스가 엄격한 정교분리 원칙을 견지하는 사회인 것을 반영하듯 마크롱 대통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샹젤리제 거리 일대에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샹젤리제 대로로 이어지는 인근 마티뇽가도 오전 8시 전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원봉사자 필리핀 소니에(21)는 "정말 멋진 일"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 "프랑스 청년들에게도 정말 좋은 일"이라며 "교황님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 등이 처형된 단두대가 있었던 콩코르드 광장과 샹젤리제 거리에서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것에 대해선 "프랑스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상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부모 또는 가족과 함께 나온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파리정치대학 2학년생인 박려영(19) 씨는 "제 나이 또래들이 교황님이 젊어서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다"면서 인공지능(AI)과 평화 메시지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줄 것 같다고 했다. 딸과 함께 나온 강혜정(58) 씨는 내년 8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에 큰 기대감을 나타내며 "교황님이 세계 평화와 직결되는 한반도 평화에 큰 역할을 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2∼4년 주기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는 전 세계 가톨릭 청년들이 한데 모여 교류하는 축제로, 레오 14세 교황도 참석할 예정이다.
앞서 교황은 이날 오전 이민자·난민 지원 시설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틀째 일정을 시작했다.
교황은 파리 시내에 있는 '바키타의 집'을 찾아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이주민들과 장애인들을 만났으며 이민자와의 공존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냈다.
이민자 문제는 내년 프랑스 대선 주요 쟁점 중 하나다. "프랑스인 우선" 원칙을 내건 극우 RN의 르펜은 차기 대선 후보군 중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레오 14세는 방문 첫날인 25일에는 파리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 등과 만나 AI의 무분별한 사용과 핵 군비 경쟁의 위험성 등을 경고했다. 특히 AI를 거론하며 "우리 일상생활로 들어온 기계의 낙원에서 우리의 인간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후 미국의 탈퇴 여파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네스코 본부에서 연설한 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저녁 기도를 집전하고, 파리 북부 외곽의 생드니 경기장에서 청년 신도 약 8만명의 환호 속에 심야 기도를 이끌었다.
교황은 이번 방문에서 종교적 행사에 집중하겠다며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프랑스 훈장과 온갖 환대 행사도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 영역에서 종교색을 엄격히 금지하는 철저한 세속화를 지향하는 프랑스에서는 작년 기준 인구 6천900만명 가운데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이 약 5%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프랑스 주교회의에 따르면, 올해 부활절에 사상 최대인 2만1천명이 성인 세례를 받는 등 최근 몇 년 사이 청소년·성인 세례가 증가 추세를 보인다. 다만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야외 미사에 앞서 파리 가톨릭대에서 최근 세례를 받은 신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신자 수가 증가한 것을 두고 프랑스 교회가 "순진하게 낙관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교황은 파리에 이어 가톨릭 순례지인 남부 루르드, 유럽연합(EU) 창설 중심지였던 독일 접경 도시 메츠를 찾는다. 루르드에서는 성직자 성학대 피해자 7명을 만나고 메츠에서는 '평화와 통합을 위한 유럽의 뿌리'에 관한 연설을 할 예정이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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