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사람에게 가장 좋아하는 로컬 음식이 뭔지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스팸 무스비(하와이식 스팸 초밥), 로코모코(흰 쌀밥 위에 햄버거 패티와 달걀프라이를 얹고 갈색 육즙 소스를 듬뿍 뿌려 먹는 하와이 전통음식)와 함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름이 있다. 바로 '미트 준(Meat Jun)'이다. 얇게 썬 소고기에 달걀옷을 입혀 노릇하게 부쳐낸 이 음식을 두고 현지인들은 자기네 소울푸드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뿌리를 따라가 보면 신기한 게 나온다. 한국의 명절과 제사상에 오르는 육전이 그것이다.
하와이식 육전을 만드는 모습. / 'Ono Hawaiian Recipes' 유튜브 채널
미트 준은 과연 어떤 요리일까
미트 준은 이름부터가 절묘한 조합이다. 영어 ‘미트(meat)’에 한국어 ‘전(煎)’을 붙였다. 육전을 그대로 영어식으로 표현한 이름인 셈이다. 만드는 법은 한국의 육전과 거의 같다. 얇게 썬 소고기를 달걀 반죽에 담갔다가 팬에 부치거나 튀겨낸다.
다만 한국 육전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보통의 소고기전과 달리 미트 준은 고기를 미리 양념에 재운다는 점이다. 이 하와이식 소고기전은 대개 간장으로 만든 단짠 양념에 얇게 썬 소고기를 재운 뒤 간장이나 고추장 베이스에 쌀식초·참기름·고춧가루 등을 섞은 간단한 디핑 소스와 함께 낸다. 한국 육전이 소금·후추로 가볍게 밑간하는 담백한 맛이라면 하와이 미트 준은 불고기 양념을 입혀 훨씬 달고 진한 맛을 낸다.
상차림도 완전히 하와이식이다. 미트 준은 밥, 마카로니 샐러드, 반찬과 함께 나오는데, 이는 하와이의 다른 여러 '플레이트 런치'와 똑같은 방식이다. 밥과 마카로니 샐러드를 곁들인 도시락은 하와이 로컬 음식 문화의 상징인데, 미트 준은 그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선 오히려 먹시 쉽지 않다
재미있는 점은 미트 준이 한국에는 사실상 없는 형태라는 것이다. 얇게 썬 소고기를 양념에 재우고 달걀옷을 입혀 황금빛으로 부쳐내는 미트 준은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묘한 음식이다. 하와이에서는 한국식 테이크아웃의 필수 메뉴이지만, 미국 본토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정작 한국에서는 식당보다 잔칫상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육전은 낯선 음식이 아니다. 제사상이나 명절 밥상에 오르는 고기전이 바로 육전이다. 특히 전남광주 지역에서 즐겨 먹는 향토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하와이로 건너간 한국 이민자들은 이 육전을 하와이 사람들 입맛에 맞게 바꿔놓았다. 담백한 고기전에 달콤한 불고기 양념을 더하자 현지인들이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와이식 육전. / 'Ono Hawaiian Recipes' 유튜브 채널
하와이에서 미트 준을 처음 선보인 곳으로는 '김치(Kim Chee)' 식당이 자주 거론된다. 카네오헤의 김치 1호점이 하와이에 미트 준을 소개한 곳으로 꼽힌다. 1970년대 한 한식당에서 전통 방식으로 육전을 만들다가 고기를 불고기 소스에 담근 뒤 달걀옷을 입혀 부쳐낸 것이 시초가 됐다. 지금은 하와이 요리로 분류될 만큼 대중화됐다.
인기메뉴 넘어 사실상 현지음식 됐다
미트 준의 위상은 단순한 인기 메뉴 수준이 아니다. 하와이 공영방송 PBS 하와이는 지난해 12월 음식 문화 프로그램에서 아예 미트 준을 한 편의 주제로 다뤘다. 제목부터가 '미트 준은 하와이가 사랑하는 한국식 소울푸드'다. 이 프로그램은 미트 준이 한국 이민자들이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이래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하와이에서만 볼 수 있는 이 한국 음식이 어떻게 지역의 사랑을 받게 됐는지 조명했다.
방송에 나온 현지 상인의 말이 인상적이다. "미트 준은 한국 음식이지만 하와이에서만 나올 수 있는 한국 음식"이라는 것이다. "모두에게 내 미트 준과 내 문화를 대접하는 게 자랑스럽다"는 상인의 말도 담겼다. 한 식당에서는 미트 준이 가장 많이 팔리는 인기 메뉴 중 하나로 꼽혔고, 그렇게 섬 전체와 다른 섬들로까지 큰 인기를 끌게 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미트 준을 대표하는 식당 '김치'는 이제 하나의 체인으로 성장했다. 1977년부터 하와이 플레이트 런치를 선보여 온 김치 레스토랑은 하와이 전역에 약 10개 지점을 둔 작은 체인으로 컸다. 갈비와 푸짐한 양, 든든한 플레이트 런치로 유명하다. 한 접시가 두 사람이 먹어도 될 정도의 양이다.
하와이식 육전. / 'Ono Hawaiian Recipes' 유튜브 채널
인기의 열기는 순위 경쟁에서도 드러난다. 호놀룰루 매거진이 2024년 6월 독자 투표로 오아후섬 최고의 미트 준을 뽑은 적이 있다. 단 사흘 만에 1397표가 몰렸다. 그중 절반 이상이 단 세 식당에 집중됐다. 미트 준 하나를 놓고 1400명 가까운 사람이 "우리 동네 미트준이 최고"라며 표를 던진 셈이다.
한 인기 식당의 미트 준은 13.90달러짜리 한 접시에 소고기 세 덩어리가 들어 있어 두 사람이 먹어도 충분한 양이라고 소개됐다. 또 다른 식당의 미트 준 접시는 양이 너무 푸짐해 고무줄로 도시락을 묶어야 할 정도라는 설명도 있었다.
미트 준의 이야기가 특별한 건, 이민의 역사가 음식 한 접시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건너간 한국 이민자들은 고향에서 먹던 육전을 잊지 않고 하와이의 재료와 입맛에 맞춰 새로운 육전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태어난 미트 준은 사실상 하와이 로컬 푸드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는 명절과 잔칫날에나 부치던 육전이 태평양 건너 섬에서는 아무 날에나 먹는 일상의 음식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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