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의 ‘경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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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의 ‘경솔함’

평범한미디어 2026-09-26 16:12:3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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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분명 심수봉은 데뷔 50여년에 이른 대가수이자 한국 가요계의 레전드다. 이것은 분명하다. 2020년부터 KBS에서 명절 대기획으로 ‘특집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나훈아, 송골매, 조용필, 이승철과 함께 심수봉도 그 대상자로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할말 안할말을 가리지 못하고 프로답지 않은 형편 없는 ‘무대 매너’로 인해 오래전부터 지적을 받곤 했다. 이번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지방 행사(2026년 9월20일 전북 진안군 ‘진안고원 트로트 페스티벌’)에서 심수봉이 두 번째로 무대에 올라 직전 공연을 마치고 내려간 미성년자 트로트 가수 김다현에 대해 맹비난을 했다. 김다현은 김봉곤 훈장의 막내딸로 알려진 인물인데, 2020년 MBN <보이스 트롯>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여 인지도를 갖게 됐고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2>에도 출연해 탑7까지 올라가서 최종 3위(美)를 차지한 바 있다. 김다현은 2009년생으로 올해 18세에 불과한 미성년자 가수이기도 하다.

 

심수봉의 모습. <그래픽=챗GPT>

 

이런 김다현의 무대를 백스테이지에서 지켜봤던 심수봉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청중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아래와 같이 발언했다.

 

앞에 노래 부른 여자. 지금 머리를 이렇게 어지럽게 만들었어요. 여기 혹시 그 매니저가 와 있나요? 젊은 아가씨가 노래가 뭔지, 삶이 뭔지도 모르는 아가씨인 것 같아요. 노래를 듣고 있으면서 내가 너무 힘이 들어서요. 여러분 앞에서 얘기합니다. 제 앞에 저 선수 내보내지 말아주세요. 앞으로. 알았죠? 저 지금 완전히 어지러워서 쓰러지게 돼 있어요. 노래라는 건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인생 경험도 해보고, 고생도 해보고, 이렇게 찾아오는 모든 분들을 위로해주고. 그런 음악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저 너무 지금 힘들어서요. 할 수 없이 시간을 조금.... 고백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가요계 대선배로서 품격은커녕 최소한의 상도의조차 저버린 망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 스스로 횡설수설 하기도 했는데, 사실 심수봉은 첫 곡을 부른 뒤 관객들에게 정식 인사까지 마치고 두 번째 곡을 부르고 나서 물을 마시고 느닷없이 김다현을 인신공격했다. 불현 듯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났다고 하더라도 그냥 떨쳐내고 지금 무대에 오른 가수로서 공연에만 충실하고 관객들과 호흡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손녀뻘이자 축제에 정당하게 섭외되어 같은 무대에 선 후배를 가수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아가씨”와 “선수”라는 지칭이다. 김다현을 폄하하기 위한 일종의 멸칭이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심수봉은 소속사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하며 “평소 가요계에 대한 근심이 있었다”면서 “앞 순서 가수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밝혔다.

 

안녕하세요, 심수봉입니다. 지난 9월20일 저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지방의 한 트로트축제 무대 위에서 말 그대로 실언을 했습니다. 평소 가요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있었고 행사가 있던 당일에는 행사장 소음으로 인해 큰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웃고 즐겨야할 트로트 축제 현장에서 적절치 않은 순간에 상식을 벗어난 말로 뱉어진 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 순서 가수가 정확히 누구인지 몰랐고 특정인을 망신주기 위해 한 말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른으로서 후배 가수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한 점은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저는 김다현 양과 가족에게 깊은 사과의 뜻을 전했고 그 과정에서 부친에게 김다현 양이 콘서트에서 ‘백만송이 장미’를 피아노를 치며 불렀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 사과문을 통해 김다현 양과 팬클럽, 행사를 위해 애쓴 모든 관계자들에게도 깊은 유감과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트로트 축제 당일 공연을 보러온 많은 참가자들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넓은 마음으로 용서 바랍니다. 끝으로 땀흘려 일하는 농민들의 지역축제인 진안홍삼축제는 이번 트로트 행사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김다현과 그의 가족에게도 직접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고는 하나 사람들이 심수봉의 사과문에 대해서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았다는 반응을 보인 이유가 있다. 깔끔한 사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명백히 망신을 줬으면서 망신을 주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다거나, 평소 한국 가요계의 방향성에 대한 걱정이 있었고, 행사장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가수가 행사 무대의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라면 애당초 섭외에 응하지 않았어야 했다.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프로 가수라면 행사장에서의 소음을 감당하고 좋은 무대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본인도 “실언”이라는 점을 인정했으면서도 마치 댄스 트로트 무대를 보여준 후배 가수 김다현이 걱정스러운 한국 가요계의 한 부분인 것처럼 묘사했다.

 

더욱 씁쓸한 지점은 온라인 일각에서 형성된 기묘한 옹호 여론이다. 이를테면 “심수봉의 언행과 방식은 잘못되었지만”이라고 서두를 깔고 “심수봉이 던진 그 메시지 자체에는 공감이 간다”면서 동의를 하는 것이다. 김다현의 무대 영상에 달린 댓글에는 이런 내용이 많다.

 

요즘 어린 트로트 가수들의 무대가 진정성 없이 처참한 것은 사실 아니냐. 김다현의 무대를 보니 심수봉이 잘못했다는 말을 못하겟다. 진짜 대충 부르네. 차라리 경연에 나갔던 노래로 대중들의 심금을 울렸다면 심수봉이 그랬을까? 노래를 하긴 하는데 가수가 부르는 것 같지않다.

 

이런 식으로 심수봉의 발언에 은근슬쩍 동조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문제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트로트라는 장르의 예술성이나 김다현 무대의 완성도 여부가 아니다. 핵심은 ‘돈을 받고 관객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올라간 공적인 행사 무대에서 대선배라는 위력을 이용해 후배 가수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리고 망신을 준 폭력성’에 있다. 두 가수는 엄연히 축제에 초청받아 계약을 이행한 동등한 위치의 출연자였던 것이지, 심수봉이 평가관으로 참석한 오디션 현장이 아니었다. 심수봉의 지병이나 개인적인 취향이 소중하다면 그 무대를 위해 땀 흘린 후배 가수의 인격과 이를 보러 온 관객들의 귀 역시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만약 심수봉이 대선배로서 한국 트로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나 가수로서 노래를 대하는 마음가짐, 태도에 대해 조언을 하고 싶었다면 그 기회와 수단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방송 인터뷰나 언론 기고, 개인 수필 혹은 정제된 사석이나 대화의 자리를 통해 깊이 있는 ‘음악 철학’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진정으로 가요계를 걱정하고 후배를 아끼는 어른의 ‘숙의이자 기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의 한복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즉흥적으로 후배를 비난한 것은, 가요계에 대한 순수한 근심이 아니라 자아만 비대해진 ‘경솔한 훈계질’이자 감정 통제 실패에 불과하다.

 

한국 트로트는 상업적인 대중음악으로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발전해왔던 장르다. 심수봉이 정의하는 ‘고상하고 한이 서린 음악’만이 정답이 아니다. 댄스 트로트 장르를 통해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인 어린 후배의 열정을 ‘경박한 광대짓’으로 취급하는 오만함은 트로트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선배라는 위치는 후배의 인격을 공개적으로 짓밟을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이와 관련 김형민 전 SBS CNBC 피디는 페이스북을 통해 “심수봉 참 추하게 늙었구나. 저렇게 늙지 말자는 반면교사로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강일권 음악 평론가는 “이 사안은 단순한 실언이나 예의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차원의 일이 아니”라며 아래와 같이 설파했다.

 

어른이 십대에게, 그것도 업계의 최강자 중 한 명이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후배에게 가한 폭력이나 다름 없는 짓이었다. 특히 “앞으로 내 앞에 저 선수 내보내지 말아 달라”와 같은 발언은 너무나도 무자비하고 폭력적이다. 업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상대의 활동 기회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곧바로 사과했다고 해서 이미 뱉은 말의 무게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심수봉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한 마디는 김다현은 물론 비슷한 처지에 놓인 후배 가수들의 공연 섭외와 활동 기회를 위축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야말로 슈퍼 갑질이다.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어느 쪽이든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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