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을 사로잡는 비결은 모르겠어요. (웃음)”
정은채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인물을 기가 막히게 입어낸다. 남성을 연기하는 국극 배우 역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뒤 성범죄 피해 여성 전문 변호사를 거쳐 이젠 집요한 추적을 거듭해 온 형사까지 성립시켰다. 공통점이라면 정은채가 연기하니 괜히 더 멋있단 것이다.
최근 일간스포츠와 만난 정은채는 호평에 대해 “여성 시청자들은 캐릭터가 강력하고 상황을 끌어나갈 때 대리만족을 느끼시는 것 같다”며 “나도 연기하면서 그런 통쾌한 지점이 재밌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은채가 출연한 SBS 금토드라마 ‘재벌X형사2’는 수사가 막히면 재력으로 판을 뒤집는 재벌형사 진이수(안보현)와 새 팀장 주혜라(정은채)의 공조 수사극이다. 최종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 11.8%(닐슨코리아 전국)를 기록, 종전 시즌1의 기록을 뛰어넘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타이틀롤 안보현을 비롯해 직전 시즌의 배우진과 제작진을 그대로 가져가는 가운데, 정은채가 유일하게 새롭게 투입됐다. 극중 강하 1팀에 팀장으로 부임한 주혜라와 같은 입장인 셈이다.
사랑받는 시리즈에 새로 투입된 부담감은 있었다면서도 그는 “처음 접해보는 장르라는 호기심도 있었고, 캐릭터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 연기적으로 다른 부분을 보여드린다는 점에서도 시도해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사실 정은채에게 ‘재벌X형사2’에만 온전히 집중해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짧았다. 직전 출연작인 ‘아너: 그녀들의 법정’ 촬영을 마친 일주일 뒤 곧장 ‘재벌X형사2’에 촬영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대테러팀 에이스 출신 다운 주혜라의 액션은 액션스쿨과 현장에서 스턴트 대역의 도움을 받아 빚어냈지만, 주혜라의 성정과 감정에 대한 해석은 정은채의 몫이었다. 준비 과정을 묻는 질문에 정은채는 10년 전 출연작 ‘손 더 게스트’를 소환했다.
“그땐 팀의 막내였고 주혜라와 정반대로 뜨겁고 물불 가리지 않는 캐릭터였어요. 이번에 형사 역할을 다시 맡으며 그때 생각이 많이 났죠. 이젠 직급도 리더로 올라가고 이성적이고 냉철함이 베이스로 깔린 성격이라, 차분하게 팀원을 설득하거나 포커페이스처럼 쉽게 결정이 읽히지 않는 모습의 카리스마를 장착하고자 했어요.”
주혜라는 정은채의 필모그래피 근작의 연장선상에서 주체적인 여성상을 공유한다. tvN ‘정년이’의 문옥경과 ENA ‘아너: 그녀들의 법정’의 강신재에 이어 3연속이다. 여성이 남성역까지 해내는 국극을 다룬 시대극, 여성들의 연대를 그린 법정물이었던 앞선 작품에 비해 ‘재벌X형사2’는 경쾌한 톤의 수사물이지만, 주혜라란 인물 자체는 남성이 주된 경찰 조직의 유일한 여성 리더다.
이를 두고 정은채는 의도한 바라면서 “작품과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오면서는 내가 끌리는 인물, 내가 갖지 못해 선망하는 캐릭터에 대해 훨씬 매료가 된다”며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을 연기할 때 배울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닮아가고 싶은 부분이 크게 와닿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자신은 리더보단 서포터형이라면서 “전 사실 허술한 면이 많다. 이젠 그런 면을 부각시켜보고 싶단 생각도 든다. 편안하고 땅에 닿은 자연스러운 연기나 밝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고 부연했다.
“수식어에 갇히고 싶진 않아요. 어떤 캐릭터나 이미지로 국한되지 않고 계속 변형해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재벌X형사2’가 방영되는 동시에 정은채의 전작 ‘안나’와 ‘유어 아너’도 OTT 역주행에 성공했다. 정은채는 “촬영할 때도 너무 좋았던 작품들인데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이렇게 사랑을 받는게 신기하기도 했다”며 “개인적으로 ‘좋은 작품을 보는 눈이 있구나’하는 안도의,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웃었다.
안목의 비결을 묻자 이야기적 재미 뿐 아니라 자신의 전작들과의 이미지와의 대비도 고려한다고 답했다. 정은채는 “이젠 좀더 인간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많이 끌린다. 감정적으로 깊게 무언갈 보여드릴 수 있는 걸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실 좀 차분하고, 느린 속도의 작업을 개인적인 취향으로 좋아해요. 요즘엔 그런 작품이 사실 많지 않은 것 같지만요. 장르로 꼽자면, 제게 멜로 시나리오를 주십시오.(웃음).”
끝으로 정은채는 로맨스로 시청자를 만나보고 싶단 의사를 밝히면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멜로 거장’ 안판석 감독을 추모했다.
“열심히 해서 언젠가 같이 작업하고 싶었기에 안타까웠어요. 이젠 내가 좋아하는 것과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 한단 생각도 들었고, 때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도 결국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기회도 더 빠르게 올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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