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면 밤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뜬다. 그런데 이날 빠지지 않는 송편은 보름달이 아닌 반달에 가까운 모양으로 빚는다.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날에 왜 떡은 절반만 찬 달처럼 만들었을까.
추석에 햅쌀로 빚는 송편은 ‘오려 송편’이라고도 불렸다. ‘오려’는 일찍 여문 벼를 뜻한다. 한 해 거둔 햅쌀로 떡을 빚어 먹었던 셈이다. 반달 모양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중 널리 알려진 것이 백제와 신라의 운명을 달에 빗댄 옛이야기다.
백제 궁궐에서 발견됐다는 수상한 글귀
전해지는 이야기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궁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고, 땅을 파보니 거북과 함께 나라의 앞날을 암시하는 글귀가 나왔다고 한다.
글에는 ‘백제는 만월이고 신라는 반월이다’라는 뜻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여기서 만월은 둥글게 꽉 찬 보름달을, 반월은 절반 정도 찬 달을 가리킨다.
당시에는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을 나라의 흥망과 연결해 풀이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곤 했다. 이 글귀 역시 백제와 신라의 앞날을 달의 모양에 빗댄 말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만월과 반월이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를 두고 해석은 엇갈렸다. 이 대목에서 보름달과 반달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풀이가 등장한다.
“보름달은 기울고 반달은 차오른다”는 풀이
옛이야기에서는 ‘백제는 만월이고 신라는 반월’이라는 글귀를 두고 두 가지 풀이가 나왔다고 전한다. 한 점술가는 백제가 이미 가득 찬 보름달이어서 앞으로 기울고, 신라는 아직 덜 찬 반달이어서 앞으로 차오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의자왕에게는 달갑지 않은 풀이였다. 이에 다른 사람은 백제는 이미 가득 차 번성한 상태이고, 신라는 아직 절반밖에 차지 않아 힘이 약하다는 뜻이라고 반대로 설명했다고 한다.
같은 글귀를 두고 백제와 신라의 앞날을 정반대로 바라본 셈이다. 당시에는 어느 풀이가 맞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후 두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면서 이 이야기도 새로운 의미로 전해지게 된다.
신라의 반달에서 송편 이야기로 이어진 까닭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신라의 반달은 앞으로 차오른다’는 풀이가 결과와 맞아떨어진 이야기처럼 전해졌다. 반달은 덜 찬 달이 아니라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는 달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 해석은 반달 모양 송편 이야기와도 이어졌다. 송편은 둥글게 편 반죽에 깨나 콩, 팥 같은 소를 넣고 반으로 접어 가장자리를 붙이면 자연스럽게 반달과 비슷한 모양이 된다.
추석에는 둥근 보름달이 뜨지만 송편은 반달 모양으로 빚는다. 이미 가득 찬 보름달보다 앞으로 더 차오를 수 있는 반달에 가족의 평안과 앞날의 복을 바라는 뜻을 담았다는 설명이 여기서 나온다.
이 이야기는 송편 모양의 유래를 설명하는 여러 설화 가운데 하나로 전해진다. 백제와 신라의 이야기가 반달 송편에 담긴 의미와 함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역마다 다른 송편 모양
반달 송편에 이런 의미가 전해지지만, 실제 송편의 모습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 많이 나는 재료와 집안마다 이어온 빚는 방식에 따라 색과 크기, 모양이 달라졌다.
서울·경기 지역에서는 여러 색을 낸 오색송편이 잘 알려져 있다. 쑥이나 치자, 오미자 등을 반죽에 넣어 색을 내고, 크기는 비교적 작고 반달 모양으로 빚는 경우가 많다.
강원도에서는 감자 녹말을 이용한 감자송편이 눈에 띈다. 반죽이 맑고 쫀득한 편이며, 강릉 지역에서는 송편 표면을 손가락으로 눌러 자국을 내기도 한다.
충청도에서는 호박을 넣은 호박송편이 유명하다. 반죽에 호박을 섞어 노란빛을 내고, 겉모양도 작은 호박처럼 빚어 다른 지역 송편과 쉽게 구분된다.
제주에서는 완두콩 소를 넣은 송편이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반달형보다 둥글고 납작하게 빚는 경우가 많아 생김새부터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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