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의 기억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어린시절의 기억

문화매거진 2026-09-24 23:00:08 신고

▲ 1963년 완공된 남산 어린이 놀이터 / 사진: 구씨 제공
▲ 1963년 완공된 남산 어린이 놀이터 / 사진: 구씨 제공


[문화매거진=구씨 작가] 방과후 미술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을 교문 밖으로 안전하게 배웅하는 것까지가 내 몫이다.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양손에 아이들의 작은 손을 쥐고 나선다. 그럼에도 매번 갑자기 튕겨 나가듯 달리는 아이들이 있다. 소리를 지르고 헐떡이며 쫓아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기합처럼 튀어나오는 커다란 고함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그렇게 겨우 하교 지도를 마치고, 마중 나온 부모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며 손을 잡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수업을 나가는 학교 근방은 신도시라 그런지 여러 아파트 단지가 초등학교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대부분 아이가 학교와 가까운 곳에 살지만, 교문 밖으로 몇 발자국만 나서도 차들이 쌩쌩 다니는 도로라 위험천만하다. 그래서인지 학교 측에서도 하굣길에 주의를 기울이며 하교 지도를 한다. 2학기가 되면서 저학년 중에서도 자율 귀가를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집 가는 길을 아는 것과 별개로 앞만 보고 총알처럼 뛰어가 것 같은 아이들을 볼 때면 가슴이 조마조마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초등학생이던 시절 누군가 데리러 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집과 학교의 거리가 제법 멀었지만, 큰 도로 하나만 건너면 그다음부터는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길들이 이어졌다. 여러 갈래의 길을 매일매일 천천히 경험하며 기분에 따라,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의 정도에 따라 선택했던 기억도 있다.

오롯이 혼자 걷던 날은 운동장에 남아 그네를 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늦기도 했고, 그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지체되기도 했다. 어쩌면 친구와 평소보다 일찍 헤어진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혼자 차지하는 놀이터가 얼마나 재미없는지도 알게 되었고, 아파트의 몇 동을 몇 시쯤 지나가는 길에 피아노 연습 소리가 나는지도 알게 되었다. 또 어떤 날들은 친구와 함께 걸었다. 학교 앞 첫 번째 갈림길에서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친구가 있었고, 그 다음 갈림길에서 헤어지는 친구가 있었다. 큰 언니 오빠들이 장난치듯 걸어가는 논두렁 사이의 아슬아슬하고 좁은 길은 감히 가보지 못했지만, 멀찍이서 그 길을 바라보며 ‘언젠가 나도 저 길로 집에 가봐야지’하고 조용히 다짐하곤 했다.

많은 하굣길 기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종이컵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떡볶이를 담아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비가 쏟아졌고, 가장 가까운 아파트의 계단에 앉았다. 비에 젖어 으슬으슬 추운 몸을 따뜻한 떡볶이 한 컵에 의지하며 비를 피했다. 스스로 비를 피했다는 것 자체에 묘한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날의 장면이 이토록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아마 아파트를 나오면서 단지의 우편함 옆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억들은 살면서 가끔 스치듯이 지나간다. 지금의 순간과 과거의 기억이 연결성을 갖지 못하더라도 기억들을 되새기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변하지 않았음을 느끼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파편적인 기억들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런 여백의 시간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까지 학원을 몇 개씩 돌고 있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기분이 미묘해진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으로서 종종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를 그냥 두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 안 하고 있니?” 말을 걸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정말 하고 싶은 게 따로 있어서 고민하는 아이도 있지만, 어떤 아이는 이전 수업들로 이미 진이 빠져버린 듯 그저 고개만 저으며 가만히 쉬고 싶어 한다. 그냥 두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도록 독려해 왔다. 그 안에는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었겠지만, 수업료를 받는 선생님이라는 책임감이 크게 작용했는 것 같다.

오늘은 가만히 생각해 본다. 때로는 조용히 혼자만의 상상에 잠겨 있는 아이를 그저 가만히 바라봐 주는 것, 그 기다림이야말로 아이에게 그날 하루를 스스로 음미하게 해줄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숨은 의도 없이 마냥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 좋은 순간을 스스로가 기억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오지랖처럼 생기곤 한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