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곽민구 기자ㅣ식당 예약, 상품 비교, 일정 관리. 지금까지 사람이 앱을 열고 로그인해 직접 처리하던 일들을 AI 에이전트가 대신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질문에 답하는 AI를 넘어 사용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실제로 '행동'하는 AI가 보편화되면서,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이 에이전트는 누구를 대신하고 있으며, 어디까지 맡겨도 되는가.
SKT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통신에서 찾고 있다. SKT 뉴스룸을 통해 지난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서울 SKT타워에서 제99차 GSMA(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 RCS 그룹회의를 열고, AI 에이전트가 예약이나 결제를 실행하기 전 사용자가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승인할 수 있도록 RCS를 '사용자 확인·승인 채널'로 활용하는 방안을 표준 안건으로 제안한 내용을 전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 온 통신이 이제 사람과 AI를 잇는 신뢰의 기반이 되겠다는 구상이다.
■ 답하는 AI에서 행동하는 AI로, 달라지는 질문
AI가 정보를 제공하는 데 머물 때 중요한 것은 답변의 정확성이었다. 그러나 AI가 사람을 대신해 결제하고 계약하기 시작하면 따져야 할 것이 훨씬 많아진다.
SKT 김지형 디지털플랫폼사업담당은 최근 칼럼에서 "AI는 궁금한 것을 묻고 답을 얻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필요한 일을 직접 수행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며 "이는 단순히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전환"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지금까지 사람들은 앱이나 웹사이트에 직접 접속해 정보를 찾고, 본인 확인을 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했다"며 "앞으로는 에이전트에게 원하는 일을 말하면 에이전트가 여러 서비스를 찾아 비교하고 사용자가 정한 조건에 따라 필요한 절차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들을 던졌다. "이 에이전트는 누구를 대신하고 있는가", "어떤 자격을 갖고 있는가", "사용자는 에이전트에게 어디까지 맡겼는가", "정해진 범위를 넘어서는 행동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다시 확인할 것인가", "에이전트가 수행한 일과 그 결과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사람이 직접 행동할 때는 로그인과 동의, 확인 절차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문제가 생기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김 담당은 "에이전트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면 사람과 에이전트 사이에 새로운 약속과 규칙이 필요하다"며 "에이전트의 신원과 자격을 확인하고, 허용된 권한과 범위를 정하며, 중요한 순간에는 사용자가 직접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번호, 플랫폼에 묶이지 않는 '연결의 닻'
그렇다면 그 약속과 규칙은 누가 뒷받침할 수 있을까. SKT는 통신사의 오랜 자산에 주목한다. 전화번호로 고객에게 도달하고, 가입자 정보로 이용자를 확인하며, 메시지와 인증으로 다양한 서비스 이용을 지원해 온 경험이다.
김 담당은 "번호는 특정 서비스나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사람과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수단"이라며 "AI 에이전트가 다양한 서비스를 오가는 시대에는, 에이전트와 실제 사용자를 연결하고 확인하는 기반으로서 번호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 통신사의 역할은 단순한 회선 제공을 넘어선다. 김 담당은 "통신사의 역할도 단순히 연결을 제공하는 데 머물지 않을 것"이라며 "에이전트가 누구를 대신하는지 확인하고, 사용자가 허용한 범위를 관리하며, 필요한 순간에 사용자와 에이전트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로 확장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빅테크가 AI 모델 경쟁을 벌이는 사이, 통신사는 '신원과 권한'이라는 인프라 층에서 자리를 찾고 있는 셈이다.
■ 왜 RCS인가
SKT가 해법으로 내세운 것은 차세대 메시징 표준 RCS(Rich Communication Services)다. 문자메시지를 발전시킨 RCS는 별도 앱 설치 없이 쓸 수 있고, 발신 주체가 확인된 브랜드 채널을 지원한다. 김 담당은 "승인 요청과 결과를 대화 흐름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이전트와 사람이 만나는 접점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를 에이전트 시나리오에 대입하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신해 호텔을 예약하려는 순간, 사용자의 휴대전화로 검증된 발신처의 확인 메시지가 도착하고, 사용자는 대화창 안에서 내용을 보고 승인하거나 거절한다. 모든 스마트폰에 기본 탑재된 메시징이 사람과 에이전트가 만나는 '최종 확인 지점'이 되는 것이다.
SKT는 이번 회의에서 'AI and the Evolution of Messaging' 특별 세션을 주관했다. 글로벌 통신사와 단말·플랫폼·메시징 사업자가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AI 시대 메시징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논의를 이끈 것이다. 김 담당은 "SKT는 RCS 서비스를 직접 운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메시징의 새로운 역할을 글로벌 파트너들과 함께 구체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결제까지 맡기는 시대, 기술보다 중요한 '통제의 구조'
에이전트가 실제 거래까지 수행하게 되면 과제는 한층 복잡해진다. 김 담당은 "기존 결제수단과 함께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산이 새로운 거래 환경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Web3 기술 역시 에이전트의 자격과 권한, 거래 이력을 관리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검토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특정 기술을 정답으로 보는 시각에는 선을 그었다. 김 담당은 "어떤 기술이나 결제수단을 선택하느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안전한 거래를 위해서는 에이전트가 어떤 요청을 바탕으로, 어떤 조건과 한도 안에서 거래할지를 미리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추가 확인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사용자에게 다시 승인을 요청하고, 거래가 완료된 뒤에는 처리 과정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필요할 경우 거래를 보류하거나 권한을 변경·중단할 수 있는 장치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핵심은 이용자가 자신의 선택과 권한을 끝까지 쥐고 있는 구조다. 김 담당은 "에이전트 시대를 준비하면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도입하느냐만이 아니다"라며 "이용자가 그 기술을 얼마나 쉽게 이해하고,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한 기업으로는 만들 수 없는 규칙
이런 구조는 어느 한 기업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김 담당은 "이러한 구조와 기준은 한 기업의 노력만으로 만들기 어렵다"며 "에이전트가 서로 연결되고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업별 기술 개발을 넘어 공통의 규칙과 표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KT가 자사 서비스 개발에 그치지 않고 GSMA라는 국제 표준화 무대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신 산업은 이미 비슷한 경험을 거쳤다. 서로 다른 통신사 가입자끼리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도 결국 표준 덕분이었다. AI 에이전트의 신원 확인과 승인 절차가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면, 사용자는 어떤 에이전트를 쓰든 같은 방식으로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
■ 편리함이 판단을 대신하지 않도록
에이전트 시대가 온다고 사람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의도와 기준을 정하고, 에이전트는 그 기준에 따라 일을 수행한다. 김 담당은 "중요한 것은 에이전트의 편리함이 사람의 판단과 통제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화와 메시지, 번호와 인증 등 우리가 쌓아온 역량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해, AI 에이전트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고 책임 있게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겠다"며 "기술의 편리함을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이 그 기술을 이해하고 통제하며 안심하고 자신의 일을 맡길 수 있는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AI가 더 많은 일을 대신할수록 사람과 AI를 잇는 방식은 더 세심해져야 한다. 수십 년간 사람과 사람을 이어 온 통신이, 이제 그 세심함을 설계하는 자리에 서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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