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산업이 생성형 AI와 엔터테크의 거센 물결 속에서 제작 효율성의 극대화와 창작의 본질이라는 대전환점을 맞이했다. 음원 프로듀싱부터 버추얼 아이돌, 뮤직비디오 프로덕션에 이르기까지 기술 도입은 제작비를 크게 낮추고 자본 장벽을 허물며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생존 무기와 IP 확장성을 제공하고 있다. 본 기획 시리즈 [K팝과 AI 혁명]은 K팝 프로덕션의 세 가지 핵심 축인 작곡가 작업실, 버추얼 아이돌·팬덤, 뮤직비디오 제작 현장을 들여다보고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술이 허무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인간 창작자의 가치와 K팝의 미래를 짚어본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작업실에서 만난 김원종 프로듀서는 창작 현장에 깊숙이 침투한 AI 기술의 현실을 전하며 “기술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K팝 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프로듀서는 1998년 힙합 뮤지션으로 데뷔한 이래 27년간 100여 장의 앨범과 200곡 이상을 프로듀싱해 온 베테랑 뮤지션이자, 한양대학교 미래인재교육원 교수다. 그는 국내 대형 기획사들과의 협업부터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 전시 전량 매진을 기록한 멀티센소리 아트 작업, 이탈리아 현대음악 작곡 및 합창지휘 박사 학위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미술, 첨단 기술을 아우르는 이력을 쌓아왔다.
김 프로듀서의 작업실에서 AI는 더 이상 단순한 플러그인이나 아이디어 스케치 도구가 아니다. 곡의 초안 작성부터 가사, 편곡, 사운드 믹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결국은 AI와 사람이 코워킹하는 구조”라고 운을 뗀 김 프로듀서는 “프로듀서가 세션 연주자들을 불러놓고 ‘드럼은 리드미컬하게, 베이스는 A마이너로 그루브하게’ 주문하듯, AI에 정교한 언어로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라며 “초기 스케치 단계에서는 현존하는 최상급 어시스턴트”라고 설명했다.
그가 체감하는 비용과 시간 절감 효과는 파격적인 수준이다. 과거 가이드 보컬, 기타, 베이스 세션을 부르고 믹싱까지 거치면 곡당 최소 200만~500만 원, 빅밴드나 오케스트라 스타일은 1000만 원 이상이 소요됐다. 하지만 지금은 AI 음악 프로그램 구독료 정도를 제외하면 실제 추가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
“수준 높은 완곡을 뽑아내는 데 과거엔 며칠씩 걸렸다면, 지금은 한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제작비 측면에서 보면 사실상 10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죠. 이미 송라이팅 캠프나 해외 에이전시를 거쳐 수십 명이 쪼개어 작업하던 공장형 제작 방식은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습니다.”
김 프로듀서는 기술의 역사적 흐름을 언급하며, 최근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가 AI 활용 음원의 자진 신고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가 철회한 소동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과거 힙합이 처음 등장했을 때, 샘플러가 도입됐을 때, MP3와 스트리밍 시장이 열렸을 때마다 음악계는 ‘이게 무슨 음악이냐’며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죠. 현재 사람의 귀나 기존 시스템으로는 100% AI 음원인지, 일부 보조로 썼는지 절대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는 “현장을 모르고 내놓은 자진 신고 방식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라며 “어설픈 가이드라인으로 현장을 통제하려 들 게 아니라, 기술의 변화를 인정하고 시장의 자율적인 적응과 새로운 수익 배분 모델에 맡기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짚었다.
AI가 모든 음악을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 김 프로듀서는 인간 작곡가의 입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재정의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앞으로의 작곡가는 직접 악기를 연주하고 악보를 그리는 오퍼레이터가 아니라, 전체 판을 짜고 지시하는 ‘컨덕터(지휘자)’이자 총괄 프로듀서가 될 것입니다. 장비나 기술의 진입장벽이 무너진 만큼, 누구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음악의 민주화’ 시대가 열렸죠.”
그렇다면 AI가 끝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작곡가만의 영역은 무엇일까. 그는 단연 감성과 개성, 그리고 삶의 경험을 꼽았다.
김 프로듀서는 “AI가 아무리 전지전능해도 인간 고유의 냄새와 감성, 센스까지 대체할 수는 없다”며 “어떤 뮤지션의 음악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만의 뉘앙스와 철학이 녹아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신인 작곡가들에게 ‘AI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 쓰라’고 말한다”라며 “대신 많은 경험을 하며 자기 자신을 데이터화하라고 조언한다. 결국 삶의 경험치가 곧 그 사람의 브랜드이자 대체 불가능한 IP가 되는 시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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