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산업이 생성형 AI와 엔터테크의 거센 물결 속에서 제작 효율성의 극대화와 창작의 본질이라는 대전환점을 맞이했다. 음원 프로듀싱부터 버추얼 아이돌, 뮤직비디오 프로덕션에 이르기까지 기술 도입은 제작비를 크게 낮추고 자본 장벽을 허물며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생존 무기와 IP 확장성을 제공하고 있다. 본 기획 시리즈 [K팝과 AI 혁명]은 K팝 프로덕션의 세 가지 핵심 축인 작곡가 작업실, 버추얼 아이돌·팬덤, 뮤직비디오 제작 현장을 들여다보고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술이 허무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인간 창작자의 가치와 K팝의 미래를 짚어본다.
지난 8월 서울의 한 작업실. 작곡가 A씨가 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 정돈되지 않은 짧은 멜로디와 가사들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피아노 선율과 엉성하게 엉킨 목소리가 녹음 프로그램으로 흘러들어간 순간, 그는 생성형 AI 음악 플랫폼을 켰다.
텍스트 입력창에 던진 키워드는 단 하나, ‘빅밴드 재즈’. 실행 버튼을 누르자 화면 위로 화려한 브라스 섹션과 웅장한 재즈 힙합 비트가 쏟아져 나왔다.
방금 전 A씨가 중얼거렸던 피아노 멜로디의 모티브를 흡수한 AI가 단 3분 만에 근사한 곡의 초안을 완성해 낸 것이다. 가사까지 자동으로 덧붙여진 형태였다.
A씨는 “빅밴드 재즈 소리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이 작업실보다 두 배는 큰 스튜디오에서 수십 명의 세션 연주자를 불러 녹음해야 한다”며 “사람 손을 거치면 수천만 원이 들 작업이 클릭 몇 번으로 해결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소스 분리부터 믹싱까지…송라이팅 캠프 대체하는 AI 공정
초기 스케치는 시작에 불과했다. A씨가 AI가 통째로 뽑아낸 음원 파일을 악기별 소리로 분리해 주는 프로그램에 밀어 넣자, 드럼·베이스·기타·키보드 소스가 개별 트랙으로 순식간에 쪼개져 화면에 늘어섰다.
컴퓨터 모니터 세 대를 가득 채운 웨이브형 파동들이 정교하게 정렬됐다. 그는 이렇게 분리된 트랙 중 마음에 들지 않는 킥 드럼 파열음을 교체하고, 베이스 톤을 보정한 뒤, 전문 녹음실에서 주로 쓰는 DAW(음악제작프로그램)으로 옮겨 실시간 믹싱 작업을 진행했다.
키보드 마우스 클릭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새로운 사운드 레이어가 겹쳐졌다. AI를 활용해 수백 개의 탑라인(멜로디) 시안과 아이디어를 5분 만에 뽑아낸 뒤, 사람이 이를 고르고 조합하는 ‘오디팅’ 과정이다.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트는 이미 시중의 K팝 음원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끄럽고 견고했다. 현장에서 확인한 AI 활용 K팝 제작 시스템의 속도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A씨는 “곡의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최종 믹스·마스터링을 거쳐 글로벌 음원 플랫폼에 발매 등록을 마치기까지 빠르면 3시간, 길어도 2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안 쓰면 손해”…K팝 프로듀싱의 핵심은 기술 제어와 오디팅
이처럼 AI가 작업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해 주면서, 현장에서는 이미 쓰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세가 됐다. 다만 창작의 가치를 오직 ‘인간의 피땀’으로만 평가하려는 시장의 시선 때문에 작곡가들은 여전히 선뜻 AI 활용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작곡가 B씨는 “최근 기획사에 보낼 데모곡은 완성도가 완곡 수준이어야 채택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는 AI 툴 활용은 필수적”이라며 “가이드 보컬에 AI 목소리를 입히는 보조적 활용은 비교적 자유롭게 밝히지만, 멜로디나 작곡 자체에 쓴 경우에는 부정적 인식이 생길까 봐 다들 숨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A씨는 이미 K팝 현장 프로듀서의 상당수가 제작 공정의 30~40% 이상을 AI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작곡가의 역할 정의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단언한다.
결국 AI 시대를 맞이한 K팝 시장에서 진짜 실력은 ‘누가 더 정교하게 기술을 제어하고 오디팅하느냐’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AI가 아이디어의 물꼬를 터주면, 창작자는 이를 선별하고 K팝 특유의 감성에 맞게 마감하는 디렉터로서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A씨는 “음악 역시 어떤 기술을 썼느냐가 아니라 최종 결과물의 퀄리티와 창작자의 시각이 핵심”이라며 “제도적 공백 속에서도 K팝 현장의 AI 전환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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