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기획연재 [완벽한 날들] 여정편은 암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을 진단 이전과 발병·치료 과정,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에 따라 기록한다. 서울대학교 심리학 연구진이 정리한 ‘한국어 감정단어’를 토대로, 인터뷰이가 자신의 경험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직접 선택한 감정단어를 따라 이들이 암을 마주하고 치료를 견디며 겪은 내면의 변화를 살펴본다. 이와 함께 달라진 몸과 일상, 가족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 직장과 사회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편견과 차별, 경제적 부담과 제도적 공백 등 암 이후 삶의 다양한 현실을 담아낸다. 질병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 속에서 무엇을 잃고 발견했으며 어떻게 자기 자신을 다시 이해해 왔는지 들여다본다.
해방-되다|암이라는 말보다 먼저 찾아온 안도
아주 독한 놈이란다. 스물 일곱 살을 앞둔 2월의 어느날 조시형(31)씨는 의사에게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모구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두려움보다 이상하게 해방감이 일었다.
“해방이다.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구나.”
의사는 치료가 쉽지 않은 병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암에 걸렸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제는 무언가를 계속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뭐 먹지.’ 진료실을 나와서도 밥 생각이 먼저 났다. 조씨는 병원에 함께 온 친구와 지하 식당가로 내려가 치즈 돈가스를 먹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친구 역시 위로나 조언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병원에 같이 와줬다는 것 자체가 친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위로라는 걸 안다.
밥을 먹고 조씨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 암이래요, 치료 받을게요.” 그리고 이어 소셜미디어에도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곧바로 공개했다. 친구들의 응원과 걱정 섞인 연락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암이 자신의 삶을 어디까지 바꾸게 될지. 불이 뜨겁다는 말만으로 그 열기를 온전히 알 수 없듯, 암에 걸린 자신의 일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몰랐다.
몰아붙이다|세 시간씩 자며 붙잡았던 성공
조씨는 암 발병 전 성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학원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그는 자신이 기대했던 속도로 삶이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은데 자신만 정체돼 있는 것 같았다. 음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라도 자신이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려고 계속 일을 만들어냈어요.”
쉬는 날 없이 일했다. 음악 회사에 들어가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저녁에는 개인 음악 작업을 했다. 그러다 주말이면 교회에서 지휘를 하거나 레슨을 하며 돈을 벌었다. 몸은 힘들지만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위안을 얻었다.
자연스레 잠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는 하루 서너 시간씩 자는 생활을 1년간 이어갔다. 집에 돌아와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서너 시간이 금방 지나 있기도 했다. 바쁘지만 헬스장에 가 운동도 하며 건강을 챙겼다.
이런 생활을 몸이 먼저 멈춰 세웠다. 길을 걷던 어느 날 오른쪽 가슴 부근에 주저앉을 정도의 통증이 찾아왔다. 차차 잦아드는 통증에 ‘괜찮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 그날 새벽에 같은 통증으로 잠이 깼다. 곧바로 향한 응급실에서 “폐에 물이 차 있네요. 진료 잡아드릴게요”라는 말을 들었다.
며칠 뒤 입원한 조씨는 폐에 찬 물을 빼는 시술을 받았다. 통증이 사라지자 다시 일상이 찾아온 듯했다. 하지만 통증은 반복됐고 입원과 검사가 이어졌다. 통증으로 잠에서 깬 새벽부터 암이라는 진단을 받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드러내다|‘초바이버’라는 이름을 붙이다
조씨는 자신의 투병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암 진단 직후 소셜미디어에 암에 걸렸다고 알렸고 치료가 시작된 뒤에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 처음부터 거창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성인 남성 환우의 일상을 누가 궁금해하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암에 걸리고 나니 새로운 ‘캐릭터’가 하나 생긴 것 같았다.
집과 병원을 오가며 치료받는 모습을 찍고, 글을 썼다. 자신의 성인 ‘조’와 암 생존자를 뜻하는 ‘서바이버(survivor)’를 합쳐 ‘초바이버’라는 이름도 만들었다. 암에 걸린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생존자’라는 이름을 먼저 붙였다.
“특별한 걸 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저를 통해 가능성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의 기록을 본 환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도 백혈병에 걸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어떤 마음으로 버텼느냐고 물었다. 어느 병원에 찾아가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묻는 이도 있었다. 그는 병에 대해 함부로 조언하는 대신 먼저 같은 길을 지나온 환자로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건넸다.
조씨의 게시물은 일상의 기록에서 꿈의 기록으로 변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누군가에게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희망을 말로 설득하기보다,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무너지다|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마음까지
해방감이 계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항암치료가 시작되자 몸부터 달라졌다. 머리카락이 빠졌고 스테로이드의 영향으로 몸과 얼굴이 부었다. 눈까지 튀어나올 듯 부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만화 ‘드래곤볼’의 캐릭터 마인부우를 떠올렸다.
조씨가 받은 백혈병 치료에는 여러 종류의 항암제를 병용하는 이른바 ‘칵테일 요법’이 쓰였다. 다른 암 치료에 사용되는 약제까지 섞어 투여하는 방식이었다. 약의 종류가 많은 만큼 함께 투여되는 스테로이드의 양도 많았고 그로 인한 몸의 변화는 자존감까지 흔들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빠지는 것, 몸이 붓는 것 정도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변화의 전부라고 여겼다. 처음의 해방감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조씨는 두 차례 재발을 경험했고 조혈모세포 이식도 두 번 받았다. 추가 치료 과정에서 강한 면역반응이 나타났다. 양손에는 두드러기처럼 빨간 반점이 퍼졌다. 이어 피부가 벗겨지고 그 자리에 진물이 났다. 입안과 혀까지 상처가 생겼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모습이었다.
“나가면 무조건 죽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했어요.”
달라진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른 환자들을 찾아봐도 자신처럼 심한 증상을 겪는 경우는 없었다. ‘왜 나만 이러지’라는 원망도 생겼다. 암보다 마음이 먼저 망가지는 것 같았다.
버겁-다|같은 암, 다른 무게
어느 날 조씨는 같은 병실의 40대 형님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뭘 보고 우느냐고 물었더니 딸이 몰래 남겨 놓은 쪽지를 발견했다고 했다.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왜 여기 누워있지”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아픈데도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중년의 남성을 누르고 있었다.
병실에서 만난 남자 환우들 중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가장인 남자 환우들은 누구보다도 가족 생각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버텨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오히려 괜찮은 척하는 사람도 있었다.
몸은 약을 먹고 수술을 받아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누군가 매일 들여다봐 줄 수 없다. 생계와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 힘들어하는 가장의 마음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씨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도, 책임져야 할 생명이 없으니까. 그래도 이해는 됐다. 어쩌면 그것은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회의 시선이 지운 또 다른 무게이니.
“강박이 저의 암을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저를 살린 것 같기도 해요.”
강박이 나를 죽이기도 했지만 나를 살리기도 했다. 암이 재발했을 때 수천만원이 드는 비급여 약을 쓰기로 했다. 두 차례 투약에 6000만원. 너무 비싸서 망설여졌지만 돈 때문에 삶을 놓을 순 없었다. 결국 신용카드를 여러 장 만들고 그동안 모아둔 돈을 전부 약에 썼다.
전하다|병원복을 벗고 무대복을 입기까지
암은 한동안 조씨의 음악을 멈춰 세웠다. 치료에 매달린 몇 년 동안 또래보다 음악 활동이 서너 해쯤 늦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공에 매달렸던 예전 같았다면 그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 다시 자신을 몰아붙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늦어도 괜찮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며 음악을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자리에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음악으로 성공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 아닐지라도 음악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치유할 수도 있었다.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으로 사람들이 잠시라도
다른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시작된 것이 ‘병원복을 벗고 무대복을 입는’ 프로젝트였다. 암 경험자들이 쓴 글에 조씨와 같은 작곡가들이 곡을 붙였다. 완성된 노래는 다시 암 경험자들의 목소리를 만나 무대 위에서 울려 퍼졌다. 조씨는 자신의 음악으로 누군가가 잠시 환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에게 음악은 성공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의 삶과 마음을 연결하는 방식이 됐다. 조씨는 더 이상 앞서가는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다. 그렇게 그는 한 곡씩 자신만의 음표를 쌓아 올린다.
여유-롭다|비로소 천천히 달리기
암에 걸리기 전에는 좀처럼 달리지 않았다. 오히려 암을 경험하고 난 뒤에야 운동화를 신었다. 조금씩 달리기 시작한 거리는 점차 21km까지 늘어났다. 병을 얻은 뒤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났다고 생각하기보다, 이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나씩 해보기 시작했다.
“저는 암에 걸리고서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졌어요.”
달리기 시작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무엇이든 결과로 남겨야 마음이 놓였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고 순간순간의 경험을 사진으로 붙잡아 두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어디까지 왔는지를 확인하기보다 그 길을 직접 지나왔다는 감각을 더 오래 마음에 남기게 됐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누구보다 빨리 앞서가려 했던 그가, 정작 달리기를 시작한 뒤에는 삶의 속도를 늦추는 법을 알게 된 셈이다.
한때는 삶을 쉼 없이 몰아붙여야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는 조금 늦어도,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것을 안다. 음악에서 매우 빠르게를 뜻하는 프레스토처럼 달려온 조씨는 이제 자신의 박자로 삶을 연주한다. 느리고 편안하게, 아다지오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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