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대구 미문화원 폭파' 고문 피해자에 국가 배상책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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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대구 미문화원 폭파' 고문 피해자에 국가 배상책임 인정"

연합뉴스 2026-09-23 12:06: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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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서 누명 벗었지만 '면소'로 1·2심은 배상책임 인정안돼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진상규명 하라"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진상규명 하라"

(대구=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지역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1983년 발생한 대구 미문화원 폭파 사건에 대한 재심이 열린 2018년 10월 25일 대구지법 앞에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1983년 발생한 '대구 미국 문화원 폭파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게 됐다.

일부 피해자는 재심에서 무죄가 아닌 면소 판결을 받았단 이유로 민사소송 2심에서 배상을 받지 못했으나, 대법원은 면소 사유가 없었다면 무죄가 선고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사건이 벌어진지 43년 만이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23일 미국문화원 폭파사건 고문 피해자 박종덕씨 등 5명(망인 포함)과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해 박씨의 청구만 일부 인용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은 1983년 9월 22일 대구 삼덕동 미국문화원앞에 있던 가방에서 폭발물이 터져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사건이다.

박종덕·함종호·손호만·안상학·고 우성수씨는 수사기관에서 용의자로 지목돼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한 뒤 기소됐다. 박씨는 국가보안법·반공법·집시법 위반 혐의, 함종호씨 등 4명은 집시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대구지법은 1984년 1월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하고 박씨에게 징역 3년과 집행정지 3년, 함씨 등 4명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2010년 박씨 등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고, 이들은 2013년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2019년 재심에서 박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불법 감금이나 연행, 고문에 의한 자백 진술서 등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와 나머지 피해자들에게 적용된 집시법 위반 혐의엔 "해당 집시법 조항('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집회 또는 시위' 부분)이 반성적 고려로 1989년 폐지됐다"며 면소를 선고했다.

이에 박씨 등은 2020년 8월 국가를 상대로 총 1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2022년 1월 1심은 박씨와 가족들에 대해서만 "국가가 6천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박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부분 수사와 재판, 형 집행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문제는 재심 면소 판결이었다.

1·2심은 "재심 면소 판결이 확정됐다는 사정만으로 유죄 판결과 관련된 기소, 재판 및 복역이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서도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심에선 집시법 개정으로 면소 판결을 받았으나, 재심개시 과정과 형사보상 결정에서 나온 내용을 따져볼 때 이들에게 면소 사유가 없었다면 무죄가 선고됐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재심 면소판결이 확정됐다는 사정만으로는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이 곧바로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법원은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별도로 심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범죄 내용과 증거 유무, 재심결정의 이유, 재심절차에서 무죄·면소판결이 선고된 경위 등을 종합해, 면소사유가 없었다면 무죄판결이 선고됐을 것이란 점에 관해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뤄진 경우에는 재심대상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으로 인한 손해에 관해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씨 등 미문화원 폭파사건 고문 피해자들에 대해선 "수사관이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했음이 증명됐다는 이유로 재심이 개시됐고, 재심절차에서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과거) 유죄가 선고됐다고 볼 수 있는 유력한 증거자료가 제출됐다"고 밝혔다.

형사보상청구 사건에서도 이에 따라 보상금 지급의무가 인정됐단 점도 들었다.

또 앞서 1·2심은 이들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불법행위에 대해선 "재심무죄판결과 달리 재심면소판결 확정일은 단기소멸시효(3년) 기산일이 될 수 없다"며 "소멸시효 기산일은 적어도 과거사위의 일부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진 2010년 5월로 봐야하므로 (소를 제기한 2018년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즉, 수사와 재판·복역 과정을 구분해 수사과정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과거사위의 진실규명 결정으로 불법행위를 알 수 있게 된 2010년부터 시효가 진행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은 "일반인이 수사 단계에서 입은 피해와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으로 입은 피해를 구분해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객관적·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재심 면소판결이 확정된 시점부터 단기소멸시효 기간이 진행된다"고 판단했다.

재심 판결이 2019년 확정됐고 이들은 이듬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므로 손해배상 청구권이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al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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