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첫 경기에서 대만을 완파한 한국 야구대표팀이 경기 중 선보인 독특한 세리머니가 눈길을 끌고 있다.
왼쪽부터 박준순과 김주원이 각각 ‘금(金)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뉴스1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지난 21일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 중앙종합공원 야구장에서 열린 대만과의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5-0으로 승리했다. 선수들은 안타를 치거나 득점한 뒤 두 손을 머리 위로 모아 마치 ‘산’을 만드는 듯한 동작을 반복했다.
언뜻 보면 단순한 삼각형이나 산 모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자 ‘금(金)’의 윗부분을 형상화한 세리머니다.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겉모양만 놓고 보면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소크라테스 브리토의 ‘시옷(ㅅ) 세리머니’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는 KIA 시절 두 손으로 ‘ㅅ’ 모양을 만드는 동작으로 팬들에게 익숙했다. 2023년 KBO 올스타전에서 홈런을 친 뒤에도 이른바 ‘시옷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다만 대표팀의 이번 동작은 소크라테스 세리머니와 의미가 전혀 다르다. ‘ㅅ’이 아니라 한자 金의 윗부분을 나타낸 것으로, 주장 노시환이 금메달을 목표로 직접 만든 세리머니다.
김주원이 2회 첫 안타를 친 뒤 처음 동작을 선보였고 이후 박준순과 김도영 등이 장타를 친 뒤 같은 세리머니를 이어갔다. 8회 윤동희가 대타로 나서 솔로홈런을 터뜨렸을 때도 선수들이 함께 ‘금 세리머니’를 펼쳤다.
WBC 때는 ‘비행기’…이번 목표는 금메달
2026 WBC 조별리그 일본전에서 2타점 2루타를 친 뒤 ‘비행기 세리머니’를 하는 문보경. / 연합뉴스
대표팀이 세리머니에 대회 목표를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출루한 선수들이 양팔을 좌우로 길게 펴는 ‘비행기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8강이 열리는 미국으로 전세기를 타고 가겠다는 의미였다. 대표팀은 실제 8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당시 세리머니에 담은 목표를 이뤘다.
이번에는 비행기 대신 ‘금(金)’을 골랐다. 한국 야구가 이번 대회에서 노리는 것은 아시안게임 5회 연속 우승이다.
한국은 2010 광저우 대회를 시작으로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2022 항저우 대회까지 네 대회 연속 정상에 올랐다. 이번 아이치·나고야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따면 아시안게임 야구 5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KBO에서도 익숙한 ‘우리 팀만의 손동작’
KIA 나성범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에서도 선수들이 출루나 홈런 뒤 약속된 손동작을 함께 사용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팀 이름이나 시즌 목표를 동작에 담거나 특정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선수단 전체가 같은 세리머니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크라테스의 ‘ㅅ’이다. 2022년 소크라테스가 투구에 얼굴을 맞아 코뼈가 골절돼 전력에서 빠지자 당시 나성범이 소크라테스가 돌아올 때까지 그의 응원가 안무인 ‘시옷 댄스’를 팀 세리머니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KIA 선수들이 출루한 뒤 함께 ‘ㅅ’을 만드는 장면이 이어졌다.
왼쪽부터 LG 박해민과 SSG 최정이 각각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뉴스1
구단 이름을 손가락으로 표현한 사례도 있다. 2023년에는 SSG 선수들이 엄지와 검지로 ‘Landers’의 첫 글자인 L을 만들었고 키움은 손가락으로 K, 한화는 ‘Eagles’의 E를 표현하는 세리머니를 사용했다. 당시 LG는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염원하며 손가락 세 개를 펼치는 ‘V3’ 세리머니를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에도 이런 문화는 이어졌다. LG 선수들은 2025년 같은 LG 스포츠단 소속인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의 우승을 응원하기 위해 안타를 친 뒤 농구공을 던지는 듯한 ‘슈팅 세리머니’를 함께 사용했다. 세이커스가 실제 챔피언에 오른 뒤에도 LG 트윈스 선수들은 한국시리즈까지 이 동작을 이어갔다.
김도영과 김길리가 각각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개인 세리머니가 다른 종목으로 번지기도 했다. KIA 김도영은 홈런을 친 뒤 엄지와 검지, 새끼손가락을 펼치는 특유의 동작을 사용해 왔다. KIA 팬으로 알려진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길리는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여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같은 동작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세리머니는 단순히 득점이나 안타를 자축하는 동작을 넘어 선수단의 목표나 팀 분위기, 동료를 향한 메시지를 담는 장치로 자리 잡았다. 이번 대표팀의 ‘금 세리머니’ 역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24명의 선수들이 공유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만전 5-0 완승…곽빈 6이닝 무피안타
21일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 중앙종합공원 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야구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대만의 경기, 대한민국 선발투수 곽빈이 1회초 역투하고 있다 / 뉴스1
세리머니만큼 경기 내용도 좋았다. 대표팀은 대회 첫 경기이자 조별리그 최대 고비로 꼽힌 대만을 5점 차로 눌렀다.
선발 곽빈은 6이닝 동안 안타를 하나도 내주지 않고 2볼넷 10탈삼진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지켰다. 김주원은 4타수 3안타로 타선을 이끌었고 윤동희는 8회 대타로 등장해 좌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곽빈과 박영현, 노시환, 문보경, 김지찬, 김주원, 윤동희 등 7명은 항저우 대회 우승 경험을 안고 이번 대회에도 출전했다.
이번 대표팀 24명 가운데 병역 의무를 마치지 않은 선수는 16명이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될 수 있다.
오늘 오후 6시 30분 홍콩전…최민석 선발
대표팀은 22일 오후 6시 30분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홍콩과 B조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대만에 이어 홍콩까지 잡으면 슈퍼라운드 진출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홍콩전 선발은 두산 베어스 우완 최민석이다. 최민석은 이번 대회를 통해 성인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됐으며 이날 태극마크를 달고 첫 선발 등판에 나선다.
한국은 홍콩전을 마친 뒤 23일 태국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조별리그 각 조 상위 2개 팀은 슈퍼라운드로 향한다. 조별리그에서 맞붙었던 팀끼리의 경기 결과를 안고 슈퍼라운드에 진출하기 때문에 대만전 승리의 의미도 크다. 한국과 대만이 나란히 슈퍼라운드에 오르면 한국은 대만전 1승을 안은 상태에서 A조 상위 팀들과 맞붙게 된다.
대만전 첫 안타부터 등장한 두 손 모양이 대회 마지막 날에도 다시 나올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대표팀이 ‘금(金)’을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금메달까지 목에 걸 수 있을지 주목된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