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N] 30년 전 체홉, 2026년 청춘을 만나다...극단 백수광부 '갈매기' 다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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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N] 30년 전 체홉, 2026년 청춘을 만나다...극단 백수광부 '갈매기' 다시 쓰기

뉴스컬처 2026-09-22 11:03:39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연극은 완성된 대본을 배우가 연기하는 것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대본을 고치고, 누군가는 연출의 방향을 고민하며, 무대와 의상을 준비하고 관객에게 공연을 알리는 일까지 맡는다. 특히 제작 기반이 충분하지 않은 젊은 연극인들에게 공연은 창작과 생계가 맞물리는 복합적인 노동이기도 하다. 극단 백수광부의 창단 30주년 기념작 '굿모닝? 체홉: 그 많던 갈매기는 누가 다 죽였을까'는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작품은 안톤 체홉의 대표작 '갈매기'를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체홉의 이야기를 다시 재현하는 방식은 아니다. '갈매기'의 인물과 상황을 출발점으로 삼은 젊은 배우들이 오늘의 연극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직접 부딪히는 과정이 작품의 주요한 내용이 된다. 고전 희곡은 이들에게 완성된 답안지가 아니라 새로운 창작을 시작하기 위한 재료가 된다.

'굿모닝? 체홉: 그 많던 갈매기는 누가 다 죽였을까' 연습 모습. 사진=극단 백수광부
'굿모닝? 체홉: 그 많던 갈매기는 누가 다 죽였을까' 연습 모습. 사진=극단 백수광부

이 같은 접근은 극단 백수광부가 걸어온 길과도 이어진다. 1996년 창단한 백수광부는 문학적 텍스트를 배우의 신체와 연기, 앙상블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특히 1998년 체홉의 희곡을 배우들의 몸과 즉흥 연기로 해체하고 다시 구성했던 공동창작은 극단의 미학을 보여준 대표적인 작업으로 남아 있다.

30년이 지난 2026년, 당시와는 다른 세대의 배우들이 다시 체홉을 만난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질문도 달라졌다. 예술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작을 지속하기 위해 생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연극을 하고 싶다는 마음과 실제 제작 환경 사이에서 배우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굿모닝? 체홉: 그 많던 갈매기는 누가 다 죽였을까'는 이러한 질문을 설명하는 대신 공연 제작 과정 자체를 무대에 끌어들인다. 작품 속 배우들은 '갈매기'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어떤 연극을 만들어야 하는지 토론하고, 원작을 나누고, 다시 구성한다. 연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견 차이와 제작에 필요한 현실적인 고민 역시 공연의 일부가 된다.

이 때문에 작품은 메타연극이라는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관객은 극 중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동시에 그 인물들이 연극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연극 안에서 또 하나의 연극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계속해서 움직인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배우들의 역할이다. 출연진은 무대 위에서 배역을 소화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대본 작업과 연출 논의는 물론 무대와 의상, 홍보에 이르기까지 공연을 완성하기 위한 여러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배우가 연기자이면서 동시에 창작자와 제작자가 되는 구조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오늘날 공연예술 현장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한 편의 공연이 관객에게 도착하기까지는 배우와 연출가뿐 아니라 무대, 조명, 의상, 기획, 홍보 등 여러 분야의 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창작 현장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작품은 그런 현실을 감추기보다 오히려 연극의 재료로 삼는다.

여기서 체홉의 '갈매기'가 갖는 의미도 새롭게 다가온다. '갈매기'는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 인정받고 싶은 마음, 창작을 둘러싼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100여 년 전 쓰인 희곡이지만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는 문제는 오늘의 젊은 창작자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특히 '갈매기' 속 젊은 인물들이 새로운 연극을 꿈꾸는 모습은 이번 작품의 출발점과 자연스럽게 만난다. 과거의 인물들이 새로운 형식을 찾으려 했다면, 2026년의 배우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어떤 연극이 가능한지를 묻는다. 고전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예술가의 고민을 현재로 옮겨오는 셈이다.

연출을 맡은 하동기 감독이 던진 질문도 이와 연결된다. "귀하게 자란 내가 연극을 해도 될까?"라는 물음은 개인의 선택에서 시작하지만 곧 예술과 사회의 관계로 확장된다. 안정적인 삶을 선택할 것인지, 불확실한 창작의 길을 걸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오늘날 젊은 예술가들이 마주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공연은 이러한 현실을 무겁게만 다루지 않는다. 체홉의 작품이 지닌 유머와 인간적인 면모를 바탕으로 젊은 배우들의 고민을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날것의 언어로 풀어낸다. 연극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주면서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엇갈림과 시행착오까지 공연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굿모닝? 체홉: 그 많던 갈매기는 누가 다 죽였을까' 연습 모습. 사진=극단 백수광부
'굿모닝? 체홉: 그 많던 갈매기는 누가 다 죽였을까' 연습 모습. 사진=극단 백수광부

작품은 올해 2월 선보였던 스튜디오 연극 '굿모닝 체홉: 노량진 백수광부의 종말'에서 출발한다. 당시 작업을 토대로 이번에는 공연 규모를 넓히고 창작 과정을 다시 다듬었다. 하나의 결과물을 반복하는 대신 앞선 작업에서 얻은 경험을 새로운 공연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도 30주년을 맞은 극단의 현재를 보여준다.

극단 백수광부의 30년 역시 이러한 창작 방식과 맞물려 있다. 처음 십여 명의 배우가 뜻을 모아 시작한 극단은 이제 20대부터 60대까지 여러 세대의 배우들이 함께하는 80여 명 규모의 연극 공동체로 성장했다. 서로 다른 세대가 한 단체 안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은 한 시대의 연극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에서 체홉은 과거에 머무른 작가가 아니다. 1998년 백수광부가 체홉을 해체하고 재구성했다면, 2026년의 배우들은 다시 체홉을 자기들의 현실 속으로 가져온다. 같은 작가를 바라보면서도 세대가 달라지면 질문과 표현 방식은 달라진다. 30년이라는 시간이 작품의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배경이 되는 이유다.

'굿모닝? 체홉: 그 많던 갈매기는 누가 다 죽였을까'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완성된 연극만은 아니다.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 배우가 창작자로 성장하는 과정, 그리고 고전이 새로운 세대를 만나 다른 언어로 변주되는 과정이 함께 놓인다.

관객 역시 완성된 결과만 바라보는 위치에서 벗어난다. 배우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방식으로 원작을 바꾸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지를 지켜보면서 한 편의 공연이 탄생하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것은 체홉의 '갈매기'이면서 동시에 2026년의 젊은 연극인들이 써 내려가는 또 다른 '갈매기'다.

창단 30주년을 맞은 극단 백수광부가 체홉에게 다시 말을 거는 방식은 그래서 과거를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1990년대의 공동창작 경험을 현재의 젊은 배우들에게 넘겨주고, 그들이 다시 자신들의 언어로 연극을 만들어보게 한다. 고전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면서도 지금 창작자가 어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무대 위에 드러내는 것이다.

'굿모닝? 체홉: 그 많던 갈매기는 누가 다 죽였을까'는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다. 30년 전 체홉을 새롭게 바라봤던 극단이 다시 체홉을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공연은 백수광부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무대가 된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체홉의 희곡만이 아니라, 체홉 이후를 살아가는 젊은 연극인들의 현실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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